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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적 관계와 친밀한 관계

기자명 남춘호

4월 중순, 가평 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와 조현수가 검거됐다. 올해 초, 가평 살인사건의 내막이 밝혀지면서 얼마나 많은 대중들이 치를 떨었는지 기억하는가?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생전에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당했다고 지적한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피해자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이다. 현실감각과 판단력이 심하게 약해진 피해자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학대를 받으면서도 이에 저항할 수 없거나 심지어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결국 가해자의 통제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다. 

가스라이팅의 필수 조건은 친밀한 관계 형성과 위선이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 가해자는 자신만이 피해자를 위해서 진실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속인다. 피해자는 상대방과 맺은 친밀한 관계가 깨지는 것이 두려워 악의적인 관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스라이팅은 ‘거짓된 친밀한 관계’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추악한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해지면 상호간 신뢰감은 낮아지고 오히려 타인을 경계하고 의심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러나 그전에 한번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욕조 물이 더럽다고 그 안의 아기까지 내다 버리는 것이 옳지 않으니, 아기가 들어있는지 아닌지는 확인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는 ‘중독적 관계’와 ‘친밀한 관계’를 비교해 제시한다. 중독적 관계에서는 권력의 불균형, 조작, 파트너 압박, 신뢰 결여 등이 나타나는데, 이런 점에서 가스라이팅과 유사하다. 반면 친밀한 관계에서는 권력의 균형, 솔직함, 선택의 자유, 적당한 신뢰 등이 나타난다. 특히 적당한 신뢰라는 것은 상대방과의 상호신뢰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는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본인이 안다고 해서 정답만을 강요하는 것은 친밀함을 깨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 생각이 옳으니까 너도 이렇게 해야 해!”가 아니라 “내 생각이 옳기는 하지만, 네가 꼭 하고 싶다면 한번 해봐”라고 적당히 포기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권력의 균형과 솔직함도 중요하다. 상대방도, 나도 서로 대등해야 솔직해질 수 있고, 솔직해져야 발전적인 논의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모든 이에게 친밀하고 진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친밀한 관계에 좀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관계를 통해 진실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진실성은 우리를 완전한 민주주의로 데려가는 핵심요소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단지 진실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진실이 많은 경우 오해받거나 왜곡되기 쉽고, 때로는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불편하게 느끼는 경우도 발생한다. 특히 갈등공화국이라 불리는 한국사회에서는 편을 갈라 싸우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사회는 아직 좀 더 친밀해질 필요가 있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불편한 진실이라도 논의를 가능케 하고, 논의 과정에서 왜곡이나 불편함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올해 초에는 대통령선거가 치러졌고, 곧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대선으로 인해 작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사람들이 서로 편을 갈라서 부딪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아주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으니,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사람을 설득하고 통합해야 한다는 큰 어려움에 놓여있다. 국민 통합이라는 사회적 숙제와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친밀함을 기반으로 진솔한 민주주의에 한걸음 더 다가가기를 기대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먼저 친하게 다가가보는 것은 어떨까? 조금 어색하더라도 뭐 어떤가, 지금은 행복함으로 가득한 5월 가정의 달아닌가.

남춘호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연구위원
namchoonho@naver.com

[1633호 / 2022년 5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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