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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 빙기사’는 어떻게 붓다가 되었을까

  • 출판
  • 입력 2022.05.30 14:04
  • 수정 2022.05.30 21:25
  • 호수 1634
  • 댓글 1

그대는 장차 붓다가 되리라
김정빈 지음/ 덕주
473쪽 / 1만6500원

전생·현생 넘나드는 사랑·복수·용서의 서사
인과 명확하지만 현생의 선택이 삶 이끌어
1984년 베스트셀러 소설 ‘단’ 작가의 역작
이야기 속 녹여 담은 불교 교리 법문인 듯

작가 김정빈씨는 “전 세계에 당당히 내놓을 만한 현대불교 대표 문학작품을 쓰고 싶었다”는 말로 이 소설에 담은 노력과 원력을 대변했다.
작가 김정빈씨는 “전 세계에 당당히 내놓을 만한 현대불교 대표 문학작품을 쓰고 싶었다”는 말로 이 소설에 담은 노력과 원력을 대변했다.

붓다가 길을 나섰다. 음유시인 빙기사를 만나기 위해 항구도시 숩바라까로 향하는 여정. 붓다를 시봉한 제자 아난다는 물었다.

“세존이시여, 그(빙기사)는 밧디야 테라(비구장로)가 사끼야국의 왕이었던 시절 그의 아내 아유타를 유혹하여 간음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고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삿된 믿음에 빠져들어 수만 명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종교 전쟁을 일으켰습니다.(중략) 그 비루한 중생을 만나기 위해 여섯 달이나 걸리는 먼 여행길을 떠나시겠다는 것입니까?”

붓다가 대답했다.

“네가 비난하는 빙기사가 겉으로 보기에는 지은 죄업이 수미산보다 더 커 보일지라도, 마음은 오히려 낮은 데로 떨어짐으로써 높은 데로 올라서고, 지극히 어두워짐으로써 오히려 지극히 밝아질 수도 있으니, 저 빙기사의 마음이 바로 그러하다.”

그로부터 6개월 후 흙먼지 묻은 붓다의 발 앞에 엎드린 빙기사는 참회의 눈물과 함께 ‘세세생생 보살의 길을 가리라’ 발원했다. 붓다는 그에게 “무상정등각자로서 붓다가 되리라”고 수기한다. 

소설 ‘그대는 장차 붓다가 되리라’는 빙기사를 만나고자 나선 붓다의 여정, 그 6개월의 이야기다. 동시에 그 여정에서 붓다와 제자들, 그리고 그 주변의 다양한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비유이자 그 자체로 법문이다. 

인도 고전문학의 최고봉이자 힌두교 경전으로 추앙받는 ‘마하바라타’나 ‘라마야냐’를 닮은 듯 이야기 속에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중첩돼 담겨있다. 주인공은 음유시인 빙기사와 사끼야국의 왕이던 밧디아, 그리고 그의 부인 아유타이지만 여기에 도리천의 천인인 라자와 시리마도 또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이들 모두가 인간계와 천상계에서 펼쳐 보이는 삶의 모습이 전생, 그리고 전전생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인연의 과보임을 말해준다. 여기에 사리뿟따 테라, 웁빨라완나 테리(비구니장로) 등 부처님의 제자들이 전해주는 수행담과 전생담 등은 이 소설을 가지 많은 보리수처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강성하고 아름다운 나라 사끼아국의 왕이었던 밧디아는 아름다운 시를 강물처럼 노래하던 음유시인 빙기사를 형제처럼 믿고 아꼈다. 자신의 사랑하는 부인 아유타에게 시를 가르쳐 주라고 직접 부탁할 만큼. 하지만 빙기사와 아유타는 첫눈에 사랑에 빠져 밧디아를 배신한다. 분노한 밧디아는 빙기사의 눈을 뽑고, 아유타의 귀를 멀게해 쫓아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에게 배신당한 밧디아는 깊은 절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출가하고,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어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게 된 빙기사는 분노에 사로잡힌다. 다만 아유타만은 분노에 휩싸이지 않고 웁빨라완나 마하테리를 스승으로 삼아 인욕과 보시행을 거듭한다. 이 세 사람의 운명은 전생부터 이어진 인연의 발현이었지만, 이후 이들의 삶은 오직 각자의 선택과 원력으로 펼쳐지고 열매 맺는다. 

소설은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 불교가 제시하는 모든 가치와 교리들이 녹아있다는 점에서 제목에 부연된 ‘소설로 읽는 붓다의 가르침’이 결코 과하지 않다. 

저자는 1984년 국내 소설시장을 휩쓸었던 베스트셀러 ‘단’의 저자 김정빈씨다. “문학에 대한 사랑과 성스러움에 대한 우러름은 내가 걸어온 두 길이었다”는 저자는 “감히 기독교 사상을 숭고의 극치로 끌어올린 단테의 ‘신곡’을 본받아 전 우주를 배경 삼아 펼쳐지는 장려 웅대한 불교 문학작품을 꿈꾸었다”고 이 작품의 집필 배경을 밝혔다. 

같은 원력으로 2012년 무려 760페이지에 이르는 소설 ‘소설경’을 출간했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456개의 각주와 160페이지에 이르는 후주까지 덧붙여져 무려 3400매에 달하던 ‘소설경’은 “정밀한 이해를 요하는 불교교리에 기초한 데다, 서사 면에서도 경박 단소를 선호하는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중후 장대한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라 자평한다. 이후 작가는 원고 분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각주를 과감히 덜어내 ‘Six Month with Buddha’라는 제목의 영문판으로 출간했다. 전 세계인에게 당당히 내놓을 현대불교 대표 문학작품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책의 한국어판이 ‘그대는 장차 붓다가 되리라’다. 

저자의 말처럼 요즘 시대에 흔히 접하기 어려운 대하소설 같은 장대함, 여기에 불교의 방대한 경전과 철학을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녹여 담은 저자의 필력은 그가 어떻게 단 한 편의 소설로 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는지 짐작케 한다. 빠르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넘쳐나는 시대, 꾹꾹 다져진 전단향 같은 법향 묵직한 소설이 새삼 반갑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634호 / 2022년 6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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