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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의 본래 모습을 찾아주었습니다

기자명 하림 스님

덮개 치우고 보호막 벗겨내니
얇고 가벼운 본래모습 되찾아
필요·욕심으로 빚어진 결과물
마음도 본모습 찾게 노력해야

자다가 눈이 뜨입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어제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었나 봅니다. 불을 켜기 전 휴대폰을 찾는 저를 봅니다. 뭔가 아니다 싶어서 손이 가는 것을 멈춥니다. 불을 켜보니 휴대폰이 작고 예쁘게 보입니다. 어제 껍데기를 벗겨 두었더니 자유롭고 가볍게 잘 잤나 봅니다.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원래 아주 얇고 가벼운 모습이었는데 카드를 넣으려고 덮개를 씌우고 깨지지 않게 하려고 보호막을 입혔더니 두 배 이상 커지고 무거워졌습니다. 가볍고 얇은 본래 모습에 나의 필요와 욕심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던 겁니다. 
나를 돌아봅니다. 나도 나를 보호하기 위해 집을 마련하고 옷을 입고 먹을 것을 비축합니다. 그러다 보니 부피가 커지고 삶의 무게가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삶이 간소해지길 바랍니다. 불가능한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려고 합니다. 어떤 마음들이 그러는지 들여다봅니다. 하나는 성장의 욕구고 하나는 성장하지 못할까 봐 불안한 마음입니다. 

생명은 태어나면 살고 싶은 욕구가 있고 동시에 죽음에 대한 불안이 따릅니다.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습니다. 욕구는 채우고 싶고 그렇게 되지 못할 불안한 감정은 경험하기 싫습니다. 이 불가능한 도전에 끝이 있을까 싶습니다. 맨몸의 휴대폰이 반가운 것처럼 나도 나의 맨몸을 보고 싶습니다. 여러 기능을 포기한 아날로그 방식을 선택하듯 편리함과 빠름에 대한 욕구들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선택을 합니다. 이것이 출가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삶을 돌아보니 이것저것 재주를 많이 부렸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휴대폰입니다. 그래서 휴대폰을 되도록 만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정작 휴대폰을 만지면서 멀리하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충족하려고 애쓰는 제가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작전을 써보았습니다. 

휴대폰을 가만히 봅니다. 만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바로 손이 가려고 합니다.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잠시 멈춥니다. 신기하게도 몇 초 지나지 않아 주의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휴대폰을 만지고 싶은 생각이 지나가 버립니다. 마치 기차를 타고 지나가는 장면들을 바라보듯 빠르게 사라집니다. 

이것이 생각의 특징인 걸 알았습니다. 우리는 뭔가에 주의를 집중하려다가도 금방 다른 곳으로 마음이 가는 것을 자주 경험합니다. 이런 마음을 휴대폰을 만지고 싶을 때 적용했더니 잘 먹힙니다. 오늘은 아주 성공하고 있습니다. 휴대폰을 만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그 마음이 사라지고 난 뒤 손을 움직입니다. 욕구가 지나간 뒤 꼭 필요할 때 만지는 겁니다. 휴대폰에는 아무것도 덧씌우지 않습니다. 본래 모습으로 있도록 자유를 주려고 합니다. 카드는 지갑에 넣습니다. 어차피 지갑은 지갑대로 들고 다녔기에 특별히 불편하진 않습니다.

저도 휴대폰처럼 본래의 모습이길 바랍니다. 필요하다고 여긴 것들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떠나는 순간 아무 의미없는 것들입니다. 신분도 물건들도 모두 짐이 될 뿐입니다. ‘그러면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많이 듣던 질문입니다. ‘대념처경’의 의미가 ‘지금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답은 차치하더라도 이 질문 자체가 내가 지금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야 하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때 필요한 것, 그때 절대적이었던 마음 모두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생겼다가 사라지는 마음 현상일 뿐입니다. 관심사는 줄이고 지금 경험하는 몸과 마음을 살피면서 살아가겠습니다. 그래야 두 가지 이루어질 수 없는 욕심과 갈등의 고통 속에 빠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휴대폰은 늘 주변에 있기에 관찰하고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우리의 삶을 살핀다면 고생길로 가는 것을 피하고 평온의 길로 가리라 믿습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634호 / 2022년 6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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