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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행 양사현(동진·28) - 상

기자명 법보

부모님 영향 받아 출가 결심해
행자 체험 후 줄어들은 짜증·화
내 반응 따른 삶 변화 알아차려 
해외 연수 다녀오며 눈 뜬 명상

동진·28
동진·28

살면서 종교를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태어난 환경도 영향을 미치지만 삶의 고난과 역경이 닥쳐올 때 단순히 의지하고 싶다거나 삶에 대한 의미, 목적을 발견하고자 종교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청소년기에 일타 큰스님의 일대기를 읽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근이 송연해지는 경험을 한 후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나는 '한 번 사는 인생, 제대로 살아보자'며 스님이 될 결심을 했다. 부지런히 새벽예불을 올리던 어머니를 삼남매가 졸린 눈을 비비며 따라다닌 경험과 불교에 대한 탐구열로 가득했던 아버지 아래서 자라서인지 깨달음을 얻고 나면 세상을 조금 더 쉽고 명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큰스님들의 법문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친구들과의 약속도 바로 파기하고 달려갈 정도로 불교에 빠져있었다. 한 사찰의 주지 스님이 출가를 권유하자, 그 길로 행자체험에 나섰다. 당시 만 19세가 되지 않아 삭발을 하지 못하고 머리를 사내마냥 더벅머리로 잘랐다. 법명을 받고 법당에서 절하며 눈물을 철철 흘렸던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부처님 도량에서 불제자가 된 것이 너무 감격스럽고 감사하고 행복했다. 이 귀중한 인연에 나는 감히 악업을 조금 벗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짜증과 화가 많아 부모님을 괴롭게 했던 아이에서 단박에 어른스럽고 담담한 아이로 탈바꿈하고 출가까지 했기 때문이다. 가장 놀랐던 사람은 엄마셨으니 오죽할까. 

동국대가 교수님은 물론 환경까지 불교를 배우기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체 없이 불교학과에 수시원서를 넣었고, 곧 통지서가 사찰로 날아왔다. 동안거가 한창이었기에 오티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단절된 생활을 하다가 세상과 만나니 어찌나 기쁘던지. 또래를 보는 게 그렇게 반가웠다. 그때부터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하며 수행에 대한 집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맛들려버렸다. 사찰의 일상과 출가자로서의 책임감이 너무나 족쇄처럼 느껴져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은사스님께 그만두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그 반항은 주지 스님이 부엌가위를 쥐고 내 덥수룩해진 머리를 ‘자라난 번뇌’라고 하시며 쥐 파먹은 모양의 머리스타일로 재탄생시키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결국 그만뒀지만 지금 생각하면 수행자라는 것은 외형에 구분 받지 않을 텐데 그 모습이 뭐라고 그렇게 부담스러워했을까 싶다.  

대학을 다니며 배운 모든 과정에서 익혔던 내용을 현실에 적용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같은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나의 반응에 따라 변화하는 삶의 흐름이 즐겁고 신기하다 못해 어린 나이에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내 자신이 뿌듯하기까지 했다. 오래도록 이런 자세로 살다가 죽고 싶었다. 부처님이 발견하신 진리를 탐색해 내 것으로 만들어 이 생을 지혜롭고 유익하게 이번 삶의 숙제를 풀어나가고 싶었다. 

그러다 대학 2학년 때 7개월간 교환학생으로 미국불교 체험프로그램에 연수를 다녀오며 삶이 달라졌다. 프로그램 속에는 고엔까 위빠사나 명상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수행에 참여하며 스스로와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됐다. 

대학교 3학년 때는 태국 담마까야 사찰에서 한 달간 머무르면서 태국문화와 담마까야 수행법을 배울 수 있었다. 담마까야는 40년 사이에 급부상한 신흥 불교세력이었는데, 체계적인 프로그램, 뿌리 깊은 불교문화와 수행법이 인상적이었다. 스님에 대한 권위가 상당히 높은 태국에서 재가불자들에게 수행체험기가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지며 삽시간에 담마까야 스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영국 출신의 담마까야 스님이 주도한 첫 주 동안 호흡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 스님은 “명상하다가 잠이 들어도 그대로 수용하라”고 말했다. ‘자도 된다니. 신박한 걸?’ 그래서 모든 의도를 내려두고 반가부좌 자세로 고개가 어디로 꺾이든 개의치 않고 무아지경으로 잤다. 그런데 이게 웬걸, 며칠이 지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이 더욱 명료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호흡을 관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상당히 놀라 감격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육신이 편안해지면서 명료해지는 정신을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다.

[1635호 / 2022년 6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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