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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Service)와 예속(Servitude)의 글자 차이

기자명 성진 스님

우리는 흔히 ‘이상적 세상’ 또는 ‘이상향’을 표현하는 말로 ‘유토피아’를 자주 사용한다.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는 1516년 토마스 모어의 공상소설 ‘유토피아’에서 처음 등장한 신조어였다. 고전 그리스어 ‘아니다/없다’라는 뜻의 ‘not’과 장소를 뜻하는 ‘place’를 조합하여 ‘없는 곳’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단어이다. 이런 뜻의 단어가 이상적 세상을 상징하는 말로 되는 데에는 소설 ‘유토피아’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나라로 ‘유토피아 섬’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우리 고전 소설인 ‘홍길동전’에서 나오는 ‘율도국’이 아마 이에 해당될 것이다. 비록 이상세계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국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바로잡아 만든 세상을 그려낸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또렷이 보여주는 거울이 될 수 있으며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할 수 있는 해답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설 ‘유토피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피터라는 인물이 ‘유토피아 섬’을 5년간 여행하고 온 라파엘이라는 인물에게 “당신의 지식과 현명함으로 군주를 모시고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면 가족과 이웃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크나큰 봉사일 것입니다. 그러니 궁중에서 일하십시오”라고 말한다. 여기에 라파엘은 이렇게 대답한다. “노예상태(Servitude)가 되라는 말과 봉사(Service)하라는 말의 차이는 음절 몇 개의 차이다”라고 말하며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라고 대답한다. 

예전에 국가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지인 가운데 한 분이 필자의 방에 걸려있는 ‘隨處作主 立處皆眞(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는 임제선사의 글을 보고 하소연 한 적이 있다. 임명권자가 좌천성 인사를 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훈계의 글이라는 것이다. 아마 ‘유토피아’에 나오는 라파엘의 답처럼 조직과 제도 속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마음을 ‘봉사’와 ‘예속’ 어디에 머물게 해야 하는지 현실에서는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유토피아’에서 철학 없는 왕과 간교한 신하들이 회의라는 공의제도를 통해 잘못될 수 있음을 풍자한 내용이 나온다. 그들이 함께 모여 왕이 돈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하는 기발한 방안을 마련한다. 첫째, 왕이 돈을 내어주어야 할 때는 화폐가치를 올리고 돈을 받아야 할 때는 가치를 터무니없이 내린다. 둘째, 전쟁을 일으킬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특별세를 걷었다가 전쟁을 철회하여 자애로운 왕으로 보이게 한다. 셋째, 예전의 낡은 법을 부활시켜 그 법의 위반자들로부터 벌금을 징수한다. 넷째, 반사회적 범죄에 큰 벌금을 물리고 다시 그 법률로 불편해하는 자들에게 면죄부를 판매한다. 다섯째, 몇몇 재판관들을 휘어잡아 그들이 언제나 왕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도록 한다. 

아마 이야기 속의 신하들이나 군주의 행동을 봉사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신하들은 사회 공동체에 대한 봉사가 아니고 단지 왕의 노예일 뿐인 것이다. 임제선사의 말씀은 조직이나 제도안에서도 진정한 ‘봉사(Service)’로서의 삶을 일컫는 마음자세를 일러주신 것이지, 잘못됨을 묵과하고 편승하여 군주의 총애를 받는 예속(Servitude)을 말한 것이 아니다.

비록 공상소설 ‘유토피아’의 이야기이지만 부조리와 모순은 어느 사회에서도 있을 것이다. 단지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마음을 봉사와 예속 가운데 어디에 두고 살고 있는지, 조직과 제도는 과연 구성원이 봉사로서 삶을 살아가도록 운영되는지에 따라 ‘유토피아’가 현실의 세상이 될 것이다.

성진 스님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미래세대위원
sjkr07@gmail.com

[1636호 / 2022년 6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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