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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마갈어(摩竭魚) 

부처님 명호 들리자 살생 멈춘 괴수

경전에 최다 등장하는 물고기
육상과 수상동물 합체한 괴수
배 위 상인 잡아 먹으려 했지만
부처님 명호 듣고 선심 일으켜

불교경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물고기는 마갈어(摩竭魚)이다. 산스끄리뜨어와 빨리어로 마까라(Makara)라고 하며 마갈(摩竭), 마가라(磨伽羅) 등으로 음사한다. 마갈어, 마갈대어(摩竭大魚), 마가라어(麼迦羅魚) 등으로 부르고, 경어(鯨魚), 거별어(巨鼈魚), 대체(大體)로 한역된다. 

인도신화에서 바루나(Varuṇa)신이 수신(水神)으로 변모하면서 마까라를 타고 다녔으며, 갠지스강의 여신 강가(Gaṅgā)도 마까라를 타기 때문에 바다와 강의 신수(神獸)이다. 상상 속의 거대한 바다괴물이자 동양의 대표적 해수(海獸)로서 서양의 리바이어던(Leviathan)에 비견되기도 한다. 힌두교와 불교의 수호신으로 정착되면서 사원의 입구나 출입문에 장식되고 각 나라마다 독특한 문양의 마까라 상징체계를 갖게 되었다.

마갈어는 육상동물과 수상동물이 합체된 괴수(怪獸)로도 유명하다. 얼굴을 비롯한 앞부분은 코끼리, 악어, 사슴, 영양(羚羊) 등과 같은 육상동물의 형태, 동체와 꼬리 등의 뒷부분은 돌고래, 물개, 물고기 형상을 한 수상동물로 주로 묘사되기 때문에 이종적 복합생물로도 불린다. 

도상학적으로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맹수가 입을 크게 벌린 얼굴에 몸통 끝에는 꼬리가 있는 물고기로 주로 표현된다. 티베트불교에서는 악어의 턱, 물고기의 비늘, 공작의 꼬리, 코끼리의 몸통, 멧돼지의 엄니, 원숭이의 눈을 가진 복합적이고 신비한 존재로 그려진다.

‘대지도론(大智度論)’의 범본(梵本)에서는 ‘물고기의 왕(matsyarāja)’으로 불렸다. 길이가 수백 킬로미터나 되기 때문에 작은 물고기부터 고래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최고의 포식자이다. ‘법원주림(法苑珠林)’에서 마갈어의 머리는 18개, 눈은 36개로 갖가지 짐승의 머리가 합쳐져 있다고 설명되고,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에서는 마갈어의 머리가 사람, 코끼리, 말, 낙타, 당나귀, 소, 원숭이, 사자, 범, 표범, 곰, 큰 곰, 고양이, 사슴, 물소, 돼지, 개, 물고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구체적으로 풀이된다.

불교경전의 유명한 마갈어 이야기는 ‘잡비유경(雜譬喩經)’에 나오는 오백명의 상인 에피소드이다. 옛날에 오백명의 상인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던 중 거대한 물고기를 만난다.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 큰 고기가 입을 벌려 상인들을 잡아먹으려 하였다. 

배가 물고기의 입 쪽으로 휩쓸리자 상인들의 우두머리는 돛을 내리게 한다. 하지만 배는 멈추지 않고 나아갔고 우두머리가 일꾼에게 바다 위에 무엇이 보이는가를 묻자 “위에는 두 개의 해가 나와 있고 아래는 흰 산이 있으며 중간에는 검은 산이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상인의 우두머리가 놀라며 “그것이 바로 거대한 마갈어이다. 우리는 액난을 만났다. 이 고기의 배로 들어가면 살아날 수 없다. 그대들은 저마다 섬기는 신이 있을 터이니 일심으로 구제를 청하라”고 한다.

상인들은 저마다 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구제를 요청하였다. 하지만 배가 너무도 빨리 마갈어의 입으로 들어가게 되자 우두머리는 “나에게는 큰 신[大神]이 계신데 그 명호는 부처님이다. 그대들은 저마다 본래 받들었던 신을 버리고 일심으로 부처님의 이름을 부릅시다”라고 제안하고 오백명 모두 큰 소리로 ‘나무불(南無佛)’을 외친다. 

이때 부처님의 명호를 들은 마갈어는 ‘오늘날 세간에도 부처님께서 계시는구나. 중생들을 해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입을 다물어버린다. 이내 물이 모두 거꾸로 흘러 점차 마갈어와 멀어지면서 오백명의 상인들은 고난에서 벗어났다.

마갈어는 해상의 재액(災厄)을 일으키는 거대한 공포의 대상이다. 상인들이 맞닥뜨린 마갈어는 우리가 만나는 세간의 엄청난 고난을 상징한다. 이 에피소드는 부처님 명호의 강력한 구제력이 수많은 인간을 구해낸 놀라운 기적의 이야기로 유명하다. 

이 기적에는 비록 인간을 해치는 축생으로 태어났지만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전생의 일을 기억하고 생각하여 선한 마음을 일으킨 마갈어의 개심(改心)도 포함되어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김진영 서강대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639호 / 2022년 7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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