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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봉 스님이 어린수좌가 불공 드릴 공양물 선방에 건넨 것 듣고 한말

  • 출판
  • 입력 2022.07.11 14:36
  • 수정 2022.07.11 18:03
  • 호수 1640
  • 댓글 3

경봉 스님과 제자, 시자, 신도, 수행승들 일화 73편 수록
묵직한 여운…죽비로 내려치듯 경책과 크나큰 위안 선사

뭐가 그리 바쁘노
김현준 엮음 / 효림
176쪽 / 5000원

‘진정한 큰스님’으로 추앙받았던 경봉 스님은 생전에 수많은 사람에게 감로법을 베풀고 깨우침을 줬다. 
‘진정한 큰스님’으로 추앙받았던 경봉 스님은 생전에 수많은 사람에게 감로법을 베풀고 깨우침을 줬다. 

통도사 극락선원 경봉 스님(鏡峰, 1892~1982)은 한국 근현대불교사에서 가장 많은 일화를 남긴 큰스님 중 한 분이다. 세수 91세, 법랍 77세로 장수도 했지만 생전에 수많은 사람에게 감로법을 베풀고 깨우침을 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생은 연극이요, 이 세상은 연극무대가 아니더냐! 사바세계를 무대 삼아 연극 한바탕 멋있게 잘해야 한다”던 경봉 스님의 일화집이다. 스님의 대표법문을 시작으로 일화 73가지가 실려 있다. 유발상좌인 김현준 불교신행연구원장이 2020년 말부터 경봉문도회 도움을 받아 엮은 것으로 월간 ‘법공양’에 9개월간 연재됐던 내용을 보완했다.

여기에는 스님이 제자, 시자, 신도, 수행승 등과 함께한 일상이 생생히 펼쳐진다. 장군죽비로 내려치듯 정신이 번쩍 들게도, 때로는 크나큰 위안도 선사한다. 스님은 사람들과 웃으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지만 그 말에는 날카로운 선지(禪旨)가 감춰져 있었다. ‘밥 먹었나’ 일화도 그중 하나다. 스님은 찾아온 이들에게 자주 물었다. “밥 먹었나?” “안 먹었습니다.” “공양간에 가서 밥부터 먹어라.” 나중에 스님이 말했다. “내가 ‘밥 먹었나?’ 하는 것은 진리의 밥을 먹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그런데 내 의중을 모르니 ‘그냥 안 먹었다’고 대답한다. ‘안 먹었다’고 하니 ‘공양간에 가서 밥부터 먹어라’고 할 수밖에는.”

때로는 “밥을 먹고 왔다”고 하면서 곧바로 자신의 문제를 되묻는 이들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습니까?” “밥 잘 먹을 줄 알면 된다.” “어떻게 하면 성공을 할 수 있습니까?” “밥 잘 먹을 줄 알면 된다.”

밥 잘 먹을 줄 알면 공부를 잘하고, 성공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밥을 먹어야 잘 먹는 것인지는 스님을 친견했던 이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 던지는 화두다.

‘뭐가 그리 바쁘노’는 일에 쫓기는 사람들에게 경책이 되기에 충분하다. 1974년 겨울 저명한 불교학자인 이기영(1922~1996) 교수가 스님을 찾아와 절하며 말했다. “바삐 사느라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스님은 이 교수를 지긋이 쳐다본 다음 물었다. “뭐가 그리 바쁘노?” 이 한마디에 충격을 받은 이 교수는 서울로 돌아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바빴던 것이 무엇인가? 써 달라는 글 쓰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강연을 하느라 바쁘고 힘들게 산다고 생각해왔다. 경봉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 일들이 내가 꼭 해야 할이요 바쁜 일이었던가 싶더구나. 경봉 스님께서는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공부를 해서 깨우치는 불교를 가르쳐주셨다. 정말 대단한 분이요, 무애자재한 도인이시다.”

스님의 너그러운 성품을 알 수 있는 일화들도 여럿 있다. 1960년대 마을도 절집도 가난했던 시절, 17세 된 어린수좌가 스님의 배려로 안거를 지내게 됐다. 엉뚱한 일을 자주 벌여 대중들을 놀라게 하곤 했는데 한 번은 불공에 쓰려고 부처님 전에 올려놓은 과일을 한가득 선방으로 가져왔다. 내막을 모르는 선방스님들이 특별 보시가 들어왔나 싶어 먹었는데 잠시 후 난리가 났다. 재(齋)를 지내려고 원주가 시내까지 걸어가서 사온 것을 맹랑한 수좌가 몽땅 스님들에게 대접한 것이다. 야단치고 고함 소리가 커지자 스님이 나와 자초지종을 듣고 말했다.

“조용히 해라. 살아있는 부처가 먼저 먹어야지.” 스님의 한마디에 사건이 순식간에 잠재워졌고, 수좌들에게도 큰 자부심까지 심어주었다.

1965년 극락암 후원 요사채에 불이 났을 때다. 한 행자가 밤늦게까지 있다가 촛불을 켠 채 나와 나중에 불이 옮겨 붙은 것이다. 모두들 깜짝 놀라 발만 동동 구를 때 스님이 일일이 지시하고 격려했다. “너는 물을 떠서 이리 가고, 너는 저리 가서 불을 꺼라. 그래그래, 잘한다.” 불이 꺼지자 “모두 욕봤다. 얼른 들어가서 자거라!” 스님의 한마디에 모두들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으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누구를 야단치거나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슬며시 웃음이 나는 일화들도 있다. 한 젊은 승려가 극락암으로 올라가다가 산길에 앉아있는 스님에게 물었다. “오는 중입니까, 가는 중입니까?” 젊은 시자가 “노장님께 중이라니?”라며 발끈하자 스님이 시자를 말리며 말했다. “나는 쉬고 있는 중이라네.” 촌철살인의 해학이 아닐 수 없다.

특히 80의 고령에도 밤을 새워가며 격려하고 경책한 일화는 울림이 크다. “바보가 되거라. 사람 노릇하자면 일이 많다. 바보가 되는 데서 참사람이 나온다.” “새벽에 눈을 딱 뜨는 순간, 가장 먼저 화두가 들리는 상태가 될 때까지 힘써 노력해야 한다.”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공부해라. 사람 노릇한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시비하고 인사하고 세상 잡사에 시달리면 공부를 못한다.” 스님은 안거를 마치고 떠나는 수좌들에게 말했다. “이번 철 밥값은 했느냐? 이 극락의 문을 나서면 돌도 많고 물도 많다. 돌부리에 채여서 자빠지지 말고, 물에 빠져서 옷을 버리지도 말고 잘 가거라.”

이밖에 사찰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처음 이름 붙인 이유, 통도사 방장을 지낸 원명 스님이 원주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떠나려 할 때 마음을 돌리게 해준 잊지 못할 한 마디, 스님이 열반에 가까웠을 때 보여줬던 이적과 열반 후의 일화 등도 흥미롭다.

책은 얇지만 감동은 묵직하다. 김현준 원장이 책 말미에서 “‘재미있네. 잘 읽었어’ 하며 책꽂이에 꽂아버리지 말고, 옆에 두어 읽고 또 읽으시기를! 주위의 분들께 일독을 권해주시기를!”이라는 당부에 공감하는 것은 스님의 일생이 주는 여운이 짙기 때문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40호 / 2022년 7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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