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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대강백 운허 스님이 남긴 불후의 명작

  • 불서
  • 입력 2022.07.20 15:27
  • 수정 2022.07.20 17:56
  • 호수 1641
  • 댓글 0

능엄경 강화
한역 반랄밀제 / 강설 운허 스님 / 동국역경원 / 총 3권 2353쪽 / 각 3만8000원, 세트 11만원

1974년 봉은사 역장에서 강의
강의 녹음테이프 떠돌던 것을
월운 스님이 듣고 책으로 출간
출간 30년 만에 새롭게 정리

20세기 최고의 역경승으로 꼽히는 운허 스님.
20세기 최고의 역경승으로 꼽히는 운허 스님.

운허 스님(1892~1980)은 20세기 최고의 역경승으로 꼽힌다. 평북 정주가 고향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일본 경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1921년 강원도 봉일사에서 삭발했다. 비교적 늦깎이에, 예기치 않았던 출가였지만 곧바로 불교에 심취했다. 출가 전부터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스님은 금강산 유점사, 부산 범어사, 서울 개운사 강원에서 불경을 익혔다. 1936년 봉선사 홍법강원에서 강사를 시작으로 동학사·통도사·해인사 등에서 강사를 지내며 강백으로 이름을 날렸다. 1961년 국내 최초로 ‘불교사전’을 간행했으며, 1964년 동국역경원을 설립해 ‘능엄경’ ‘화엄경’ ‘열반경’ ‘유마경’ ‘금강경’ 등 많은 경전을 번역함으로써 고려대장경 한글화의 기반을 다졌다.

‘능엄경’은 운허 스님에게도 각별한 경전이다. 젊은 시절 강원에서 경전을 지도할 때 몇몇 강사스님들이 모여 “여러 경전을 다 가르쳐 깊은 연구를 못하는 아쉬움이 있으니 경 하나만 전공해 가르치자”고 약속했다. 이때 운허 스님이 부피가 많은 ‘능엄경’을 맡았는데 그것을 계기로 일생 ‘능엄경’을 깊이 파게 됐다는 것이다.

‘능엄경 강화’는 운허 스님이 83세 때인 1974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봉은사 역장(譯場)에서 역경연수생을 위해 강의한 내용이다. 당시 연수생이었던 혜업 스님이 꾸준히 강의를 들으며 녹음했고, 복사된 그 녹음테이프가 인연 따라 떠돌고 있었다. 그렇게 사라져버릴 녹음테이프에 생명력을 부여한 것은 운허 스님의 제자인 월운 스님이다.

운허 스님이 입적한 뒤인 1982년 겨울 월운 스님이 대구 서봉사 법회에 참석하려 들렀을 때 그 테이프를 발견해 듣게 됐다. 녹음 상태가 좋지 않은데다가 순서가 뒤바뀌고 누락된 곳도 많았다. 스님은 이를 바로잡아 공개하면 많은 이에게 도움이 되리라 확신했다. 뒤바뀐 곳은 바로 잡고, 빠진 곳은 운허 스님의 ‘능엄경주해’를 참고·보완해 총 56집으로 만들었다. 1983년 4월, 봉선사 불교전문통신강원을 개설해 이를 유포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 또한 제대로 알아듣기 어렵게 되면서 녹취를 풀어 책으로 출판하기로 했다. 편찬은 월운 스님이 맡고 녹취는 동학사 강원의 경문 스님이 담당했다.

그렇게 1993년 세상에 선보인 것이 ‘능엄경 강화’다. 중인도 고승 반랄밀제가 한역한 ‘능엄경’은 한국불교 근본경전 중의 하나로 ‘금강경’ ‘원각경’ ‘대승기신론’과 함께 강원 사교과(四敎科) 과목의 하나다. ‘소화엄경(小華嚴經)’이라 불리며 널리 읽히고 연구됐던 이 경은 전체 10권의 각 권에 수록된 내용들이 모두 한국불교의 신행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능엄경’은 팔만대장경의 축소판이라 하여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 가운데 최후로 설한 법문으로 알려져 있다.

‘능엄경’은 고려시대 우리나라에 전래된 후 한국불교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조선초 간경도감에서 언해본이 간행되고 조선후기 대강백 연담유일 스님 등도 주석서를 남겼지만 여전히 난해한 경전으로 여겨져 왔다. 운허 스님의 ‘능엄경 강화’가 출간 이후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계환소’ ‘지장소’ ‘정맥소’ ‘산보기’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하며, 거북 껍질처럼 딱딱한 경문을 쉽게 이해하도록 강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동국역경원에서 3권으로 새롭게 펴낸 ‘능엄경 강화’는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국한문혼용을 한자 병기로 바꾸고 현대 맞춤법 규정에 맞게 문장을 수정했다. 다만 운허 스님의 독특한 평안도 사투리, 청중의 질문 등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형대로 두었다.

‘능엄경 강화’에는 근세 대강백이 일생 탐구한 깊은 안목과 혜안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렇기에 30년 전이나 지금, 그리고 30년 후에도 이 책은 광활한 불교의 세계에 입문하는 초학자들에게 훌륭한 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 분명하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42호 / 2022년 7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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