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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가벼움

이제는 꽤 세월이 지난 이야기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방송에서 검사들과 직접 토론을 벌였던 일이 있다. 그 당시 필자는 이 일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상당히 우려하기도 하였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말 그대로 국가원수의 위치이다. 그런 사람이 곧바로 대중매체에서 여과 없는 토론을 한다는 것은 원수라는 지위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다는 생각이었다. 그 자리는 최종결정을 하는 자리이고 권력의 정점이기에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큰 영향을 미치는 자리이다. 그리고 어떤 결정이 혹 잘못되었다면 책임지고 그것을 바로잡아야 할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가볍게 대중 앞에서 토론을 벌인다는 것은 토론의 승부를 떠나서 그런 일을 벌이는 자체가 국가원수의 위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그 정권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와는 전혀 관계 없는, 하나의 단편적인 일에 대한 평가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둔다.

대통령의 자리라는 것을 권위주의적 시각에서 보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진솔하고 대중친화적인 모습이 좋은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완전히 사적인 영역의 행위에만 해당되어야 한다. 하나의 행동 하나의 말이 큰 파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사람이 공적인 영역, 정치적인 파장을 미치는 영역에서 쉽게 행동한다는 것은 그런 말로 좋게 포장될 수가 없다. 거기에서 하나가 잘못되면 수많은 일이 일파만파로 잘못되어 나갈 위험이 있다. 원수의 자리라는 것은 원래 그래서 무겁고도 두렵다는 것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함부로 휘두르기 시작하면 다른 의미에서 무겁고도 두려운 결과를 낳게 된다. 그리고 필자는 요즈음 윤석열 대통령의 언행에서 그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우선 도어스테핑이라는 잘 알지도 못할 말로 이야기되는 그 가벼운 행태가 앞에서 말한 이유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런 일을 하는 것보다는 좀 딱딱하더라도 정식의 기자회견장을 꾸미고 하는 것이 백배 낫다. 어떤 질문이 나올지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 철저히 준비하여 진중하게 답하는 것이 옳다. 국정운영에 영향을 끼치는 말들이 쉽게 뱉어진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보아도 그리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말이다. 거기에다 뱉어지는 말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너무도 많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참으로 대통령의 근본 자세와 의식 수준을 의심하게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되면서 두려운 마음에 가슴이 무겁기까지 하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전 정권’ 타령이다.

이런 말은 한 개인의 차원에서도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잘못을 “그래도 남들보다는 낫지 않아?”하면서 우겨대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도 옹졸한 행태가 아닌가? 왜 잘못이 비교급으로 이야기되어야 하는가?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이 그 잘못을 고치는 첫걸음이다. 그런데 그 첫 걸음을 떼어놓지 않으려 하는 행태는 앞으로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것까지 다른 정권과 비교하고 탓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주관적인 느낌을 기준으로 잘못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합리화하지 못할 잘못이 없게 된다.

‘논어’에는 “소인은 허물을 범하면 반드시 변명해댄다”라는 말이 있다. 또 “군자의 잘못은 일식이나 월식 같아서 그 잘못을 모든 사람이 본다. 그렇지만 그 잘못을 고치면 또 변함없이 (해와 달 바라보듯) 우러러 본다”라는 말도 있다.

대통령이라는 ‘대(大)’자가 붙은 자리에 있는 분이 ‘소(小)’자가 붙은 사람의 행태를 보여서야 될 말인가? “참으로 잘못되었습니다. 겸허하게 비판을 받아들여 검토하고 고쳐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대통령, 아니 그런 정치인들이 넘쳐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의 행복일 것이다. 반대로 남과 비교하면서 주관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결국은 객관적 평가에서 ‘비교급’으로 ‘최악’ 또는 ‘최하’라는 평가를 얻게 될 것이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642호 / 2022년 7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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