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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 수행 강남선무도명상요가센터장 채희걸(현덕·50) - 하 

기자명 법보

스승의 출가 권유 거절했지만
의지처였던 수행처 늘 그리워
항상 14둔사 외며 자신 돌아봐
수행 도와준 모든 스승께 감사

현덕·50
현덕·50

경전에서 갈애와 사견에 끌려다니는 것을 ‘정복당한다’고 했다. 정복당하지 않고 자기 생각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해를 통해 있는 그대로 알고, 있는 그대로 본다는 여실지견(如實知見)으로 나아가야 한다.

각산 스님과의 개인 인터뷰 시간에 출가를 권유받은 적이 있다. ‘나에게 출가의 용기가 있는가?’ 선무도를 배우기 위해 골굴사에 갔을 때 적운 스님은 옆에 있던 스님에게 “데리고 내려가서 삭발시키고 행자복 입혀라” 말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머리 깎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고 오로지 선무도만 하고 싶었다. “스님! 저는 종갓집 종손입니다.”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부처님은 감각적 즐거움의 무상함을 깨닫고 진리와 영원한 행복을 찾아 속세를 떠났다. 아들이 태어나는 순간에도 오히려 가장 소중하고 유일한 자식을 하나의 장애로 간주하셨지 않은가? 각산 스님의 권유에 출가자로서의 자질을 인정받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확고한 구도심도 자식을 버리고 떠날 용기도 없었다. 국민 멘토로 거듭난 법륜 스님은 “자유를 찾아 나온 것이면 ‘출가'이고, 지금 있는 곳이 힘들어 더 좋은 곳을 찾아 나선 것이면 ‘가출'이다”고 하셨다. 또 송담 스님은 “진정한 참선은 일상생활을 벗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나 역시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이 불행하다거나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수행에 대한 욕심 때문에, 내겐 의지처였던 수행처가 늘 그립다.

각산 스님은 간화선과 초기 불교를 지도했다. 당시 나는 선무도를 통한 아나빠나사띠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각산 스님 덕분에 안반선 16관법을 체계적으로 정립할 수 있었다. 또한 접해보지 않았던 간화선이 초기 불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님에 의하면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놈이 뭐지?’하면 초기 경전에서 말했듯이 지금 이 순간을 사띠한 것이다. ‘법구경’ 제1게송에 ‘심위법본 심존심사(心爲法本 心尊心使)’ 즉 ‘마음이 모든 법의 근본이요, 마음이 최고의 지존으로서 그 모든 것을 부린다’는 것을 선불교에서는 ‘이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한다. 

각산 스님의 강의는 굉장히 체계적이다. 예를 들면 “불교의 목표는 열반이다. 열반을 얻으려면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지혜를 얻으려면 선정이 있어야, 선정을 얻으려면 정념을 얻어야 한다”와 같이 알기 쉽게 설명하신다. 또 선정을 지도할 때는 유독 목소리가 높아지시며 “상대방을 존중하되 그 누구도 믿지 말라”고 강조하신다. 스님은 “선정은 내 마음을 내려놓고 남을 차별 없이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때 서서히 눈앞에 다가온다”며 “오로지 부처님만이 선정을 발견했고, 불교만이 선정을 체험하게 한다”고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되돌려 쓰면 된다” “이 마음이 주제자이기에 힘들면 ‘내가 또 집착하는구나’, 괴로우면 ‘또 내 방식대로 하려 했구나’ 이것만 사띠하면 된다” “이것이 선이다” 하신 말씀들이 너무나 명쾌하게 다가왔다. 

스님의 지도를 받고, 중생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번뇌 오염원 ‘14둔사’를 항상 되뇌인다. ‘사견' ‘시기 질투’ ‘인색’ ‘의심’ ‘탐욕’ ‘성냄’ ‘어리석음’ ‘양심·수치심 없음’ ‘들뜸’ ‘후회’ ‘게으름’ ‘자만’ ‘무명’ ‘혼침’ 등 다겁생 동안 윤회의 업식을 만들어 낸다는 번뇌 오염원. 오늘은 또 얼마나 중생심이 작동하고 얼마나 사띠했는지 되살피며 수행한다.

경전에 이르길 “스승은 의사와 같아서 어떤 중병도 낫게 하고, 엄청난 재벌과 같이 많이 베푸는 힘을 가진 대공덕주(大功德主)와 같아 모든 사람의 굶주림을 해결해준다”고 했다. 스승의 힘은 제자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스승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반듯한 마음의 자유를 얻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선무도 수련을 통해 몸·마음·호흡의 조화를, 안반선·간화선을 통해 불법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3천배 21일 수행·300배 1000일 수행을 통해서는 한계를 뛰어넘는 인내심을 얻게 해 주신 모든 스승님께 감사하다. 궁극적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 이번 생은 삶의 다른 어떤 가치보다 수행을 최우선으로 하며 살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발원한다.

[1642호 / 2022년 7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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