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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명상붐의 이면

기자명 이병두

법보신문 7월22일자 ‘실리콘밸리 명상문화는 생산성 위한 정신적 해킹’이라는 제하의 보도는 한국 불교계에도 숙제를 안겨준다. 이 기사는 캐롤린 첸이라는 미국인 교수가 신간 ‘워크 프레이 코드(Work Pray Code)’에서 “‘기업들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영적인 방법으로 직원들을 깊숙한 내면부터 기업을 사랑하고 헌신하도록 유도한다’면서 결국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명상을 [왜곡] 재포장하였다’고 주장한다”고 소개하였다.

꽤 오래 전부터 미국과 유럽 등 비불교권 국가의 백인들 사이에서 명상 붐이 일어나고 자연스레 불교 인구도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불교계에서도 “이제 불교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라며 매우 좋은 징조로 받아들이는 스님과 불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이 명상에 열광하는 것은 과거 196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 기존 사회 질서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된 히피 문화와 비슷한 점이 있음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유럽과 미국 등지 백인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참선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일부 기업에서 사내 직원 연수 등에 명상 또는 참선수행을 포함시키는 곳이 늘어났다. 스포츠 선수들의 경우엔 올림픽이나 세계대회가 끝난 뒤 “참선 효과를 보았다”는 소식이 알려지기도 하였다. 이처럼 명상 참선 수행으로 효과를 보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과 바람이 과연 긍정적이기만 할까.

기업들이 명상과 참선을 왜곡·악용하는 문제점을 캐롤린 첸이 비판하기 오래 전에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가 ‘불교 파시즘: 선(禪)은 어떻게 살육의 무기가 되었나?’와 ‘전쟁과 선’이라는 저서를 통해 참선수행이 과거 군국주의 일본 군대의 침략 전쟁에서 어떻게 악용되었는지,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그 전통이 일본 기업에 그대로 이어져 직원들의 정신 무장 도구로 삼고 있는 문제점을 낱낱이 밝힌 적이 있다.

일본의 선불교를 미국에 본격 전파하여 유명한 D. T. 스즈키(鈴木大拙)는 1943년에 “대동아전쟁이라고들 하지만 그것의 정수는 동아시아의 문화를 위한 일종의 이데올로기 투쟁이다. 불자들은 반드시 이러한 투쟁에 참여해 자신들의 필수적인 임무를 완수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스승인 샤쿠 쇼엔(釋宗演)의 “양립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 조화를 일으키는 수단으로써 살생과 전쟁은 필요한 것”이라는 주장을 충실히 이어받은 데 불과하다.

도조 히데키를 비롯하여 당시 일제 군부의 고위급 장군과 영관급 장교들은 거의 대부분 참선을 생활화하며 특정 선사를 스승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동맹국이었던 나치 독일에서도 일본군인들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인 정신을 확립하는 데에 참선 수행이 유용하다고 판단하여 대표단을 일본에 보내 훈련을 시켰던 사실도 밝혀졌다.

그런데 1945년 이후 더 이상 군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된 일부 선사들이 기업 쪽에서 생존 가능성을 찾아낸 것이다. 기업에서는 직원들에게 ‘상급자에 대한 규율과 복종, 충성’ 등을 주입시키는 방법으로 참선을 이용하며 “언제 어디서나 무아 상태로 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승 사카이 토쿠겐(1912~1996)은 사원 연수에서 “우리에게 할당된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전 우주적 생명의 일부가 되며, 우리의 본래적인 진아(眞我)를 실현한다”고 강조한다. 무아와 군인정신을 역설하며 침략 전쟁에 앞장섰던 이들의 논리를 그대로 이어받아 기업의 논리를 정당화하고 있다.

나라 안팎에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명상과 참선 수행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는 현상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과거 일제 군부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던 일본 불교의 전철을 그대로 좇아서 인간을 ‘일하는 도구’로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할 가능성은 없는지 거듭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643호 / 2022년 8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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