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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권통치의 한계와 자기성찰

기자명 원영상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야만의 상태에 있었다. 먹고 먹히는 인간관계가 그나마 ‘휴전’을 선포한 것은 시나브로 법의 등장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함무라비 법전, 로마의 법률, 법가(法家)들의 치세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법은 통치의 기술을 제공하기도 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법은 현대사회에서 삶을 실질적으로 조율하는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그렇다고 법이 인간의 모든 갈등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 오히려 법에 의존함으로써 더 많은 함정에 빠지고 있지는 않을까. 식민지, 전쟁, 군사정권, 민주화, 노동운동의 역사를 거치면서 마침내 귀결된 검권(檢權)통치가 바로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직이 검사였던 최고실권자와 그 측근들의 정치는 이 사회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희망은 실망으로, 실망은 절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직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윤석열 정부는 벌써 레임덕에 가까워지고 있다.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사문제, 이전 정부에 대한 책임전가, 일방적인 정책설정, 여당 내부의 권력 쟁투, 점점 사유화되어 가는 검찰권력 등으로 백성들이 피땀 흘려 쌓아올린 높은 사회적 윤리와 도덕 수준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있다. 이것은 법치의 한계이자 법률가 통치의 한계이기도 하다. 

법은 통치의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법으로 백성들을 이끌겠다면 그것은 하수(下手)에 해당한다. 상수(上手)는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법은 인간 최고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존재의 절대적 가치를 드러내지 못한다. 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자유는 행복의 최저조건에 불과하다. 법을 단순히 실정법 수준으로 이해하는 한 동아시아에서 진리(dharma)를 법이라고 하는 까닭을 알지 못할 것이다. 진리는 인간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행복도 포함한다. 법의 궁극적 이념은 자비희사(慈悲喜捨)와 같은 각자(覺者)의 정언명법에 기반해야 한다.

따라서 법을 운영하는 자들은 항상 진리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한다. 인간 완성을 향한 불법의 뛰어난 점은 인간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석존은 사위국 녹모원에서 하안거가 끝나는 7월15일 자자일(自恣日)에 수세(受歲)를 위해 종을 치라고 하셨다. 수세에 대해 묻는 아난에게 석존은 “세 가지 업을 깨끗이 하는 것이니 몸과 입과 뜻으로 행한 일이니라. 비구들은 서로서로 마주 대하여 저마다 제 잘못을 고백하여라”라 하고, “나도 깨끗한 마음으로 수세하련다. 원컨대 내 허물을 들추어내라”(‘증일아함경 제24권 선취품(善聚品)’고 하셨다. 나이를 더한다는 수세는 불가의 나이인 승랍을 더하는 것이다. 육신의 나이는 세월이 가면 자연히 더해지지만 정신적 나이는 수행으로 성숙해져야 더해진다. 석존의 가장 인간적인 측면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음의 청정함을 수행의 제일 덕목으로 삼으신 것이다. 

몽산덕이 선사의 ‘휴휴암좌선문’에서는 이러한 수행의 요체를 설파한다. “외경이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중심이 적적하여 요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이르되 좌라 하고, 밖으로 쏠리는 정신 빛을 돌이켜 비쳐서 자성 본원에 사무치고 있는 것을 이르되 선”이라고 하며, 안팎의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 자유자재의 경지를 좌선이라고 한다. 양심적인 판결을 헌법으로 보장받는 판사, 정의의 칼날을 범법자들에게 들이대는 검사, 고용된 총잡이로서 의뢰인에게 법률 조력을 해주는 변호사라는 법조삼륜은 선악을 판단함에 있어 이처럼 성성적적(惺惺寂寂)한 진공묘유의 마음을 확보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특히 국가권력마저 쥐게 된 검사출신 권력자들은 석존만큼의 수행력을 갖추지는 못했을지라도 진리와 양심과 대중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회광반조의 힘이 법기술자들의 자기 정당성을 더욱 튼튼하게 함은 만고불변의 원칙이다. 부처를 부처이게끔 한 법신(法身)·법성(法性)의 진리가 항상 가슴 속에서 들려오는지 귀 기울여야 한다. 무위의 심법, 무념·무착의 판단, 중도행에서 나온 도치(道治)야말로 최고의 정치임을 깨달아야 한다.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644호 / 2022년 8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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