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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빠나 사띠 수행 김은주(향산·55)

기자명 법보

아이의 갑작스런 방황으로 근심
상황·갈등 본질 몰랐음 알아차려
마음관리 배우고자 수행 입문해
내면 집중, 흔들리는 마음 잡아줘 

향산·55
향산·55

마음관리 기술이 하나는 있어야 100세 시대를 살아갈 것이다.

아이는 나의 빛나는 왕관이었다. 신생아 때는 순해서 울지도 않았고 낮과 밤이 바뀌는 것도 없었다. 잘 먹고 잘 자서 언니는 신이 준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자라서는 적극적이고 주도적이었다. 9살 땐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캐리어에 앉아 학습지를 풀었고, 반장을 도맡으며 중학교를 전교 1등으로 졸업, 고등학교도 수석 입학했다. 전교부회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런데 당연하게 여겨졌던 상황이 한순간 변해버렸다. 아이는 중간고사 수학에서 2문제를 틀렸는데, 나는 그럴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아이는 완벽함에 금이 갔나보다. 그렇게 생긴 금은 아이의 자아를 바꿔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방황이 시작됐다. 대학입시를 일찍 마친 아이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버렸다. 아이의 삶이 동상에 걸린 사람처럼 마비되는 것 같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주물러서 삶에 대한 감각들을 깨워주려고 했다. “먹구름 이면에는 태양으로 빛나는 안쪽이 있다는 속담도 있어.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잖아. 그것들을 해보자.” 그 와중에도 아이는 여행을 좋아했다. 차를 몰고 근교 카페를 수시로 들락거리고 남해, 제주도로 범위를 넓혀 가며 돌아다녔다. 어느 날, 바다거북을 보는 스노쿨링을 하다 깊은 바다절벽 아래로 스킨스쿠버가 가는 것을 보고 마치 아이가 어두운 심해 절벽 아래로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나는 가족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아이를 설득하면서도 전교 1등·올 1등급에 얽매여 그동안 쏟아 부은 사교육비를 안타까워했음을 알아차렸다. 빛나던 왕관은 이제 무게를 견딜 수 없는 왕관이 되어버렸다. 

머리와 몸이 무거워져 일어날 수 없었다. 알람을 10분 단위로 다시 맞추길 반복하다 출근 데드라인에 겨우 일어났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전신이 무거워지고 무기력해져 일어나지 못하곤 했다.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하면서 한 달간 시간이 멈췄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전혀 즐길 수 없었다. 운동이나 책읽기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오로지 이전의 실패와 어리석음에 대한 자책이 일상이었다. 

부처님의 겨자씨를 찾으러 마을을 샅샅이 돌아다녀야 할까. 인터넷 시대엔 굳이 마을로 내려가지 않아도 검색으로 금방 울부짖는 ‘끼사고따미’들을 만날 수 있다. 한 아버지의 기사를 보았다. 딸 둘을 모두 잃고 나니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알았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잃은 게 아니라 빛나던 왕관을 잃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100세 시대를 살아간다면, 전전긍긍하면서 나머지 시간을 살다 가긴 싫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방식으로는 제 명대로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제는 단단한 마음관리 기술을 지니고 싶었다. 그렇게 김해 싸띠아라마에서 부처님의 수행법을 익히게 됐다. 

걷기 수행은 기준점을 움직이는 발바닥에 두고 몸을 움직이다 보니 그래도 집중이 잘 됐다. 좀 더 느리게 걷는 수행을 하다 보면 과거·미래 생각들이 뒤죽박죽이 되어 다리가 흔들거리기도 했다. 1시간 정도 걷기 수행을 하고 난 뒤 자리에 앉았다. 고요히 내 자신에게 집중했다.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정진했다. 1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내적으로 끊임없이 흔들리며 집중이 힘들었다. 내적으로 굉장히 바빴다. 수면 아래로 다리를 파닥거리며 수면 위를 유유히 떠가는 백조가 된 것 같았다. 30분이 지나면 다리, 허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다시 통증이라고 이름붙이고 알아차림 하면서 기준점인 호흡으로 돌아갔다. 호흡에 집중하고 생각이 떠오르면 생각이라고 이름붙이고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토요일엔 선실에서 걷기와 앉기 수행을 2시간씩 한 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집중 수행에 나서고 있다. 평일에는 앉기 수행을 하고 있다. 내 삶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기준점에 집중하려고 한다. 백조가 된 혼자만의 이 투쟁시간은 내 마음의 닻을 내려 바다로 마구 휩쓸려가지 않도록 해준다.

[1645호 / 2022년 8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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