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종교학회에서 113년 만에 처음으로 동아시아계 회장이 탄생했다. 박진영 아메리칸대학 교수가 1만여 회원이 활동하는 미국종교학회 차차기 회장으로 선출됐다.
미국종교학회는 부회장(Vice President)에 당선되면 다음 해부터 1년씩 차기회장(President-Elect), 회장(President), 전임 회장(Past President)을 맡는다. 지난해 10월 부회장에 선출된 박 교수는 올해 11월 차기회장을 거쳐 내년 11월 정식 회장에 취임한다. 동아시아계 종교학자가 미국종교학회를 이끄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 교수는 8월22일 법보신문 인터뷰에서 “AAR에서 비서구권 연구자들이 국경 없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1909년 설립된 미국종교학회(AAR,American Academy of Religion)는 종교학 분야로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 단체이다. 당연히 회장도 세계 최고 종교학자들이 맡는다. 역대 회장으로는 미국 출신 최초의 유대인 여성주의 신학자 주디스 플래스코우를 비롯해 마크 저겐스마이어, 웬디 도니거, 에밀리 타운스, 피터 파리, 레베카 촙, 엘리자베스 앤 클라크, 앤 태브스 등이 있다. 미국종교학회는 매년 11월 학회를 열고 학술지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Religion’를 발간한다.
미국종교학회는 1963년 전까지 기독교를 연구하는 성서교육자협회(NABI, National Association of Biblical Instructors)로 불렸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여전히 학회의 주류는 기독교 신학자들이다. 때문에 ‘동아시아계’ ‘여성’ ‘불교학자’가 유리 천장을 뚫고 회장으로 선출되는 건 매우 이례적 현상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울 종로가 고향인 박 교수는 연세대 영문과 학·석사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학을 거쳐 현재 아메리칸대학 철학·종교학과 교수 및 학과장을 맡고 있다. 아메리칸대학은 미국 워싱턴D.C. 소재 명문 사립 종합대학이다. 동양철학·비교철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북미한국철학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 교수 저서로는 ‘불교와 해체철학’ ‘불교와 탈근대성’ ‘한국근대불교의 형성자들’ 등이, 논문으로는 ‘Zen and Zen Philosophy of Language(선과 선의 언어철학)’ ‘Zen Language in Our Time: the Case of Pojo Chinul's Huatou Meditation(우리 시대에 있어서 선의 언어: 보조 지눌의 화두선의 경우)’ 등이 있다.
박 교수는 일엽 스님(1896~1971)의 평전을 최초로 쓴 학자이기도 하다. 일엽 스님은 근대문학사의 뛰어난 신여성 문인으로 활약하다가 불교에 귀의, 수덕사에서 한국불교의 대표적 비구니 선승으로 이름을 떨쳤다. 박 교수는 2001년부터 서울 헌책방을 뒤지고 미국 중고책 사이트를 검색해 일엽 스님이 남긴 다수의 글을 발굴해 냈다. 2004년부터 11년 동안 일엽 스님의 삶과 사상을 연구해 영문판 평전 ‘Women and Buddhist Philosophy: Engaging Zen Master Kim Iryŏp(여성과 불교철학: 김일엽 선사를 통하여)’을 발간 했다. 일엽 스님의 철학적 면모를 본격적으로 다룬 건 이 책이 처음이다.
2014년에는 일엽 스님이 쓴 ‘어느 비구니 선승의 회상(Reflections of a Zen Buddhist Nun)’을 영문으로 번역해 펴냈다. 당시 출판 간담회에서 박 교수는 “일엽 스님은 당대의 여걸이자 숨겨진 선객(禪客)”이었음을 역설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46호 / 2022년 8월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