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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가 막 지났다. 예부터 처서에는 왱왱대던 모기의 입이 돌아가고, 쑥쑥 자라던 풀도 갑자기 성장하기를 멈춘다고 했다. 갑자기 서늘해진 기운에 모기와 풀도 깜짝 놀란다는 비유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날씨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거짓말처럼 체감온도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가까이 있던 하늘도 저만큼 높아졌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음을 깨닫는다. 절기(節氣)의 법문은 이렇게 미묘하기만 하다. 

꼬박 보름 동안 집수리에 매달렸다. 하필이면 가장 더울 때였다. 낯선 사람들이 제집처럼 들락거리며 집안 곳곳을 헤집어 놓았다. 가지런하게 놓여 있던 가재도구들이 치워진 자리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뒤엉켜 나뒹굴고 있었다. 켜켜이 쌓여 있던 해묵은 먼지들은 서로 하이파이브라도 하는 듯이 여기저기서 낡은 풍선들을 터뜨려댔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집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우리 내외는 졸지에 오갈 데 없는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가장인 나는 쪽잠이라도 잘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겹겹이 쌓아 올린 살림살이 사이로 두 사람이 겨우 몸을 뉠 수 있는 동굴 같은 장소 한 곳을 발견했다.

한여름이라 씻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먹는 일이 고역이었다. 부엌을 사용할 수 없으니 밥을 제대로 해 먹을 수 없었다. 컵라면과 김밥이 가장 손쉬운 연명 수단이었다. 나중에는 편의점에서 사 온 햇반과 동네 반찬가게의 멸치볶음으로 몇 끼를 때우기도 했다. 더러 밖에서 사 먹기도 했지만 뭔가 허전했다. 라면에 식은밥을 말아먹더라도 늘 먹던 집밥이 먹고 싶었다.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줄만 알았던 집밥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온몸으로 체득했다. 그것은 말로만 듣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그 자체였다. 하긴 옛 선사들도 도(道)는 다반사(茶飯事)에 있다고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던 인테리어 공사를 서두르게 된 것은 팬데믹으로 3년째 입국하지 못하던 아들 부부가 모처럼 휴가를 내어 집에 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들만 온다면 굳이 한여름에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영상통화로만 만나던 미국인 며느리를 위해 작은 정성이라도 보여주겠다는 부모된 마음이 컸다. 아들은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갔다가 거기서 만난 여자친구와 현지에서 줌(zoom)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위세에 눌려 결혼식에 참석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실물로는 처음 보는 며느리를 위해 아들이 쓰던 방을 조금 고치기로 했고 내친김에 주방과 욕실도 함께 손을 보게 되었다. 소박하게 시작한 일이 어느새 제법 거창한 공사가 되고 말았다. 이것저것 더하고 싶은 것이 자꾸 늘어난 결과였다.

우리 부부는 시즌이 되면 휴가를 가야 한다는 일반적인 관념을 공유하지 않는다. 아마 언성을 높이지 않고 찰나의 순간에 의견일치를 보는 유일무이한 지점일 것이다. ‘어디 갈래? 가긴 뭘 가’가 우리의 휴가철 대화방식이다. 집보살은 생활환경이 바뀌는 것을 거의 병적으로 싫어하는데 유별나게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나도 뭐 도긴개긴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조금은 별난 가족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더러 외국에 나갈 기회도 생기지만 아내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많다.

아무튼 남들의 올 여름휴가는 우리 집 내부 수리 공사 기간과 정확하게 겹쳤다. 나로선 변명거리가 생긴 셈이지만 집안 정리를 하느라 체중까지 빠진 아내도 정말 휴가갈 생각이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아마 우리의 대화는 예년과 비슷하게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휴가는 무슨. 나중에 가’. 그래도 조만간 진지한 표정으로 내년 여름에는 아들 내외가 사는 미국 동부지역과 캐나다를 한번 둘러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과감하게 물어볼 작정이다. 여의치 않으면 시원한 내연산 계곡을 끼고 있는 청하 보경사라도 다녀올 계획이다. 기대 반 걱정 반 벌써 내년 여름 휴가가 기다려진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46호 / 2022년 8월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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