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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수행 구영애(법연지·55) - 상

기자명 법보

공허함·우울증에 빠져있던 중
동생 따라 수행선원 인연 맺어
회사 그만두고 선원으로 출근
집착, 괴로움 원인임 알아차려

법연지·55
법연지·55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우울이 늘 내 마음을 휘저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이겨내고 싶어서 이런 저런 수행을 시도했지만 생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마음을 괴롭혔다.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고, 삶의 끈을 놓고 싶었다. 

살고 싶은 마음에 인도로 떠났다. 여러 차례 인도에 방문했는데, 신기하게도 갈 때마다 숨을 쉴 수 있었다. 매일같이 먹고 자고 수행했다. 

귀국해서는 여러 책과 유튜브에서 수행법문을 들으며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마음속 우울과 약에 의존하는 삶이 쉽게 변하지 않았지만,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자 여러 수행법을 열심히 따라했다.

‘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선이란 조금 더 어려운 수행이라는 선입견만 있었을 뿐이다. 특히 선은 나와는 거리가 먼 수행법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시절인연인지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하게 ‘선’을 마주했다.

지난해 3월쯤 동생이 “언니, 서울 목동에 있는 가야산선원이라고 있는데 같이 한번 가보지 않을래?”라고 물었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동생을 따라갔던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선원을 다니고 있는 중이다. 매월 첫째 셋째 주 수요일 저녁에는 선원장 효담 스님이 선에 대해 법문을 한다. 스님의 법문이 있을 때마다 동생과 함께 참석했다.
 
처음엔 효담 스님의 선 법문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고 무슨 말씀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선원에 가기 꺼려졌다. 선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 고민을 할 즈음, 갑작스럽게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스님은 내게 쉬는 동안 매일 선원으로 나오라고 당부했다. 선원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첫 스승인 스님의 부탁을 거부하기 싫었다. 왜 매일 선원에 출근하라고 하는 건지 의문을 가진 채, 스님께서 시키신 대로 일단 매일 아침 수원에서 서울 목동 선원까지 출근하기 시작했다. 

오전 요가로 시작해 좌선, 그리고 점심공양 후 스님·도반들과 함께 오후 차담까지. 그렇게 몇 달을 수원과 서울을 오갔다.

3달째 접어들던 어느 날, 스님께서 내려 주신 차를 마시며 아무생각 없이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데 순간 나 자신도 모르게 ‘아’ 하는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때부터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속속 들리기 시작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됐고,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스님께서 내게 왜 매일 선원에 오라고 하셨는지 그제서야 이해됐다.

귀가 열린다는 게 이런 것이고 안목이 열린다는 뜻이 이런 것이라는 걸 느꼈다. 

“귀를 열라”고 수없이 강조한 스님께 새삼 감사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스님의 법문이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즐겨들었던 법상 스님의 법문도 이제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소소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예고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괴로움이나 우울증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우울증이 찾아왔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그 감정을 알아차리고 관찰하면 그렇게 정신을 괴롭히던 괴로운 생각·우울증도 잠시 머물다 사라질 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것들은 터줏대감처럼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에 깊게 뿌리를 내렸기에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지만, 전처럼 고통스런 괴로움에 빠져들진 않았다. 

화도 마찬가지였다. 화가 나면 그 화에 휘둘리지 않고 그저 바라보았다.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니 화 역시 금방 사라졌다. 지금까지 이런 해로운 감정에 휘둘렸기에 괴로웠음을 알았다.

인도에서의 생활이 왜 행복했는지도 이 때 알아차렸다.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도에서의 생활은 정말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마하보디 대탑에서 기도했다. 오전 수행이 끝나면 햇볕을 피해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 오후에 또 대탑으로 가서 수행을 하는 생활을 반복했었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지 않았고, 고민이 없으니 괴로울 일도 없었던 것이다.

[1649호 / 2022년 9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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