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명상의 종교인 불교에서도 체험·영험담은 무수히 편찬돼 왔다. 가장 중요한 고대 역사서인 ‘삼국유사’에도 신비로운 체험들이 숱하게 실려 있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불교사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경전과 논서가 있음에도 이러한 문헌들이 편찬·유통됐던 것은 왜일까? 특별한 존재인 불보살이 아닌 나와 같은 사람들 진솔한 얘기가 더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2014년 처음 발간된 조계종 신행수기 모음집은 옛 불교전통을 잇는 생생한 현대판 불교 체험·영험담이다. 신행수기 당선작이 불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는 것은 흔들리기 쉬운 신행생활의 이정표를 세우고 불보살의 길을 걸어가는 데 크나큰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 신행수기 모음집에도 질병, 고통,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등으로 몸부림치는 절망의 기록이 담겨있다. 부지런히 정진한 끝에 부처님 가피를 체험한 뒤 보살행을 실천하는 희망의 찬가도 있다. 저마다 다른 사연을 품은 수기들의 공통점은 바로 기쁨과 슬픔에 휩쓸리지 않고 지극한 신심을 다한 끝에 환희심을 느끼고 충만함에 이르는 데 있다. 특히 막내의 갑작스런 죽음을 어머니는 108배와 ‘법화경’ 사경으로 이겨내고, 누나인 자신은 삼천배로 동생과 못 다한 인연의 슬픔을 승화시키는 장면에서 참 불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려는 저마다의 노력이 담겨 있음도 눈길을 끈다. 오프라인 모임에 제약이 생기면서 위축되기 쉬운 종교생활은 언뜻 침체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점점 그 의미가 퇴색되는 듯했다. 그러나 불심만 있으면 사찰 내 뿐만 아니라 사찰 밖에서도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다는 점, 즉 마음을 내는 모든 곳에 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잘 드러난다.
“시련과 고통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몸과 마음으로 신심을 모아 쌓아올린 사리탑들이기에 그 울림이 더욱 크다”(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 “기복과 영험이 아닌 공부와 신행활동을 통해 극복한 평범한 개인의 체험으로 일반 불자들에게 보다 많은 공감을 줄 수 있는 감동으로 다가왔다”(주윤식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아직 불법에 인연이 닿지 않았거나 성취하지 못한 다른 분들에게도 포기하지 않고 정진할 힘과 용기, 올바른 길을 인도해주는 등대가 될 것이다”(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등 찬사가 쏟아졌다.
이제 절망의 밑바닥에서 희망의 물길을 길어 올린 이들의 체험에서 우러나는 감동을 느껴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50호 / 2022년 9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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