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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무식보다 오만한 태도가 더 문제다

기자명 남춘호

최근 서울에서 한 승객이 음료가 든 컵을 가지고 버스에 승차하다가 운전기사와 벌인 실랑이가 온라인 상에서 회자된 적이 있다. 해당 승객은 버스에 승차하려다가 테이크 아웃 컵에 든 음료 때문에 기사에게 제지를 받았다. 그러자 승객은 자신의 행동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기사의 제지를 “무식한 짓”이라고 반박했다. 그 승객은 “이걸 들고 타지 말라는 법적인 근거를 대라”며 오히려 기사에게 “노인네”가 무작정 그렇게 한다며 비난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또 다른 승객이 서울시에 관련 조례가 있다고 운전기사를 변호했다. 그러자 그 승객은 “조례는 가이드 사항이며,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계속 강력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음료를 든 채 버스에 오른 승객은 선의의 피해자였을까? 아니면 안하무인의 갑질러였을까? 서울시 의회는 2018년에 ‘시내버스 음식물 반입금지’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라는 것은 헌법에 의거한 지방자치단체의 법규이며,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그 승객은 자신의 무식함 때문에 갑질을 하면서도 갑질인 줄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틀렸음에도 틀린 줄 모르고 계속해서 자신의 판단을 과대평가하는 현상을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 부른다. 주창자인 더닝과 크루거의 이름을 따서 사용하는데, 기억하기가 쉽지 않아 필자는 ‘무식(無識)의 오만(傲慢)’ 효과라 부른다. 무식의 오만 효과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비논리적 추론으로 잘못 판단하는 인지편향 현상으로, 네 가지 행동 특징이 있다고 한다. 첫째,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둘째, 다른 사람의 우수한 능력을 알아채지 못한다. 셋째,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생긴 곤경을 알아채지 못한다. 넷째, 훈련을 통해 능력이 매우 나아지고 난 후에야, 이전의 능력 부족 상황을 이해하고 인정한다. 아마 버스 기사에게 갑질을 한 승객은 온라인에서 사건이 회자되며 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서야 땅을 치며 후회했을 것이다. 

무식의 오만 효과에는 놀라운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이번 사건의 장본인은 서울의 유명 대학교의 대학원에 다닌다며 자신의 유식함과 전문성을 강조했다. 그렇다. 이 현상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자신이 잘 모르는 무엇인가를 판단할 때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측면에서 무식의 오만 효과는 간편추론 방법인 휴리스틱(heuristic)의 한 형태인 것이다. 즉, 자신이 잘 모르는 상황에서 현상을 단순화하여 판단하는 어림짐작 방법이다. 

이런 점에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익히지 않는다면 무식의 오만 효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 관심의 초점을 무식이 아닌 오만에 맞출 필요가 있다. ‘나 역시도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즉 겸손한 태도를 가진다면, 자신도 모르는 새 하는 갑질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미 이를 설한 바 있다. ‘법구경’ 우아품 제63편 ‘愚者自稱愚 常知善黠慧(우자자칭우 상지선힐혜)’ ‘愚人自稱智 是謂愚中甚(우인자칭지 시위우중심)’,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어리석다고 생각하면 벌써 지혜로운 것이요,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지혜롭다 생각하면 그야말로 더 없이 어리석은 것이다’는 경구가 바로 그것이다. 

갑질러는 사회의 공공재를 훼손하는 대표적인 무임승차자다. 무임승차자는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면서, 결국 공동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망가트린다. 더 나아가 이타적인 마음으로 희생을 감내한 사람의 행동까지 거둬드리게 한다. 인간이 만든 사회체제에는 무임승차자를 찾아 개선하려는 법과 도덕이 항상 존재한다.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무임승차자를 찾을 방법을 묻는다면, ‘겸손한가’라는 항목을 포함시킬 것을 추천할 것이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을 위해 배려해 주고 있는 것조차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춘호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연구위원
namchoonho@naver.com

[1651호 / 2022년 10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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