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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자릿값

대통령이 해외 순방길에서 무심코 발화한 비속어가 국내외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있다. ‘이 XX들’과 ‘○팔려서’란 듣기 거북한 단어를 대통령의 육성으로 들어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심정은 솔직히 벌레라도 씹은 기분이다. 위압적인 태도와 건들건들하는 걸음걸이는 뭐 그렇다고 치더라도 설마 대통령이 국제외교 무대에서 상스러운 말까지 내뱉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이후에 일어나고 있는 광경은 점입가경(漸入佳境) 꼴불견의 연속이다. 욕설 자체가 없었다고 강변하는 여당 의원들까지 등장했다. 다음에는 유엔에 간 적도 없다고 할 판이다. 이 소동은 대통령의 말에서 비롯되었으니 대통령이 솔직하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 금방 잠잠해질 사안이다. 그런데도 특정 언론과 야당에 진상규명의 화살을 돌리면서 여차하면 법적인 책임이라도 물을 듯이 화난 표정을 지었다. 무엇에 홀렸거나 술에 취한 듯한 헛발질을 지켜보기가 실로 민망할 정도다.

영국 여왕의 조문 불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겠다. 귀국 뒤 첫 출근길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안이한 문제의식은 실망을 넘어 절망의 한숨을 내쉬도록 만들었다. 거기서 왜 난데없이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했다’는 작위적인 문장이 나오는가. 순간 철 지난 반공 이데올로기를 다시 듣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대통령은 지금 자신의 악구(惡口)를 낯뜨거운 망어(妄語)로 뒤덮으려는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실의 관계자들과 일부 친윤(親尹) 의원들은 발칙한 꾸밈말로 기어(奇語)를 남발하는가 하면, ‘바이든은’이라고 ‘들은’ 국민과 ‘날리면’이라고 ‘듣는’ 국민을 갈라치기까지 한다. 의도적인 양설(兩舌)의 난장판이다.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대통령의 성정과 집권 여당의 비겁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대통령을 뽑은 우리들의 자업자득이라는 자괴감도 든다. 이런 악구와 망어, 기어와 양설의 근본적인 치유책은 정어(正語)의 삶을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 50년 전 미국에서는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다가 결국 현직 대통령이 의회의 탄핵을 피해 전격적으로 사임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불망어계(不妄語戒)의 가르침을 떠올리면서 우리 스스로 옷매무새를 더욱 가다듬을 때가 아닌가 싶다.

거듭되는 말이지만 대통령의 직업적인 언어습관과 권력 호소인들의 경쟁적인 아첨은 국민을 부끄럽게 만든다. 상대방을 잠정적인 피의자로 보는듯한 검사 출신 대통령의 빗나간 정의감도 보기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마치 몸에 맞지 않은 대통령 옷을 입은 사람처럼 모든 것이 부자연스럽다. 말투와 안색, 몸짓 등이 하나같이 대통령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지극히 검사스러울 뿐이다. 옷을 몸에 맞추던가, 몸을 옷에 맞추던가, 대통령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과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모르는 것은 배우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과하면 된다. 국민은 대통령의 변신을 기대함과 동시에 따뜻하게 응원할 준비도 되어 있다. 대통령이란 직책은 순식간에 좌불안석이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자리다.

이럴 때일수록 대통령은 그 이름에 걸맞은 듬직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5년 단임의 대통령에겐 실수할 자유조차 없다. 나날이 결승전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막중한 임무에 대한 긴장감이나 그것에 상응하는 마음가짐을 갖춘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은 검사같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기가 죽는 겁쟁이들이 아니다. 대통령은 먹이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상어의 공격성이 아니라 유유자적하게 헤엄치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다양한 해양 생물들과 평화롭게 어울리는 대왕고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대통령은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 그 자체다. 그런 만큼 치러야 할 자릿값도 엄청날 것임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51호 / 2022년 10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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