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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양산 내원사 정려헌 

기자명 법상 스님

사량하여 분별말고 성현 발걸음 따라야

한산시 시문…국청사 스님 편집
도 얻음에 남다른 용맹·끈기 필요
한 점 허공은 망상·집착 없는 경계
중생 본성 찾으면 시비·번뇌 제거

양산 내원사 정려헌. / 홍경장육(弘經藏六 1899~1971) 스님.
양산 내원사 정려헌. / 홍경장육(弘經藏六 1899~1971) 스님.

千年石上古人從 萬丈巖前一點空
천년석상고인종 만장암전일점공
明月照時常皎潔 不勞尋討問西東
명월조시상교결 불로심토문서동
(천년의 반석 위에는 옛사람의 발자취/ 만 길의 바위 앞은 한 점의 허공이네./ 밝은 달이 비출 때면 늘 맑고 깨끗하거늘/ 괜히 동서(東西)를 물어서 찾느라고 수고롭지 않다네.)

당대 고승으로 알려진 ‘한산시(寒山詩)’의 시문이다. 한산자(寒山子)는 중국불교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은자(隱者)로, 천태산에 머물며 나무와 바위에 새긴 시를 국청사(國淸寺) 스님이 편집했다고 전해지는 시집이다. 한산시에는 한산자의 시 300여수뿐 아니라 풍간의 작품 2수, 습득의 작품 50여수를 포함하기에 ‘삼은시집(三隱詩集)’이라고도 한다.
한산자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기록이 없어서 어떤 인물인지 분명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어느 시대 사람인지, 불가(佛家)의 인물인지 도가(道家)의 인물인지 그것도 아니면 거사(居士)인지도 알 수 없다. 일설에는 한산시가 여러 사람의 작품을 모은 것이라고도 한다. 내용도 여러 분야에 두루 걸쳐 있다. ‘장자’ ‘시경’ ‘서경’ ‘논어’ ‘사기’ ‘한서’ ‘삼국지’ ‘포박자’ ‘안씨가훈’ ‘법화경’ ‘유마경’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루기에 ‘과연 한 사람의 작품일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해보지만, 이 역시 무어라고 반론할 근거를 내세우기 어렵다. 불교와 도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어렵다.

중국인들의 습성은 어떠한 인물을 내세워 신비스럽게 포장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마치 중국 무술영화를 보면 허공을 나르고 장풍이 나오는 것처럼 이러한 문화에 아주 익숙하며 이 문화는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한산자시집서(寒山子詩集序)’에 보면 한산의 남루한 모습은 비렁뱅이와 같고 얼굴은 바싹 여위었지만, 그의 한마디 한 구절은 모두 진리를 담고 있어서 골똘히 생각해 보면 이치에 합당하다. 말은 대개 빈틈이 없고 현묘하며 깊은 뜻을 지닌다. 한산은 자작나무 껍질을 뒤집어쓰고 헤어져 너덜거리는 옷을 입고 나막신을 질질 끌고 다녔다고 기록한다.

주련에 등장하는 한산시는 불교적으로 보면 해석하기 모호하고 교학적인 잣대를 들여대기도 거의 불가능하며 선(禪)의 입장으로 보아도 선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도교의 관점으로 본다면 수긍이 가는 시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도교의 관점으로 볼 수는 없기에 불교적인 관점을 최대한 살려서 시문을 들여다보자.

천년은 오래되었다는 서두로 끄집어낸 단어다. 알 수 없는 세월을 말함이며 석상은 반석 위를 말한다. 고인은 여기서 선사(先師)를 나타낸 것이다. 도를 얻음에 있어서 남다른 용맹도 필요로 하고 끈기도 있어야 하고 고행을 참을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서는 도를 얻을 수 없음이다. 이러함을 요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마치 변하지 않는 바위처럼 말이다. 그러기에 고인들의 종적(蹤迹)이라고 하는 것은 고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발심, 보리심, 자비심, 반야심 등을 말함이다. 

만 길 바위 앞이든 낭떠러지든 위험천만한 일이다. 시문에는 만 길 바위 앞은 한 점의 허공뿐이라고 하였다. 한 점 허공이라고 한 것은 망상과 집착이 없는 경계다. 

달이 뜨면 어둠이 물러가는 법이다. 이렇듯 우리의 본심을 가리는 것은 망상과 집착이다. 중생이 본성을 되찾으면 시비와 번뇌가 모조리 사라질 것이다. 마치 둥근달이 뜨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듯 우리도 자신의 마음 달을 밝게 비추어야 한다. 

자기 본심을 찾는 데 있어서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기웃거린다면 마음공부는 그르치고 만다. 사량(思量)하여 분별하지 말고 성현의 발걸음을 따라 곧장 나아가야 하는 법이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651호 / 2022년 10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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