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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맞는 계율이 필요하다

스님들이 너무도 적은데다 해마다 출가자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것은 분명 조계종 종단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종교 일반으로 말하면 교단의 중심축이 되어야 할 사제계층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니, 정말 교단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분명하게 숫자로 보이지는 않지만, 조계종 나아가 불교 전체의 위기를 낳고 있는 또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불자들의 현실적 삶을 이끌고 갈 불교의 계율이 실종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현실의 불자들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당신은 불자로서 가지는 어떤 구체적 삶의 원칙이 있습니까?” 대충 “오계를 지킵니다”라는 대답을 한다면 이는 이 질문이 요구하는 답이 아니다.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어떤 구체적 실천원칙으로 세워 현실의 삶에 적용해 나가고 있느냐를 묻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해보자. 과소비는 다른 생명들의 몫을 도둑질하는 것이기에, 과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경제 자체가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율을 범하는 것을 조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는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자기 몫을 도둑질 당한 중생들은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기에, 결국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에도 부딪히는 것은 아닌가? 불교 전체가 이렇게 큰 문제의식 속에서 계율을 해석하고, 인류 전체의 문제와 연결시키며, 그것을 개인적 삶의 원칙을 세우는 기본적인 관점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 불자들의 삶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보다 좋은 세계를 이룩해 나가는 큰 흐름을 일구어내는 길이다. 

거창한 이상을 제시한 것 같지만, 이런 큰 그림이 없으면 계율을 올바로 세워, 불교가 현실에 뿌리를 내린 종교가 되게 할 수 없다. 그런 틀 속에서 계율을 이해할 때 불교의 계율을 현실적 조건에 맞게 재해석하고 올바로 적용하려는 노력이 의미 있게 이루어진다. 불교의 계율이 부처님이 그 전체를 곧바로 설하신 것이라는 생각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또 그렇다 하더라도 불교는 근본적으로 ‘대기설(對機說)’이기에 변한 조건에 맞도록 새롭게 해석하는 치열함이 없다면 계율이라는 것이 우리 삶을 구속하여 괴로움을 초래하는 질곡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런 변한 조건과 맞추어 계율의 문제를 다시 조명해 보자. “술 마시지 말라”는 계율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어떻게 될까? 거의 모든 불자를 주눅 들게 만드는 질곡이 되지 않을까? 부처님 당시의 술 문화와 지금의 술 문화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그런 변한 여건에 어떻게 이 계율을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모색이 없었기에, 오계 중의 하나인 이 계율은 완전히 권위를 잃었다. 그걸 그대로 두기에 나머지 계율들의 권위 또한 땅에 떨어진다. 결국 모든 계율이 구속력을 잃게 되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다. 여성이 사람대접 받지 못하던 시절에 세워졌던 비구와 비구니의 차별에 대한 계율도 마찬가지이다. 부처님 당시에 비해 주변 조건이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졌음에도, 조건의 변화와 관계없이 비구와 비구니의 차별이 유지되고 있으니, 불교가 남녀 불평등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라고 강변이라도 하는 것인가? 출가 승단이야말로 가장 올바른 규범이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되는 집단이어야 할 것인데, 우리는 온 인류가 지향하는 이상을 부정하는 집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계율에 대해 너무 자유롭게 해석하는 것이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자유로운 논의를 열어가는 치열한 모색 자체가 없다는 현실이 암담한 것이다. 출가자는 자신의 삶을 위한 어떤 노동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계율 이전의 근본 계율이다. 이 근본 계율을 현실에 맞는 청규로 개차(開遮)한 백장회해 스님의 위대한 선례가 있지 않은가? “하루 노동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청규를 세운 백장 스님의 찬란한 본보기! 이 시대의 올바른 계율을 세워나가라 부촉하는 사자후가 아닐까?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652호 / 2022년 10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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