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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세상 오는 그날까지 부처님 가르침 사회에 구현하겠다”

  • 무진등
  • 입력 2022.10.11 16:37
  • 호수 1652
  • 댓글 4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

불법 공부하며 출가의 꿈 키웠지만 생계 위해 한국통신 입사
열악한 노동환경과 불합리한 처우 개선하고자 노동운동 본격

두 번의 해고와 수감생활에도 ‘금강경 사경’으로 마음 붙잡아
사노위 발족 후 노동·장애인·빈곤·성소수자 등 활동영역 확대

양한웅 조계종 사노위 집행위원장은 약자들 곁을 지키며 욕심도 조바심도 분노도 잠재우기 위해 번뇌가 일어날 때마다 “무상·고·무아”를 되뇐다.
양한웅 조계종 사노위 집행위원장은 약자들 곁을 지키며 욕심도 조바심도 분노도 잠재우기 위해 번뇌가 일어날 때마다 “무상·고·무아”를 되뇐다.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

양한웅(64)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이 삶을 대하는 자세다. 아무리 대단한 권력과 부귀영화도 인연 따라 왔다 인연 따라 사라지는 법. 약자들의 곁을 지키며 욕심도 조바심도 분노도 잠재우기 위한 굳은 다짐이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길. 번뇌가 일어날 때마다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해 평정심을 되찾는다.

양 집행위원장은 부모님의 지극한 기도정성으로 태어난 ‘모태불자’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자연스럽게 절에 다니며 불교를 접했다. 사찰에서 뛰어놀고 스님들의 법문을 듣는 게 마냥 좋았다. 사찰에만 들어서면 고통과 괴로움이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당시 사회분위기는 그렇지 못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쿠데타로 실권을 쥐자 곳곳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군부는 그런 학생들을 무력으로 탄압했다. 전국이 혼란 그 자체였다. 그 역시 알고 지내던 이들이 한순간 위기에 처하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에 휩싸였다.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 의문이 깊어졌다.

마음의 스승으로 여겼던 성철 스님이 문뜩 떠올랐다. 성철 스님과 같이 법을 바로 세우고 펼치는 훌륭한 스님이 되고 싶었다. 곧장 체계적인 불교 공부를 위해 1984년 동국대 불교대학원에 입학했다. 학교생활을 하며 조계종 포교원에서 몇 달간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초중고 교과서에서 불교역사 왜곡 사례를 찾는 일이었다. 올바른 불교 역사를 세워가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차올랐다.

인생의 반쪽도 그때 만났다. 함께 일하던 여학생이었는데, 부부의 연까지 맺었다. 생계를 위해 출가의 꿈은 접어야 했다. 한국통신(현 KT)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그때까진 몰랐다. 한국통신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은.

입사 후 바라본 노동현장은 참혹했다. 특히나 현장 노동자들에겐 쉴 공간도, 식사시간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묵묵히 일을 해야만 하는 동료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었다. 1987년 본격적인 노조활동을 시작하며 차별과 부당함에 맞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노조민주화투쟁위원장까지 맡아 5만5000여명의 한국통신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을 이끌며 불합리한 처우를 바꾸는 데 힘을 쏟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가는 해고였다.

비참했다. 어린 아들과 아내에겐 면목이 없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벼랑 끝에 서있는 그를 다시 일으켜준 건 동료들이었다. 그를 위해 매달 1000원씩 모금해 생활비를 마련해 준 것이다. 동료들의 도움과 응원에 조금씩 기운을 차렸다. 다행스럽게도 94년 KT노조 민주화를 이뤄내며 복직했다. 그러나 곧 KT민영화 반대로 두 번째 해고를 당하고 4개월 간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비좁은 공간에서의 답답함보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더 힘들었다. 동시에 암울한 노동운동의 현실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파구가 절실했다. 그때 그의 마음을 붙잡아 준 것은 한동안 내려놓았던 불교였다. 아내가 보내온 ‘금강경’이 손에 잡혔다. 그날부터 ‘금강경’을 따라 읽으며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베껴 썼다. 일렁이던 마음이 점차 고요해졌고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이후에도 수감생활은 반복됐지만 노동현장 개선을 위한 의지는 더욱 견고해졌다. 2007년, “남은 인생을 힘없는 노동자들을 위해 살겠다”고 발원한 그는 한국통신을 퇴사하고 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상근하며 활동했다.

비정규노동자 교육, 집회 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하던 2009년, 그가 다시 깊은 불연을 확인하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쌍용자동차의 구조조정으로 3000여명의 해고자가 발생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해고자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랐다. 조계종은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대표단과 면담을 갖고 평화적 해결을 적극 도왔다. 조계종 화쟁위원회와 몇몇 불교단체들에서도 쌍용차 희생노동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천도재를 지내며 힘을 보탰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불교계의 노력에 감사와 존경심이 절로 솟았다.

조계종이 쌍용차 사건을 계기로 노사 분규와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문제에 대한 불교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노동위원회를 발족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조계종 총무원을 찾아갔다.

“비정규직 운동을 하는 사람인데 불교계에서 노동위원회가 만들어진다니 아주 잘된 일입니다. 옆에서 있는 힘껏 돕겠습니다.”

얼마 후,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노동위원회 구성을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렇게 2012년 8월 노동문제를 전담할 조계종 종령 기구 노동위원회가 출범했다. 첫 활동은 쌍용차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하루 1000배씩 100일 간 10만배 릴레이를 진행하는 기도법회였다. 노동위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끊임없이 기도에 매진했고, 진정성을 알아봐주는 이들과 여법하게 회향할 수 있었다. 이듬해에는 ‘모든 노동자들의 아픔을 같이 나누겠다’는 취지로 2주에 한 번씩 전국의 노동현장을 방문해 동사섭 법회를 진행했다. 해고노동자들을 초청해 템플스테이를 열었고, 노동자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해 상처받은 노동자의 삶을 위로했다. 전국 20여개 노조와 연대해 비정규직 철폐와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오체투지에도 나섰다. 그러면서 노동위원회는 노동자들에게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사노위가 가장 먼저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아 2016년 세월호가 인양되는 날까지 현장을 지켰다. ‘노동’ 문제는 아니었지만 가족을 잃은 이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님들과 함께 매주 희생자들의 극락왕생과 미수습자의 조속한 귀환을 발원하는 기도회를 열었다. 단식과 삼천배, 오체투지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도 촉구했다. 처음에는 만남조차 거부했던 유가족들도 스님들의 정성에 마음을 열었다.

세월호 참사 등을 겪고 나니 ‘노동위원회’ 명칭으로는 활동의 한계가 뚜렷했다. 우리 사회에는 노동뿐 아니라 빈곤, 장애인, 인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수시로 갈등이 불거졌다. 폭넓은 의제를 다루고자 기구 개편을 건의했고, 2016년 1월 ‘노동위원회’는 ‘사회노동위원회’로 명칭이 변경됐다.

이후 송파세모녀 추모 및 빈곤문제 해결, 성소수자 인권보호, 동물 살처분 반대, 제주4·3 희생자 추모,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고 김용균 노동자 문제 해결, 발달쟁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촉구, 미얀마 민주화 운동,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자 추모 등 갈등현장 곳곳을 누비며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

이 모든 것은 스님들이 있어 가능했다. 초창기 2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20여명으로 늘어났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기댈 언덕이 되어주시는 스님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스님들의 눈빛과 목탁소리, 염불에서 묻어나는 간절함이 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가장 불교적 방법으로 동체대비를 실천하고 계신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조계종 사노위가 9월24일 서울 시청 일대에서 열린 924기후정의대행진에 동참했다.
조계종 사노위가 9월24일 서울 시청 일대에서 열린 924기후정의대행진에 동참했다.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은 사회노동위는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 중에서도 내년에는 ‘기후행동’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기후위기는 모든 이들의 공업에서 비롯됐기에, 부처님이 말씀하셨듯 모두가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의존적 관계임을 알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스님들의 의견이 있었다. 그도 기후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부처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활동방향을 고민 중이다.

10월1일 제14회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있다.
10월1일 제14회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있다.

“약자들을 위한 불교계의 실천이 사회적 공익과 포교로 이어지리라 확신합니다.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에게도 이미 신뢰를 얻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회노동위, 고작 10년 지났습니다. 겨우 첫발 내딛은 거나 다름없죠. 앞으로 10~20년 더 많은 곳에서 불교계의 대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는 종단의 실천기구로 성장하길 기원합니다. 비록 정년을 넘겨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토세상이 오는 그날까지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을 사회에 구현하는 것이 이번 생의 마지막 목표라는 각오로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오늘도 그는 스님들과 마이크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투박하지만 목이 쉬어라 “우리 사회 모든 이들이 평등해야 한다”고 외치는 그의 모습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전까진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이 겹쳐 보인다.

김내영 기자 ny27@beopbo.com

[1652호 / 2022년 10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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