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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화 전설에 담긴 진짜 뜻

기자명 안직수
  • 법보시론
  • 입력 2022.10.17 13:52
  • 수정 2022.10.17 13:53
  • 호수 1653
  • 댓글 0

20여년 전 여름, 영광 불갑사를 찾았다가 처음 상사화를 봤다. 잎도 없는 긴 대에 꽃만 피어 있는, 사찰 뜨락 곳곳에 피어난 짙은 분홍빛의 상사화는 애절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었다.

상사화(想思花)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즉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꽃이라는 의미다. 예전에 한 처녀가 한 스님을 사모했다. 하지만 수행 중인 스님에게 그 고백을 하지 못하고 상사병에 걸려 눈을 감고 말았다. 그 처녀가 죽고 나서 스님의 방문 앞에 꽃이 피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꽃은 잎이 진 다음 꽃이 피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스님이 세속의 처녀를 사랑했지만, 수행자로서 가슴만 태우다가 입적했는데 그 스님의 방 앞에 상사화가 피어났다. 이처럼 상사화에 담긴 스님과 여인에 관한 여러 종류의 전설이 있지만, 모두 이루지 못한 애절한 사랑을 담고 있다. 한편으로는 세속의 정을 떠나 깨달음을 얻고자 한 수행자의 마음을 담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상사화는 개가재무릇이라고도 하는데, 지방에 따라 개난초로 불리기도 한다. 비늘줄기는 호흡기 질환을 치료하는 약으로도 사용한다. 상사화와 비슷하지만 식물학적 분류상 다른 종의 식물이 있다. 꽃무릇이다. 꽃무릇은 일본이 원산지이고 붉은색의 꽃을 피운다. 잎과 줄기가 만나지 못하는 것은 상사화와 같지만 쓰임이 다르다. 사찰 주변에 꽃무릇을 많이 심었는데, 꽃을 말려 물감을 만들어 탱화를 그릴 때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또 뿌리에서 즙을 추출해 칠을 하면 색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튼 두 꽃 모두 사찰에서 볼 수 있던 귀한 꽃이었다. 상사화에 담긴 전설의 영향일까? 최근 수년 사이 많은 지자체에서 꽃무릇을 가득 심어놓고 관광객의 발길을 끄는데, 일부 지자체는 꽃무릇과 상사화를 혼돈해 ‘상사화 축제’를 열기도 한다. 상사화니 꽃무릇이니 구분은 식물학자들이 하는 것이고, 일반 사람들은 둘 다 애틋한 사랑의 의미를 지닌 아름다운 꽃일 뿐이다.

시골집에 꽃무릇 몇 그루 피어났다. 수년 전 어머니가 상사화에 대한 전설을 듣더니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 생각이 난다며 어디선가 꽃무릇 몇 개를 가져다 심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올해 가을도 이파리 없는 대에서 20여개의 빨간 꽃이 피었다. 지난 가을 어머니는 꽃을 보면서 인생팔고(人生八苦)의 가르침을 말씀하곤 했다. 

생로병사의 4고(四苦)에 더해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구하고자 하지만 얻지 못하는 괴로움과 수행하지 않고 쾌락을 추구하는 고통이 팔고다. 보고 싶은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남편…. 얼마 지나면 자식들을 더는 볼 수 없다는 마음을 그렇게 꽃을 보며 이야기했다.

“아가. 더 가지려고 욕심내지 않고, 사람을 미워하지 않아야 된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죽음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구나. 엄마 없더라도 너무 서러워 말아라.”

지난 가을, 어머니는 잡초를 뽑으며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는 가르침이 담긴 ‘법구경’을 몇 번이고 듣다가 저녁상을 차리면서 서산대사가 ‘부모은중경’을 노래로 만들었다는 ‘회심곡’을 틀어놓기를 매일 반복하면서 예견된 죽음에 하루하루 다가서고 있었다.

영광 불갑사, 고창 선운사를 비롯해 전남 함평, 경남 마산 등 남도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이라는 안내문을 걸고 꽃무릇 축제가 한참이다. 여기에 해설을 달아주면 어떨까. 잠시 쉬어가는 의자 옆에 팻말을 세워 인생의 여덟 가지 괴로움을 소개하면 어떨까 한다. 절에 관광 오는 사람들이 부처님 가르침 하나 알고 가면, 그것이 곧 포교 아니겠는가. 꽃에 담긴 전설에 더해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갖지 말라’는 집착을 떠나 삶의 바른 길을 알려주는 것이 상사화 속 스님과 여인의 이야기에 담긴 진짜 뜻이 아닐까.

올해는 혼자 시골집 툇마루에 앉아 꽃무릇을 보다가 이런 생각을 해본다.

안직수 복지법인 i길벗 상임이사 jsahn21@hanmail.net

[1653호 / 2022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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