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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초 오상순 시인이 던진 화두

기자명 성진 스님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魂)…’
(‘동명’ 18호 1923.1)

이 구절은 ‘방랑(放浪)의 마음’이라는 시의 서두인 동시에 이 시의 주인공 묘 앞에 세워져 있는 시비(詩碑)의 전문이다. 일제 치하라는 어둡고 치욕스러운 현실을 벗어난 이상향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았던 작자의 마음과 삶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한다. 이 시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 신시(新詩)의 선구자인 공초(空超) 오상순이다. 하루에 200개피의 줄담배를 피웠고 밥 먹고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한 손에 담배꽁초가 들려져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목욕탕에서도 담배를 끼워 놓고 피웠다고 했으니 그의 호를 공초(空超)가 아닌 꽁초로 알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의 호가 처음부터 공초는 아니었다. 1926년 기독교 신자였던 그가 범어사(梵魚寺)에 입산하여 내려온 이후 붙여진 아호(雅號)이다. 공초 오상순은 불교와 깊은 인연을 가지며 살아갔다고 한다. 조계사, 역경원, 선학원 등에서 생활하며 동국대 전신인 조선중앙불교학림에서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한평생 홀로 살아가며 시와 문학 그리고 참선으로 살아간 공초 오상순이 어느 날 신문 기자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사설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당시 1950년대 초 한국사회는 해방 이후 좌우 이념대립은 극에 달하였고 전쟁으로 인한 사회 혼란은 가중되고 있을 때이다. 공초는 기자에게 지금 병든 이 사회를 고칠 수 있는 묘안이 있으니 그것을 신문에 실어 달라고 한 것이다. 그 묘안은 바로 매일 전국에 3분 정도 사이렌을 울려 모든 국민이 자신의 일터나 머무는 곳에서 일손을 멈추고 “내가 왜 사느냐?”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의 삶에 대한 참다운 물음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만 이 사회는 바로 세워지리라는 것이다. 누구나 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통해 세상살이 속에 돌고 있는 자신의 삶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반성하고 참회할 수 있는 시간을 제정하자는 것이었다.

이 질문은 아마 공초 스스로에게도 늘 묻고 답을 찾고자 한 자신의 화두였을 것이다. 나라는 사라지고 이름과 언어마저 빼앗긴 일체 치하에서 ‘나’라는 정체성의 혼돈과 세상에 대한 원망은 자칫 개인의 삶마저 쉽게 병들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자신의 현실이나 행동을 세상 탓으로 돌리면서 ‘남들이 그러니까’ ‘다 그렇게 사니까’ ‘그냥 어떻게 되겠지!’ 그리고 ‘모르겠다’. 자신의 육신과 마음을 가지고 서 있고 행동하는 것에 ‘왜’라는 물음을 묻지도 못한 채, 누구의 답인지도 모르는 위의 말들을 위안 삼아한다면 그 사회는 바로 서기 어려울 것을 공초 오상순 시인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공초의 이러한 혜안은 불교에서 기인한 것임을 그의 삶에서 알 수 있다. 불교에 귀의하여 2년간의 묵언(默言)을 마쳤을 때 대중들이 선운(禪雲) 스님(공초의 법명)이 벙어리가 되었다고 법당이 난리였을 만큼 진실한 수행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세속의 구도자가 되어서도 금강산과 전국의 선승들을 찾아다녔고, 당대의 선지식인 만공(滿空)선사를 친견하여 법을 구하였다고 하니 이런 묘안(妙案)이 불교의 묘법(妙法)을 통해 나왔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공초 오상순의 거의 모든 사진에는 담배꽁초를 들고 있다. 들고 있던 꽁초는 단순한 담배가 아닌 ‘내가 왜 사느냐’를 묻는 화두였던 것 같다. 그는 밤이 되면 조계사나 역경원에서 스님들 속에서 몸을 눕히고 했다고 한다. 아마 스님들은 공초의 몸에서 나는 담배 냄새가 아닌 선운 수좌의 향 내음을 맡아 받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끝으로 공초 오상순의 화두를 마음에 새기며 그날의 밤을 적은 시 ‘첫날 밤’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머언 하늘의 못 성좌는
이 밤을 위하여 새로 빛날진저!
밤은 새벽을 배고
침침히 깊어간다.’

성진 스님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미래세대위원
sjkr07@gmail.com

[1654호 / 2022년 10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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