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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기자명 이미령
한 여인의 신념이 거룩한 향기가 되어

수많은 이들을 불법에 조복케 하리라


장자 거사 관리 바라문 부인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그 부인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소년 소녀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소년 소녀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수마제를 아십니까?
급고독장자의 딸이랍니다. 가정교육을 잘 받은 태가 흘러서인지 마침 장자의 집을 찾은 친구 만재장자의 눈에 띄었습니다.
“내 며느리로 다오.”
느닷없는 청혼에 급고독장자는 망설였습니다.

‘만재장자는 친한 친구이기는 하지만 그는 이교도를 섬기고 삿된 풍속에 빠져있는 지방의 사람이다. 내 딸을 보내면 보나마나 몸 고생 마음 고생할 게 뻔한데…’

하지만 “만일 수마제가 그 지방으로 시집간다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만나 행복하게 살 것이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용기를 내어 청혼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만재장자가 사는 성에는 다른 성과의 혼인을 금지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만약 법을 어기고 혼인을 시킨다면 육천 명이나 되는 범지들에게 극진하게 옷과 음식을 올려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만재장자는 자신의 위법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터라 수많은 범지들을 초청하여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근사한 음식을 차려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 성 범지들은 몸을 반쯤 드러내는 차림새를 하였습니다. 반쯤 벌거벗은 범지들이 집안으로 속속 들어오자 만재장자는 허리를 굽히고 맞아들였습니다. 그들의 말 한 마디에 이 혼인의 성사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지요. 자, 그 날 수마제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옳을까요?

“아가, 곱게 차려입고 우리 스승님들께 절을 올려라.”
시아버지가 수마제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수마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예를 갖추지 않고 벌거벗고 있는 이들에게 절을 올릴 수는 없습니다. 저들은 스스로 부끄러워하거나 참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남편까지 나서서 아내를 채근하였지만 수마제는 요지부동이었고 그날의 연회는 몹시 어색하고 불쾌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만재장자는 갓 시집온 며느리 하나 때문에 집안이 망하게 되었다며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웠습니다. 하지만 그때 또 다른 친구의 설득으로 며느리의 스승을 한번 만나보자고 마음먹게 되었고, 마침내 수마제의 청을 받아들인 부처님은 큰 제자들을 이끌고 그 성으로 들어와 진리를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수마제녀경』)

사실 우리는 여인에게 주는 부처님의 대표적인 가르침을 찾아보라면 거의 『옥야경』을 들곤 합니다. 방자하기 이를 데 없고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옥야가 잘못을 뉘우치며 하녀와 같은 아내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그 경 말입니다. 그 밖에 이런저런 경이나 논을 근거로 보자면 대체로 불교는 여성을 깎아내리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요? 부처님이 여성을 그저 애욕덩어리라고 구박만 하셨다면 수마제가 감히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 불교의 여성관을 새롭게 조명할 때가 왔습니다. 여성은 남성이 그러하듯이 당연히 부처로 자랄 태아(여래장)입니다.

그리고 여성의 지위가 말할 수 없이 낮았던 그 옛날 인도 땅에서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고 마침내 거룩한 진리의 향기를 풍기게 하였던 수마제야말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임에 틀림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lmrcitt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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