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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아무 잘못이 없다

어이없는 참사가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삼각지와 국방부를 거쳐 이른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도로 양쪽으로 길게 몸을 늘어뜨린 은행나무 가지들이 마치 곡(哭)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뒤 녹사평역 사거리에서 남산2호터널 방향의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즈음이었다. 머릿결이 쭈뼛하게 일어서는 묵직한 느낌과 함께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순간 나도 모르게 길 건너 이태원 쪽을 쳐다보았다. 소방차와 경찰차가 비상등을 깜빡이며 오갔고, 언론사 소속 취재 차량 수십 대가 무질서하게 뒤엉켜 있었다. 어젯밤의 아비규환과 무간지옥의 비명소리가 아직도 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말로만 듣던 아수라장이 바로 저런 모습일까 싶었다. 저쪽은 불행하게 죽은 사자(死者)의 장소였지만, 이쪽은 다행히도 살아 있는 생자(生者)의 자리였다. 먹먹한 슬픔이 한지(漢紙)가 빗물에 젖듯이 온몸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 골목에서 웃고 떠들었을 해맑은 얼굴들이 떠올라 얼른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그사이에 신호등이 바뀌었고 나는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했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혼령들이 녹사평역 주변을 울면서 맴돌고 있는 것 같아 자꾸 뒤를 돌아봤다. 산자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고 있었지만, 망자는 너무나 평범한 오늘 이 하루조차 더 허락받지 못한 채 영원히 어제에 머물고 있었다. 

청춘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들이 이태원에 갔기 때문에 참사가 일어나 죽은 것이 아니라 이태원에서 참사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들이 죽은 것이다. 청춘들이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청년들에게 왜 그곳에 갔느냐고 묻는 것은, 어른들에게 왜 열심히 사느냐고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음껏 놀 자유는 어디서나 청춘의 특권이다. 한 젊음은 말이 통하는 다른 젊음을 찾아 무심코 이태원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테다. 

더 보탤 말도 더 뺄 말도 없다. 청춘은 곧 자유다. 젊다고 부족하지도 않다. 놀면서도 일할 줄 알고, 일하면서도 놀 줄 안다. 얼마나 멋진가. 참사의 원인은 이태원 상인들의 장삿속도 아니고, 핼러윈축제의 광기(狂氣)도 아니었다. 젊다는 것을 탓할 수 없다면, 함부로 젊음을 나무라서도 안 된다. 서로 공감을 나누고 위로할 때이지 누군가를 비난할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교환학생으로 서울에 왔다가 사고를 당한 아들의 아버지는 자식 잃은 아픔을 날카로운 칼끝에 1억번이나 찔리는 듯한 고통이었다고 표현했다.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그런 부모들을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으로 토닥이고 다독거려주는 보살행의 실천이 먼저다. 다른 모든 것들은 애도 기간 뒤로 잠시 미루어도 늦지 않다. 지금은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고 망연자실한 유가족들의 상처를 치유하기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시간이다. 

다시 한번 더 말하고 싶다. 어른들은 감히 청춘들의 문화를 폄훼하지 말라. 고통스럽게 유명(幽明)을 달리한 청춘들의 마지막 모습을 함부로 공유하는 일도 당장 멈춰야 한다. 그것은 민주시민의 품격을 스스로 욕보이는 몰지각한 행동으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인터넷과 SNS에서 떠돌고 있는 동영상들은 이미 희생자의 초상권과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얄팍한 호기심과 흥밋거리의 유혹으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 평정심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언젠가 진실은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물러날 사람은 물러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부가 내세우는 공정과 상식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어른들은 젊음의 자유와 안전을 꼼꼼하게 챙겨주지 못했다. 그 죄책감은 오롯이 어른들의 몫이자 기억의 부채로 남았다. 말만 들어도 또 눈물이 난다. 미처 못다 핀 꽃 한 송이들을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하자는 제안을 올린다. 불보살의 가피로 부디 극락왕생하셨으면…

hnk@dongguk.edu

[1655호 / 2022년 1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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