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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수(담마삐야·35) 위빠사나 수행 - 상

기자명 법보

자퇴 후 불교로 심리 안정 찾고
대학 입학해 불교동아리 입부 
명상 배우며 이해한 붓다 가르침
확신 갖고 정진하다 스승 만나

담마삐야·35

처음 위빠사나 명상을 배웠을 때, 아무래도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몸은 자꾸 구부러졌고 허리와 무릎은 여기저기 아팠다. 배의 부품, 꺼짐 같은 건 알 수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집중을 잘해서 신기한 현상들을 경험하곤 했지만, 나는 그런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명상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알았다. 이상하게 ‘이것은 진실’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그후 미얀마에 가서 짧게나마 출가생활도 경험하고 15년째 명상을 이어오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를 사귀거나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 어려웠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혼자 시간을 보냈다. 밤낮으로 끊임없이 일어나는 잡다한 생각에 시달렸다. 그때 인터넷으로 심리적 안정을 찾을 방법을 검색하다 처음으로 불교를 접하게 된다. 

불교를 잘 알진 못했다. 어렸을 때는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다녔기에, 어린 마음에 불상에 절하고 그러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나서는 ‘라즈니쉬’ ‘마하리쉬’ ‘무묘앙 에오’ 같은 분들의 명상서적을 접하면서 불교의 깨달음이란 것도 비슷한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접하게 된 부처님 말씀은 이랬다.

“누군가 독화살을 맞아 고통스럽다면, 누가 이 독화살을 쏘았고 이 독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한가? 아니면 단지 독화살을 뽑아 내고 상처를 치료해야 하겠는가?”

당시 나는 도무지 세상의 부조리를 이해할 수 없고, 삶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부처님은 불확실한 생각들에 매달리는 대신, 지금 이 순간 ‘고통’이라는 진실을 직면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때는 이 가르침이 초기경전인 ‘니까야’에 나온다는 건 알지 못했다. ‘독화살 비유’는 ‘맛지마 니까야’의 ‘말룽꺄 작은 경(M63)’에 나온다.

감명을 크게 받은 뒤, 사유를 놓아버리고 단순하게 몸의 감각에 주의집중하며 수능을 준비했다. 명상을 따로 배운 건 아닌데도 그렇게 하게 됐다. 홀로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를 공부하던 중 불교 교리인 ‘12연기’가 소개되어 있었다. 뜻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당시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불교를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대학교를 선택하면서 제일 먼저 불교 동아리가 있는지 찾아봤다. 동아리가 있다는 걸 알고는 입학하자마자 동아리방을 찾았다. 지도법사 스님이 따로 없었지만, 우리끼리 예불을 보고 부석사로 수련회를 가고 연등을 준비해 행렬에 참여하는 등 기억에 남는 시간을 보냈다.

대학교 2학년 때 인터넷으로 ‘불교철학입문’ 강의를 찾아서 들었다. 조성택 교수님의 강의였다. 그 강의에서 “다른 종교의 명상은 ‘한 대상에만 집중하는 사마타 명상에 가깝고, 불교의 명상은 현재 순간에 일어나고 사라지는 여러 대상을 관찰해 ‘무상·고·무아’를 깨닫는 위빠사나 명상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명상을 배울 수 있는 선원을 소개해주었다. 과천에 있는 보리수선원이다. 나중에 알게됐지만, 보리수선원은 당시 많지 않던 ‘테라와다불교’ 선원이었다. 그곳에서 스님을 뵙지 못하고, 재가법사들에게 위빠사나 수행법을 간단히 배웠다.

공익근무요원으로 의무를 다하던 중 7개월 동안 스님께 기초교리와 위빠사나 명상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면서 윤리 교과서에서 ‘12연기’를 읽으며 느꼈던 불교 교리에 대한 갈증이 풀렸다. 

불교에서는 불확실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단지 지금 이 순간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직접 관찰’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걸 알게 됐다. 몸의 감각이 그렇듯, 생각이나 감정도 단지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 관찰할 대상이라는 걸 이해하게 됐다. 

그렇게 불교에 확신을 가지게 되고, 얼마 후 신기하게 스님 한 분이 선뜻 불교동아리를 지도해주겠다고 했다. 미얀마 쉐우민선원 등에서 오랫동안 위빠사나 수행을 한 혜연 스님이었다. 돌이켜 보면 이러한 법 인연이 모여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는 ‘마하시 방법’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 있었으나 ‘배의 부품, 꺼짐’은 보지 못하고 여기저기 일어나는 통증만을 관찰했다. 

[1658호 / 2022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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