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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전 전계사 혜남 스님

우주법계 삼라만상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생깁니다

만법 통일시켜 한마음 밝히는 것이 화엄경에 담긴 진리
화엄도리 깨달으려면 믿고 이해하고 실천해서 증득해야
10가지 광대한 행원을 닦으면 화엄경의 공덕 성취 가능

혜남 스님은 ‘보현행원품’의 10가지 광대한 행원을 잘 닦아 공덕을 성취하고 올바로 회향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강조했다.
혜남 스님은 ‘보현행원품’의 10가지 광대한 행원을 잘 닦아 공덕을 성취하고 올바로 회향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강조했다.

오늘부터 한 달 동안 통도사에서는 ‘화엄경’ 산림이 열립니다. ‘화엄경’을 갖추어 말하면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입니다.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보살 만행의 꽃으로 불과를 장엄한다’는 뜻입니다. 

‘화엄경’에 담긴 진리의 내용은 간단하게 ‘통만법명일심(通萬法明一心)’, “만법을 다 통일시켜서 한마음을 밝힌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화엄경’은 분량이 방대합니다. 그 방대한 ‘화엄경’을 압축해서 표현한 게송이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삼세 일체의 부처를 구하여 알고자 할진 데 응당 이와 같이 관하라. 마음이 모든 일을 만든다.” 마음이 부처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 법계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다 마음으로부터 생긴다는 뜻입니다.

‘화엄경’의 도리를 210자로 간단하게 저술한 의상 대사의 ‘법성게’ 첫 구절도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입니다. “법성은 원융해서 두 모습이 없다.” 이어서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모든 법은 움직임이 없어서 본래부터 적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구래불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본래부터 움직임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부처라고 한다.”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온갖 것을 다 하셨습니다. 룸비니에서 태어나시어 사문유관을 하고 출가를 하고 수도를 해서 성도하시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온갖 것을 다 시현해 보이셨지만 사실은 본래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인 바가 없다고 하여 ‘본래 성불’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화엄경’의 아주 묘한 도리입니다.

이 화엄 도리를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다음에 바르게 이해하고, 또 바르게 실천하고, 그렇게 해서 바르게 증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해행증(信解行證)입니다. ‘화엄경’의 마지막에는 선재동자라는 천진무구한 동자가 등장합니다. 동자가 등장한다는 자체부터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것을 많이 알아서 근심 걱정이 많습니다. 천진난만하면 도와 제일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다 친견하고 도(道)를 깨닫습니다.

우리가 독송하는 ‘보현행원품’은 40권 ‘화엄경’의 제일 끝에 나옵니다. ‘보현행원품’은 만약에 사람이 ‘화엄경’의 공덕을 성취하고 싶으면 응당 10가지 광대한 행원을 닦으라는 내용입니다. 첫째가 ‘예경제불(禮敬諸佛)’입니다. “모든 부처님을 예배하고 공경하라.” 석가모니부처님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부처님을 예배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칭찬여래(稱讚如來)’입니다. “여래를 칭찬하라.” 셋째는 ‘광수공양(廣修供養)’입니다. “늘 여래에게 공양을 올려라.” 

여래라는 말은 도를 깨달은 부처님을 말합니다. 그런데 본래의 마음자리에서 보면 중생이 바로 부처입니다. 부처와 중생의 마음자리는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 못 깨달은 부처고 부처님은 깨달은 부처입니다. 그것만 다릅니다. 사실 우리도 못 깨달은 것이 없습니다. 다 깨달았는데 자기가 스스로 부처임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한가. 생각하면 나쁜 생각하고, 말하면 남을 험담하고, 행동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부처님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근본 마음 바탕은 불성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을 예배 존경할 때 부처님이 된 분만 예배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도 예배 존경을 해야 합니다. 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저는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종종 봅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 동물도 사람과 똑같습니다. 동물도 다 생각이 있고 토라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합니다. 사실은 무정물까지도 다 불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래를 칭찬하는 마음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서로 칭찬하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동물도 칭찬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칭찬을 싫어하는 존재는 없습니다. 

공양과 보시는 그 본질이 같습니다. 공양은 재물로도 보시할 수 있고 또 법문하는 것도 법공양이라 합니다. 멸시, 공갈, 협박으로 상대를 불안에 떨게 하지 말고 상대를 마음 편안하게 해주는 것도 보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법문도 할 줄 모르고, 가진 재물도 없는 그런 사람도 일곱까지 보시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먼저 눈으로 보시할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사람을 만나면 눈인사라도 주고 가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다음은 말로 보시하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에는 미묘한 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마음으로 남이 잘되게 빌어주는 것입니다. 또 몸으로 보시하는 것도 있습니다. 남의 무거운 짐을 들어준다든지 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큰 사건이 있으면 꼭 본인도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남을 먼저 구해 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런 분들이 몸으로 보시를 한 경우입니다. 또 자리로 양보해 주는 것입니다. 지하철을 탈 때 어른이나 어린이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도 보시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휴대폰을 본다고 옆에 누가 탔는지 그런 것에는 관심도 두지 않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안타깝습니다. 그다음에는 방사를 보시해주는 것입니다. 이 일곱 가지를 무재칠시(無財七施)라고 합니다.

넷째 행원은 ‘참죄업장(懺悔業障)’입니다. “업장을 참회하라.” 한국불교에서는 관음기도와 지장기도를 많이 합니다. 이 기도는 모두 업장을 참회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삼불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삼불능이란 결정된 업은 설사 부처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의 원력이 무척 크기 때문에 업장을 소멸해 준다는 것입니다. 업장을 소멸하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장마 때가 되면 짜증스럽습니다. 그 장마가 끝나고 햇빛이 비치면 얼마나 청량하고 좋습니까. 장마 끝에 햇빛이 비치는 날에는 부산에서 대마도도 보입니다. 그와 같이 나쁜 일을 했더라도 참회를 하면 그 업이 없어지고 새로워진다, 그래서 업장을 참회하는 공덕이 있습니다. 

다섯째는 ‘수희공덕(隨喜功德)’입니다. 따라서 기뻐하면 그것이 참 공덕이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고약한 말이 있습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프다.’ 남이 잘되면 못 봐주는 것입니다. 특히 가까운 친구 사이에 그런 질투가 많습니다. 인연이 없으면 원수가 되지 않습니다. 친한 사람이 한번 틀어지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 심보로는 안 됩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아프던 배도 나아야 합니다. 남이 잘되었다고 하면 덩달아 좋아야 합니다. 

여섯째는 ‘청전법륜(請轉法輪)’입니다. “법륜 굴리기를 잘하라.” 항상 법문을 청해야 합니다. 박복한 사람은 법회에 동참하다가도 법문이 시작되면 법상을 등지고 나가버립니다. 내가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상대방은 별 것 없어 보여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천만 가지 말하다 보면 실수할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옳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치광이의 소리 속에도 성인이 취할 바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통도사 강원에 있을 때는 돌림법문이라고 해서 어른들이 학인 스님들에게 법문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일곱째는 ‘청불주세(請佛主世)’입니다. 부처님께서 항상 세상에 머무시길 청한다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려고 할 때 “부처님, 열반에 들지 마시고 더 머물러 주십시오” 하는 내용이 ‘유교경’에 나옵니다. 여덟째는 ‘상수불학(常隨佛學)’입니다.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워야 합니다. 스승을 잘 만나야 합니다. 부처님을 따라 정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홉째는 ‘수순중생(隨順衆生)’입니다. 이 원은 무척 중요합니다. 항상 중생을 수순해야 합니다. 자꾸 나의 고집만 피우지 말고 남이 좋다는 대로 따라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보살은 어떻게 하는가. 병든 사람이 있으면 좋은 의사가 되어 주고, 또 길 잃은 자에게는 바른 길을 가르쳐주는 길잡이가 되어 주고, 또 어두운 밤에는 광명이 되어 주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보배 창고가 되어 주고, 이와 같이 일체중생을 다 이롭게 하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중생을 수순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께 공양하고 부처님을 수순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만약 중생을 존중하고 받들어 모시는 것은 곧 부처님을 받들어 모시는 것이 되고 만약 중생을 기쁘게 하면 곧 일체 여래를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왜 그런가. 제불여래는 대비심(大悲心)을 몸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남이 기쁘면 진정으로 같이 기뻐하고 남이 슬프면 정말 같이 슬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부처님 마음입니다. 그래서 수순중생, 이것이 핵심입니다. 일체의 중생을 평등하게, 다 이익되게 해주는 것입니다. 불공을 드릴 때도 ‘오늘 기도드리는 사람들이 모두 소원 성취를 하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불공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열 번째는 ‘보개회향(普皆廻向)’, 이 원을 다 회향합니다. 회향이라고 하면 보통 기도가 끝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십니다. 회향은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일을 많이 하면 그 공덕을 내가 다 받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일체 중생에게 돌려주는 것이 중생회향(衆生廻向)입니다. 그것을 진리로 돌려주는 것이 실제회향(實際迴向)입니다. 이 인연 공덕으로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것이 보리회향(菩提廻向)입니다. 

이렇게 열 가지가 끝나고 마지막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원아임욕명종시 진제일체제장애 면견피불아미타 즉득왕생안락찰(願我臨欲命終時 盡除一切諸障碍 面見彼佛阿彌陀 卽得往生安樂刹)’, “원하옵건데 내가 죽을 때 저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고 곧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극락세계를 발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오래 살고 별별 소리를 다 해도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한 번은 이 몸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회향을 아미타불로 합니다. ‘아차보현수승행 무변승복개회향(我此普賢殊勝行 無邊勝福皆廻向)’, ‘나의 이 수승한 보현행의 다함없는 공덕을 모두 회향하오니 삼악도에 떨어져 있는 모든 중생이 하루속히 무량광 부처님 세계에 가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합장하고 다 같이 ‘아미타부처님’을 십념(十念) 하며 마치겠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11월24일 영축총림 통도사 설법전에서 봉행된 ‘임인년 통도사 화엄산림 대법회’ 첫날 오후 법문에서 혜남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659호 / 2022년 1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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