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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수(담마삐야·35) 위빠사나 수행 - 하

기자명 법보

미얀마에서 1년 동안 출가생활
한국 돌아와 사회복지사 일하고
불교서적 점자로 바꾸기 시작해
모든 이, 부처님 복 함께 누리길

어떻게든 1시간은 버티려고 하다 보니, 지나치게 힘을 주는 습관이 들어 있었다. 혜연 스님께 ‘쉐우민 방법’으로 지도를 받고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는 걸 배웠다.

혜연 스님은 ‘고엔카 10일 코스’ ‘미얀마 단기출가’를 알려주고, 순룬 사야도나 떼인구 사야도와 같은 미얀마의 아라한 스님들 이야기도 해주셨다. 스님의 소개 덕분에 고엔카 10일 코스에 몇 번 참가하다 보니, 집을 떠나 더 오랫동안 수행에만 전념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먼저 부처님 말씀인 ‘니까야’를 모두 읽고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졸업하고 1년 동안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4부 니까야를 모두 읽었다. 마침 초기불전연구원에서 4부 니까야가 모두 번역된 때였다.

미얀마로 떠나기 전 혜연 스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1년은 있겠다’고 결심하라”고 했다. 그렇게 비구계를 받아 1년 3개월 동안 미얀마에 있었다. 혜연 스님이 수행했던 ‘쉐우민 선원’으로 갔는데, 쉐우민은 사념처 중에서도 ‘마음 관찰’과 ‘법 관찰’을 강조하는 곳이다. 쉐우민 우 꼬살라 사야도의 제자인 우 떼자니야 사야도가 지도하고 있다. 전에 떼자니야 사야도의 책을 읽었지만, 도저히 ‘심념처’ 수행을 이해하기 어려웠기에 직접 배워보고 싶었다. 

미얀마에서 모든 역할과 책임을 내려놓고 수행만 하루 종일 할 수 있으니 행복했다. 어느 날은 잠을 자며 ‘사회에서 해야 했던 여러 일들’에 대한 꿈을 꿨는데, 깨어나고 보니 정말로 아무것도 ‘해야 할 일’이 없었다. 하루 종일 수행만 하니 확실히 ‘마음챙김’이 좋아졌다. 몇 달 지나지 않아 ‘하루 종일 마음챙김이 이어진다’는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법에 대한 이해가 생기자, 나에게 이러한 환경과 기회를 제공해준 모든 이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일어났다.

두 번의 우안거를 마치고 다시 재가자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5년간 바쁘게 살았다. 미얀마에서 수행센터에만 머물며 키웠던 수행력이 바쁜 재가생활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했다.

미얀마에서는 편안하고 고요했는데 막상 돌아와 보니 여전히 부족한 모습을 보며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했다. 강하게 계율을 지키려고 하니 일하면서 부딪히는 부분도 많았다. 미얀마에서 행복했는데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가했다가 돌아왔다는 걸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그래서 전부터 알았던 사람과도 연락을 끊었다.

번뇌로 괴로울 때, 이를 그대로 관찰하는 마음이 같이 있었다. 분명히 괴로운데 관찰하는 마음쪽은 평온했다. 이상했다. ‘수행하는 마음’은 바쁜 생활에 좌선하지 못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미얀마에서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은 것이다. 

마음은 서서히 정상 궤도를 찾았고, 깊숙이 깔려 있던 우울감에서도 벗어났다. 부처님의 법을 알게 된 인연의 감사함을 생각하니, 조금이라도 부처님 가르침에 보답하고 싶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그동안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하고싶었던 불교 도서를 ‘점자도서’로 출판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굴곡진 삶에 큰 도움이 됬던 ‘니까야’와 ‘테라와다불교 도서’들을 다른 사람들도 접했으면 했다. 모든 일을 혼자 하기 벅차 봉사자도 모집했다. 같이 일하다 보니, 각자 ‘니까야’ 한 권 값을 모아 도서관에 매달 한 세트씩 기증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3명이서라도 소박하게 해나갈 생각이었는데, 이러한 취지를 알리니 호응해주는 분들이 모여 ‘테라와다불교 니까야 보급회’를 만들게 됐다. 그런데 활동하다 보니 생각보다 ‘니까야’를 구비하지 못한 승원이나 스님들도 많았다. 그래서 지금은 도서관뿐 아니라 승원에도 니까야를 보시하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이 남아 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보시가 세 가지 있다고 한다. ‘승가에 하는 보시’ ‘부처님 법을 나누는 보시’ ‘열반을 서원하는 보시’다. 모두 해당하는 보시를 하고 있으니 복된 삶이다. 

내가 그동안 누린 복을 다른 이들도 함께 누리길 바란다. 특히 한 시대, 같은 공간에 살면서 경제적 빈곤, 신체적 장애 등으로 부처님 법을 접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미얀마에서 내가 받은 법명은 ‘담마삐야’다. ‘법(담마)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스스로 이름에 값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발원한다.

[1659호 / 2022년 1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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