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은 선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기자명 진원 스님

우리 수행자를 부르는 명칭은 참 다양하다. 나는 그 중에 ‘걸사(乞士)’라는 말을 좋아한다. 저자거리의 거룩한 수행자들이 불자의 공양을 받을 수 있는 고귀한 선비라는 의미다. 사실 수행자를 무노동으로 바라보는 불편한 시각도 있지만, 걸사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우리 수행자들은 평생을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 숙명이다. 조석으로 예불을 통해서 법을 내려주신 부처님께, 그 법을 대대로 이어오신 역대조사님들께, 그리고 그 대를 잇도록 뒷받침 해주신 불자들에게 늘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의식이다.

한편으로는 동사섭의 실천행으로 사회복지 현장에 있는 우리들은 국민세금으로 일정부분 대가를 받고 있지만 그 또한 베풀고 나누는 수행의 현장이다. 

연말이면, 일년내내 내밀었던 손이 부끄럽지 않게 후원해주고 봉사해준 분들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표시하는 ‘감사의 밤’ 행사를 열어오고 있다. 복지관이나 사회복지단체는 대부분 소액후원자들과 바쁜 시간을 쪼개 원력을 내준 봉사자들에게 의지한다. 

그중에서도 죄송스러운 부분은 자활근로를 하면서 아끼고 아껴서 “내 처지와 같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한다. 너무 죄송스러워서 “괜찮다고” 하면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나도 누군가에는 고마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초등학교 남학생은 소아암 환우를 위해서 머리를 길러 선물하기도 하고, 제대군인은 헌혈증을 모아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초로의 노부부는 노령연금을 모아 청소년에게 지속적인 후원을 한다. 그야말로 천금 같은 후원이다. 이렇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선한 영향력 발산하는 사람들 덕분에 연말이 있는 듯하다. 나는 그래서 연말을 감사의 달이라고 한다.

우리시대의 사람들이 허덕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돈을 ‘충분요건’으로 인식한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충분하지 못하거나 늘 부족하다 느끼면서 취약한 사람들이 더욱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한다. 돈은 ‘필요요건’이 되어야 한다. 온 세상을 돌고 돌아도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꼭 필요한 만큼으로 지혜롭게 쓰였으면 한다. 돈이 어떻게 지혜로운 우리의 삶을 만들까? 같은 돈을 쓰더라고 유흥에 쓰느냐,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느냐에 따라 지혜로운 돈이 될 수 있다.

지난 11월 초하루 법회에서 세상에 베푸는 것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이고, 가장 쉬운 것은 무엇일지 불자들에게 묻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불교집안에서는 베푸는 것, 후원하는 것을 보시라고 한다. 보시에는 조건이 없다. 그래서 무주상보시라고 한다. 주는 사람의 마음가짐으로 상을 내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그렇다면 받는 사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천금처럼 쓰여야 하고, 명명백백하게 투명하게 쓰여야 하고, 정당하게 쓰여야 한다. 의례적인 연말 행사가 아니라 베푸는 자와 받는 자 모두 자존감이 향상되고 서로 고맙고 감사했으면 한다.

태양은 늘 찬란하게 비추지만 처마 끝, 담장아래,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은 어딘가는 아직도 볕이 들지 않아 어둡고 추운 곳이 있다. 이러한 곳에 따뜻한 태양이 되어주시는 분들이 후원자들 봉사자들이 아닐까 한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부처님께서는 선인선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번 선한 일을 했으면 늘 그렇게 하도록 하라. 그 일에 마음을 즐겁게 가지라.
복은 선의 일의 쌓임에서 오는 것이니, 작은 선은 복이 되지 않는다고 가볍게 여기지 말라
물방울이 고여서 항아리를 채우나니 현명한 이는 쌓고 쌓아서 복으로 가득찬다.’(법구경)

베푸는 자와 받는 자 모두 존귀하신 분들에게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축원드린다.

진원 스님 계룡시종합사회복지관장 suok320@daum.net

[1660호 / 2022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