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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꽃들이여 부디 아픔 없는 곳에서 평온하길”

  • 교계
  • 입력 2022.12.16 17:00
  • 수정 2022.12.17 21:06
  • 호수 1662
  • 댓글 1

조계종, 12월16일 조계사에서 이태원참사 49재 봉행
영정 67위·위패 78위 모셔…진우 스님·유가족 등 동참

“서른 살 청년도 낯선 누군가를 도와주려다 이태원 차가운 도로에 쓰러졌습니다. 말 잘하시는 대한민국 잘나신 분들은 어린 아이들도 잘하는 ‘잘못했다’ ‘미안하다’ 이 한마디를 못하는 겁니까. 158명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아들아, 시간이 지날수록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숨을 쉴 때마다 내 몸 속 마디마디에서 눈물이 난다. 부지런히 돈 벌어 사업한다던 너의 꿈. 이젠 너도 없고 꿈도 없구나. 그 먼 길을 어찌 보내야 할까. 넘어지지 말고 천천히 조심해서 잘 가렴.”

“누나, 잘해준 게 없어 미안해. 누나가 나한테 했던 말들은 내가 싫어서 한 게 아니었다는 걸 지금 알았어. 정말 미안해. 많이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은 청춘은 펼쳐보지도 못하고 짧은 인생을 살다간 너무 불쌍한 우리 아들, 이젠 널 편히 보내야 할 것 같아. 다음 생에 만나 못다 한 정을 다시 쌓자. 사랑 한다 아들아.”

“딸아. 엄마아빠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이승에서 모든 고통, 슬픔 다 버리고 부디 힘내서 잘 가거라. 정의로운 세상, 안전한 세상이 올 때까지 엄마아빠가 최선을 다할게.”

[공동취재단]
[공동취재단]
[공동취재단]
[공동취재단]

2022년 10월29일 이태원, 극심한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둬야 했던 누군가의 아들, 딸, 오빠, 누나, 동생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가 조계사를 가득 메웠다. 유가족들의 울부짖음은 절규에 가까웠고, 이를 지켜보는 추모객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이태원 차가운 골목에서 158명의 청춘이 스러진지 49일 째.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속절없이 흐른 시간은 유족들에게 더 큰 슬픔을 안겼다.

조계종이 12월16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 특설무대에서 ‘10·29(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위령재’를 봉행했다. 이번 위령재는 참사 49일을 맞아 희생자들이 좋은 곳에서 태어나도록 기도하는 천도의식으로, 조계종 어산종장 화암 스님이 집전했다. 영단에는 위령재 참여를 희망한 영정 67위와 위패 78위가 함께 모셔졌다.

위령재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비롯해 교육원장 혜일, 포교원장 범해,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보인, 총무원 총무부장 호산,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과 총무원 부실장 스님, 유가족 150여명, 일반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의식은 추모 타종 158타를 시작으로 시련의식, 위패 이운, 헌향, 대령관욕, 회심곡, 관음시식, 유가족 헌향 등으로 이어졌다. 체감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에도 동참자들은 희생자 모두 극락왕생하고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나라가 되길 발원했다.

[공동취재단]
[공동취재단]

이수민 조계사 청년회장은 “꽃 같던 그대들을 떠나보내는 길에 우리 모두의 마음은 깊이 아팠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건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부디 모든 고통 잊으시고 아픔 없는 곳에서 평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나태주 시인의 추모시를 낭독했다.

“못다 핀 꽃들이여, 어여쁜 영령이여/ 무릎 꿇고 통곡하며 그대들 위해 빕니다.// 우리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 다시 한 번 사랑하고 다시 한 번 꿈꾸고/ 다시 한 번 살아가는 좋은 목숨이시길 빕니다.”

[공동취재단]
[공동취재단]
[공동취재단]
[공동취재단]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추모 법문으로 희생자들이 다시는 고통을 겪지 않도록 이고득락(離苦得樂)과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스님은 “이제 미련과 집착을 놓고 평안한 피안의 업멸을 지어야 한다. 다음 세상에서는 괴로움을 느낄 수 없는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며 “중도의 마음을 가꾸고 고락의 업장을 소멸해 마음을 깨치면 괴로움과 고통스러운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도 전했다. “희생자들과 유족들이 느끼는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소승의 마음도 매우 아리고 아프다”고 말한 스님은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살펴야 한다.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며 “하루빨리 마음을 추스르고 냉철한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 평안한 상태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영가를 위한 일이다”고 전했다.

법문이 끝난 후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유가족들이 차례로 영단에 올라와 헌화했다. 희생 영가들의 넋을 달래는 성운 스님의 절절한 ‘화청’에 영전 앞에 선 가족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공동취재단]
[공동취재단]

이어 고 이지한 배우 어머니 조미은씨가 유가족을 대표해 49재를 마련해준 조계종에 감사를 전했다. 그는 “조계종에서 저희 아들딸들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이런 자리를 마련해줘 뭐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대한민국 한복판 이태원 골목에서 차갑게 생을 마감한 우리 아들딸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고 이지한 배우 아버지 이종철씨도 “오늘 진우 스님의 말처럼 더 이상 슬퍼하지만은 않겠다. 진상규명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기 위해 더욱 힘내겠다”고 밝혔다. 또 이태원 참사를 향한 악성댓글 피해를 언급하며 “유가족들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희생자들을 향한 모욕적인 발언들을 자제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위령재는 희생자들의 위패와 종이 옷을 불로 태워 영혼을 보내는 소전 의식으로 마무리됐다.

한편 이날 오후 2시 녹사평역에서는 7대 종교 지도자들로 구성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가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 추모식’을 봉행했다.

[공동취재단]
[공동취재단]
[공동취재단]
[공동취재단]
[공동취재단]
[공동취재단]

김내영 기자 ny27@beopbo.com

[1662호 / 2022년 12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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