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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신흥사 주지 종현 스님

괴로움은 나와 남을 비교하고 집착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비교는 행복을 불행으로 만들고 가까운 이를 멀어지게 해
관계 속 존립하는 사물 이치 살펴 집착 버림이 바른 견해
수행과 기도 통해 모든 존재의 가치가 평등함을 알아가길

울산 신흥사 주지 종현 스님은 “수행과 기도로 불교공부를 향상시키고, 보시를 실천해 사회를 따뜻하게 하라”고 강조했다.
울산 신흥사 주지 종현 스님은 “수행과 기도로 불교공부를 향상시키고, 보시를 실천해 사회를 따뜻하게 하라”고 강조했다.

반갑습니다. 울산 신흥사(新興寺)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신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본사 통도사의 말사로 신라시대 창건된 천년고찰입니다. 신흥사는 신라 명랑 법사와 인연이 깊습니다. 명랑 법사는 밀교 계통에서 아주 신비한 재주를 지닌 분이셨다고 합니다. 신라 국통이시고 통도사를 창건하신 자장 법사는 명랑 법사의 외삼촌이시기도 합니다. 당시 선덕여왕께서도 명랑 법사를 옆에 두고 국사를 논했다고 합니다.
 
신흥사는 초기에 건흥사(建興寺)라는 사명으로 불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1592년 임진왜란 때 민초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울산 의병이 일어난 곳이 이 산의 중턱 기박산성입니다. 당시 신흥사 주지셨던 지운 스님께서는 ‘나라가 위중한데 수행자가 염불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우리도 같이 나라를 구하자’는 원을 세우셨습니다. 스님들은 승군을 조직해 무술을 연마했고 공양미 300석을 의병들에게 보시하며 함께 왜적을 막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흥사는 호국의 염원이 가득한 도량이었고 결국 왜적들에 의해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지역에서는 ‘호국도량을 저렇게 두어서는 안 된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공을 계승해야 한다’는 중창의 염원이 모였습니다. 사격을 갖추고 새로울 신(新), 흥할 흥(興) 자를 쓴 신흥사로 사명도 바꾸어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이 깊고 승병 도량이었던 신흥사는 사실 굉장히 깊은 산 속에 위치합니다. 울산에서도 이렇게 깊은 산중에 있는 도량은 드물 것입니다. 수행자의 입장으로는 기도하고 정진하기 좋은 도량입니다만, 현대인들과의 소통과 치유를 위한 불교의 역할을 고민할 때 저는 이왕이면 사찰에 오시는 분들이 조금 더 쉽게 참배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문화공간도 조성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도량 주변의 장엄도 달리해서 오시는 분 누구나 몸과 마음을 쉬어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무엇보다 신흥사에는 울산을 대표하는 자랑이 있습니다. 신흥사 대웅전 부처님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낙엽이 지고 빈 가지만 남아 산하대지가 동면에 들어간 요즘 같은 겨울은 정말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이 이곳 신흥사에서 더욱 절실해집니다. 옛 말씀에 ‘기한에 발도심(發道心) 한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춥고 배가 고파야 공부가 잘되지 배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사람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한겨울의 성지 참배는 스스로 돌이켜보고 관조하는 최상의 시간입니다. 오늘이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큰 공부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든 것은 ‘자작자수(自作自受)’이며 ‘자업자득(自業自得)’입니다. 자기가 짓고 자기가 거두는 것이 인과의 법칙입니다. 경전에는 “금생은 과거 생의 결과물이고 지금 사는 모습은 미래 생의 원인”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인(因)이 있으면 과(果)가 있고 과가 있으면 인이 있어서 모든 것이 서로 연결고리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내생에 진정한 행복을 바란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공덕의 복을 짓고 지혜를 닦는 것이 현명한 삶이라는 가르침입니다.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재미있고 행복한 일이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돈 많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승용차 굴리고, 폼 나게 외국 여행도 다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충족되면 아무 탈이 없는데 불만과 갈등이 지속됩니다. 왜 그럴까요. 욕망은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마치 바람을 넣어도 자꾸 줄어드는 구멍 난 풍선과 같습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갈증이 더해갑니다. 욕망은 괴로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불교의 사성제(四聖諦)를 알고 있습니다. 고(苦)·집(集)·멸(滅)·도(道),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인간이 사는 사바세계의 밑바탕은 괴로움입니다. 그 괴로움은 팔고(八苦)로 나눠집니다. 그러한 괴로움의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집성제에 나옵니다. 원인은 바로 욕망입니다. 욕망은 갈애입니다. 갈증 날 때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 괴로움을 어떻게 제거하는가. 거기에서는 멸성제가 들어갑니다. 멸성제는 모든 번뇌 망상이 사라진 곳입니다. 그곳을 니르바나, 열반이라고 합니다. 열반에 들어가면 모든 괴로움이 다 멈춥니다. 

마지막 도성제는 무엇인가. 멸하는 방법을 얘기합니다. 병이 나서 의사 선생님께 진단을 받고 무슨 무슨 약을 먹으면 그 약을 통해서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방법론이 도성제입니다. 팔정도를 통해서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그것을 제거하고 그 방법을 통해서 열반적정, 번뇌망상이 다 사라진 곳으로 가는 것이 불자들의 종착지입니다. 

‘논어’에는 “남이 나를 알지 못함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더 걱정하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세상에는 나보다 못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은연중에 내가 타인보다 더 낫다는 우월감과 교만한 마음이 생기면 그로 인해 일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제 잘난 맛에 살지 말고 남의 장점을 잘 알아보고 항상 자기 자신을 점검하고 살피라, 즉 자신의 자리매김을 잘하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의식주는 옛날에 비하면 풍족합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10대 대국이고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데 내가 무엇이 더 잘났다, 너는 뭐가 더 잘났다, 이렇게 자꾸 비교하게 되면 행복을 불행으로 만드는 것이고 가장 가까운 친구를 적으로 내모는 것과 같습니다. 

스무 평 정도의 아파트에 살 때는 아무 걱정 없이 만족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인근에 40평, 5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보면 갈등이 생깁니다. 자녀의 통학을 위해 어렵게 운전면허증을 따고 경차를 사서 몰고 다니던 사람이 처음에는 그 차가 손발이 되어 주는 만족과 행복을 느끼다가 어느 날 친구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는 기가 팍 죽고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사람마다 자기 복이 있고 그릇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굳이 살아가면서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교하면 한없이 불행해집니다. 경차가 있고 20평 아파트가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람이 살아가며 겪어야 하는 불평등과 생로병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셨습니다. 왕자의 권력을 가지고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설산에 올라가셔서 6년의 고행 끝에 진리를 깨달으셨습니다. 바로 중도(中道)사상과 연기(緣起)사상입니다.

중도사상은 올바른 견해를 뜻합니다. 올바른 견해는 여러 관계 속에서 존립하는 사물의 이치를 정확하게 살펴서 쓸데없는 집착을 버리는 것입니다. 빈부의 격차, 정치적 진보와 보수의 갈등 등 이 모든 것은 ‘나’라는 집착에서 나옵니다. 그 생각을 한 생각 돌이켜야 합니다. 중도사상에 입각하면 모든 것이 다 밝아집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른 견해와 지혜로 사물을 평등하게 보는 균형 감각이 바로 중도입니다.
 
만물은 독자적인 실체가 없고 상호관계 속에서 의존하는 것이 바로 연기 법칙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도 생하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현실을 바라보고 스스로 적절한 자리매김을 하는 자세가 곧 연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화를 냅니다. 또 무시하거나 비방하는 말에도 화를 냅니다. 하지만 나를 떠나 중도적인 입장으로 생각해 보면 화를 낼 일이 없습니다. 너와 내가 똑같은 존재입니다. 모두 다 불성이 있고 불성의 자리에서 보면 다 똑같습니다. 상대와 나를 같은 존재로 보고 평등사상을 더 넓히는 가르침이 바로 불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욕망을 채워주지 않았습니다. 욕망을 없애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장 약을 먹여서 병을 낫게 하는 정도로는 완전한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오는 사람마다 나무 밑에 앉아서 명상을 시켰습니다. 수행하게 했습니다. 욕망이라는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니 그것을 들어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태어나서 병들고 늙고 죽는 것도 결국 삼독에 의한 것이다, 생로병사의 근원을 제대로 꿰뚫어 볼 때 자유로울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마음을 닦아라.”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느끼는 이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입니다. 고정된 모양이 있거나 고정된 색깔이 있거나 고정된 냄새가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있는 줄 압니다. 고정된 마음이 없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마음자리를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화엄경’에서는 “모든 것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로 설명하였습니다. 

수행과 기도를 통해서 모든 존재의 가치가 평등함을 알아가는 불교 공부를 항상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연말을 맞아 바쁘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나보다 못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법보시, 재보시, 무외시 보시 등 보시를 실천한다면 우리 사회가 더 훈훈해지고 따뜻해질 것입니다. 호국도량 신흥사를 찾아주신 이 인연 공덕으로 한 해를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에도 모두 편안하시며 무탈하시기를 축원 드리겠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12월4일 부산 여래사불교대학(학장 종우 스님) 주최 ‘선지식 친견 성지순례 - 제4차 울산 신흥사 순례’에서 신흥사 주지 종현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1662호 / 2022년 12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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