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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선 수행 김순미(청정심·59) - 상

기자명 법보

건강하던 친정아버지 암 판정에
삶·죽음 의문 들어 10년간 방황
믿음으로 스승 가르침 따라가다
만물 의미 본래 없음 알아차려

청정심·59
청정심·59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필수 교양수업으로 불교를 공부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부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접했는데, 처음 보는 내용이었지만 깊은 공감이 몰려왔다. 특히 부처님은 내 마음속에 있다는 구절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었다. 

80년대 초, 암울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 수많은 정신세계에 관한 책들이 홍수를 이뤘다. 인도철학과 노자, 장자 등에 푹 빠져 20대를 보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참나에 대한 갈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남편을 만나게 되면서 삶의 굴레 속에 허덕이며 살았다. 

그러던 중 60대 중반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친정아버지는 1년을 못 버티고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치루고 나니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살아있는 것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언젠가 아버지처럼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데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또 죽으면 극락과 지옥으로 가는 것인지, 윤회사상처럼 삶과 죽음이 되풀이 되며 다른 동물로 태어날지 수만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올라왔다. 

이때부터 방황이 시작됐다. 세속의 삶은 너무나 무의미해 보였기에 틈만 나면 사찰을 찾아갔다. 아무도 없는 대웅전에 홀로 앉아 눈물을 흘리다가 돌아오곤 했다. 30대 후반이었다.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10여년을 좌충우돌했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스승을 찾아 헤매던 중, 아는 도반의 소개로 무심선원 김태완 선생님의 법문을 유튜브로 접하게 됐다. 

유튜브 동영상 법문을 1시간 들었는데, 김태완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답을 알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드디어 스승을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떤 수업이었는지 이해는 잘 가지 않았지만 “바로 이것이다” 하면서 손가락을 올리는 김태완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열심히 듣다보면 답이 찾아올거라 믿고 일주일간 밤낮없이 법문을 들었다.

부산 송정에서 3박4일 조사선 정진법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동참했는데, 3일 동안 법문시간만 되면 거의 가사상태에 빠졌다. 선생님 목소리는 윙윙 거리는데 눈을 뜰 수 없었고 체면에 걸린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법회 마지막 날 오래 공부했다는 도반이 방에 찾아와 법담을 나눴는데, “중생은 한 방울 물에 불과한데 그 한 방울 물이 바다에 풍덩 빠지면 그만인 것을 자기가 바닷물을 끌어와서 하나가 되려고 하는가”라는 말이 가슴에 꽂혔다. 

정진법회 마지막 날 새벽. 바닷가에 홀로 나가 모래사장에 앉아있는데 어젯밤 도반의 말이 생각났다. ‘맞아. 내가 저기 바닷물에 풍덩 빠지면 그만인 것을’ 하며 회상에 잠겼다. 그동안 공부한다, 수행한다 하면서 겪어왔던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한참을 울었다. 

첫 법문을 듣는데 선생님 법문이 또렷하게 들리고 정신도 너무 맑았다.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갑자기 법당 단상에 걸어놓았던 ‘무심선원 여름정진법회’ 현수막이 그저 흰 바탕에 까만 먹물이 칠해졌을 뿐이라는 걸 알았다. 아무런 뜻도 없고 그저 바로 그것이었다. 

예전에는 ‘무심’이라고 하면 ‘마음이 없다’라는 개념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아무런 뜻이 없었다. 한자와 한글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본래부터 아무런 뜻이 없었다. 김태완 선생님은 여러 주제로 지도해주지만 결국 내용은 똥 막대기나 뜰 앞의 잣나무나 똑같다는 것이었다. 정진법회를 마치고 도반들을 배웅하던 선생님을 쫓아가 합장 인사를 드렸다. 10년 동안 해결 못한 숙제를 해결하고 간다고 감사드렸다.

그 체험 후 ‘이제야 공부 시작’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끝이 아니라 입문한 것이었다. 이제는 가야할 길을 알아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또 선생님을 따라가면 더 이상 헤매고 다닐 일은 없겠다 생각하고 법회를 신나게 다녔다. 선생님 법문이야 어떤 소리를 해도 똑같다는 생각으로 그냥 법당에 편하게 앉아 있었다. 정진법회가 다시 열렸을 땐, 안일하게 제일 뒤에 앉아서 조는 등 집중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주변을 구경하며 딴 짓을 하고 있었다.

[1662호 / 2022년 12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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