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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수피들의 수행, 고양이가 쥐를 잡듯

기자명 윤소희

빙글빙글 도는 수피댄스로 몰아지경에 들다

쥐 기다리는 고양이처럼 명상하는 법 단련토록 지도
수피댄스 등 수피들 집중방식은 염불‧참선과도 상통
다라시코 학문적 성과는 인도사상의 유럽 전파 가교

1) 부왕 샤 자한을 알현하고 있는 다라시코. 2) 2018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구시가지에서 무함마드의 탄생일에 수피들이 북 장단에 맞추어 노래하며 춤추는 모습. 3) 산스끄리뜨로 표기된 다라시코의 서책 표지.
1) 부왕 샤 자한을 알현하고 있는 다라시코. 2) 2018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구시가지에서 무함마드의 탄생일에 수피들이 북 장단에 맞추어 노래하며 춤추는 모습. 3) 산스끄리뜨로 표기된 다라시코의 서책 표지.

 

기독교의 암흑기였던 중세가 이슬람은 르네상스 시기였다. 수 세기 동안 정복전쟁과 교세 확장을 해 오던 이슬람이 10세기와 11세기 사이에 일시적으로 정치적 무질서와 혼란도 겪었지만 문화적으로는 학문과 예술의 황금기였다. 이슬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꼽히는 이란의 아부 알 가잘리(Abū al-Ghazālī, 1058~1111)는 철학과 과학으로, 이라크에서 태어나 이집트 등지에서 활동한 이븐 알 하이삼(Ibn al-Haytham, 965~1040)은 물리학‧수학‧천문학을 통섭하며 빛과 인간의 눈 구조에 탁월한 연구 성과를 거두었고,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이란에서 생을 마치며 철학과 의학에 괄목할 만한 족적을 남긴 이븐 시나(Ibn Sīna, 980~1037) 도 이 시기의 인물이다. 

무함마드 이후 가장 위대한 무슬림으로 불리우는 가잘리는 수피였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수도사들에 의해 수피즘의 꽃이 피는 가운데 술탄왕국들은 악사들을 적극 후원하였다. 수피즘이 확산되자 아라비아 곳곳에는 수피를 위한 임시 거주지인 칸까(khānqāh)와 수피 수도자들의 거처인 자위야(zāwiyah)를 위한 기부금 제도가 생겨났다. 칸까에서는 수피들의 영적 도정의 길을 의미하는 ‘따리까’가 형성되었고, 이는 점차 발전하여 따리까의 위계 체제를 형성하였다. 12세기 무렵에는 금욕주의자로써 설교에 뛰어났던 압드 알 질라니(Abd  al-Jilānī)의 이름을 본 딴 ‘까디리야’ 종파도 생겨났다. 

다양한 방식의 수피즘은 황홀경에 빠지는 도취의 방식과 냉정함을 유지하는 두 유형으로 간추릴 수 있다. 수피 춤과도 연결되는 도취 방식의 대표로 알 할라즈를 꼽을 수 있다. 인도 북부와 중앙아시아에서 활약해오던 그는 ‘꾸란’과 율법을 무시하며 “신과 합일된 내가 곧 신이다”라고 외치는 등, 과도한 수행을 일삼다 바그다드에서 처참하게 처형되었다. 이와 달리 알 주나이드는 ‘꾸란’과 율법에 합치되는 생활을 강조하며 온건적 수행을 취하였다.   

이 무렵 헬레니즘 성향이 짙은 서적들이 아랍어로 출간되면서 정신적‧물질적 현시(顯示)의 단계를 설명하는 이슬람 철학과 함께 다양한 수피음악이 양산되었다. 더불어 그리스와 교류하며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이해가 증대하였고, 헬레니즘과 신플라톤주의적 신비주의가 이슬람 사상가들 사이에 확산되었다. 신정일치 술탄의 파워는 인도를 정복하며 델리에 로디왕조가 들어섰다. 그러자 사마르칸트 일대를 정복하고자 했던 티무르 왕조가 남하하여 로디 왕조를 무너뜨리면서 무굴왕조가 세워졌다. 

아내를 위해 타지마할 궁전을 지은 무굴제국의 제 5대 황제 샤 자한에게는 명석한 두뇌의  다라시코(Dara Shikhoh, 1615~1659)가 있었다. 장남으로써 부왕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온  그는 ‘베다’를 읽으며 힌두 사제들의 수행법을 이해하게 되었고, 50개의 우파니샤드를 페르시아어로 번역함으로써 아라비아 인도학이 시작되었다. 다라시코가 인도 문학에 심취해 있는 동안 부왕 샤 자한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정치세력을 키우기보다 철학과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다라시코는 왕위 계승 전투에 패하여 사형에 처해지며 그의 학문 여정도 끝이 났다.

페르시아어와 산스끄리뜨에 능통했던 다라시코는 인도 문학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를 델리 궁전으로 초대하여 광범위한 학문적 논의를 하였고, 논의를 거친 문헌들을 직접 페르시아어로  출간하였다. 

다라시코에 의해 번역‧소개된 ‘우파니샤드’와 인도 문학들은 라틴어로도 번역되어 서양 철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쇼펜하우어와 볼테르를 비롯한 서양의 지성들이 동양 정신에 대한 호의적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다라시코의 학문적 성과는 인도사상이 아라비아 뿐 아니라 유럽으로 퍼져가는 가교가 되었다. 

다라시코는 인류의 그 어떠한 언어 보다 산스끄리뜨어가 지식을 체계화하고 완성하기에 월등하다고 여겼다. 산스끄리뜨에 대한 그의 생각은 ‘두 바다의 합류(Majma-ul-Bahrain)’라는 명저를 낳았고, 현재까지도 다라시코 최고의 학문적 성과로 꼽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베단뜨와 융합된 이슬람 신비주의 따싸우프(Tassawwuf)를 설파하며 시크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에도 영향을 주었다. 

우리네 옛 선사들은 화두 참구하기를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였다. 다라시코에 의해 인도문학이 아라비아로 퍼져나가던 그 무렵 수피들의 수행에도 이와 유사한 일화가 많다. 수피 지도자들은 쥐구멍 앞에서 쥐를 기다리는 고양이처럼 명상하는 법을 단련해야 한다고 가르쳤으므로 수피들의 자서전에 고양이가 자주 등장한다. 빙글빙글 돌면서 몰아의 경지로 드는 수피댄스와 더불어 수피들의 집중 방식을 보면 불교의 염불수행과 화두 참선과도 상통하는 점이 있다. 

다라시코가 살았던 1600년대의 인류 문화사를 보면, 카이로나 이스탄불 등지에서 수니파‧시아파‧정교회‧굽트교‧가톨릭‧아르메니아‧유대‧힌두교인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렸던 기록들이 많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에게 이슬람은 IS나 테러와 같은 공포의 대상으로 각인되어 있다. 궁금한 것은 현실적 실체를 확인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지라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성원, 인도네시아와 이집트의 무슬림 친구들에게 고양이와 수피 수행법,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들의 답을 요약해 보면, “고양이를 성스러운 동물로 여겼던 것은 이집트문화와 관련이 있고, 수피는 이슬람의 이단이며, ‘한손에 칼, 한 손에 꾸란’과 같은 말은 기독교인들이 퍼뜨린 유언비어”였다. 그들의 말 대로 한국인의 이슬람포비아는 서구적 편견이 다소 작용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이슬람의 배타적 태도는 초기 무슬림들이 취했던 자세와는 많이 다르다. 여기에는 형 다라시코를 처형하고 왕위에 오른 아우랑제브의 폭거와 관련된 일면도 있으니 그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이어 가보자.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한국불교음악학회 학술위원장
ysh3586@hanmail.net

[1664호 / 2023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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