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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선 수행 김순미(청정심·59)-하

기자명 법보

본래면목, 스스로 깨어남 알고
생각 조복하는 조급함 사라져
내 세상, 지금 이 자체로 완벽해
공부·깨달음 등 분별 사라져야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 법문 중 “생각을 조복시키지 못하면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다”는 말이 귀에 확 꽂혔다.

‘내가 생각을 조복시켰나’ 하는 의문이 올라왔다. ‘그럼 내가 지금까지 체험한 것은 뭘까’ ‘어떻게 생각을 조복시키지’ 천근만근 바위덩어리가 가슴에 달린 것처럼 숨을 쉬기 힘들었다. 너무 답답해 앉아있기도, 누워있기도 힘들고 밥도 먹을 수 없었다. 

법회 마지막 날, 선생님에게 ‘똥 막대기’던 ‘뜰 앞의 잣나무’던 다 똑같은데, 도대체 생각은 어떻게 조복시켜야 하는지 여쭸다. 선생님은 그저 웃으며 “보살님, 그냥 이것뿐이에요”하고 법상을 세 번 두드리셨다. 그 소리에 내가 여태까지 체험했던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깜깜한 절벽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선생님, 모르겠어요.” 

그러자 선생님도 웃음을 거두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나왔다. 이제는 정말 공부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정리하려 부산 무심선원에 내려갔는데, 도반스님이랑 같은 방을 쓰게 됐다. 스님께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힘들다고 토로했더니 스님은 “보살님 뭐가 걱정입니까. 본래면목은 스스로 깨어나는데”라고 했다.

이를 듣자마자 답답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스스로 알아서 깰 때 되면 깰텐데, 왜 노심초사 했는지 의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습관처럼 유튜브로 동영상 법문을 듣던 중 화면 속 선생님이 손가락을 치켜들며 “바로 이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손가락이 선생님 것이 아니라 내 것이었다.

너무 놀라 누워 있다 벌떡 일어났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 같다는 선사들 말씀이 바로 이 표현이었다. 모든 게 너무 생생해서 주먹도 쥐어보고 눈도 깜박여보고 발가락도 움직여보며 혼자 뛰고 놀다가, 갑자기 ‘내가 언제는 이렇게 안하고 살았는가.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손으로 주먹 쥐고 입으로 밥 먹고 살았지’라는 생각이 들어 허탈했다. 지금까지 무엇을 찾기 위해 수십 년을 헤맸는지 허망했다. 

중국 남송시대 어느 비구니스님의 “봄을 찾아 온갖 곳을 헤매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봄이 이미 집에 와있더라”는 오도송이 절실하게 와 닿았다. 돌고 돌아 내 자리에 온 것이다. 

그러나 체험 후에도 이 자리를 찾는 마음과 이 자리를 확인하려는 욕구를 내려놓지 못했다. 

그것이 공부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였다. 어느 날 법문을 듣는데 의식이 하나로 몰리는 듯 하더니 뭔가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며 마음이 가벼워지고 밝아졌다. 선생님 법문이 점점 소화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편안해지고 안정됐다. 

공부는 단번에 일취월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나이테가 생기듯이 조금씩 깊어지는 것 같다. 체험 후 10년쯤 되던 어느 날 법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길이었다. 보름달이 떠있었는데, 구름이 달을 가려서 밝지 않고 은은했다. 그 순간 ‘구름이 달을 가린 저 상태도 완벽한데 내가 아직까지도 저 구름을 치우고 밝은 달만 찾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체로 완벽한데 왜 구름을 치우려고 했을까. 온 세상이 이대로 손댈 것 없이 너무 완벽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에 도착해 집안일을 마치고,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법·공부·깨달음 등의 생각들이 거짓말같이 모두 사라지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멍한 모습이 마치 공부를 시작하기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아닌 나로 돌아간 것 같아 불안했다. 

선생님 법문을 틀었는데 한 마디도 듣기 싫었고, 뭔지 모르지만 여기서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어긋날 것 같은 두려움이 샘솟았다. 뭔가 공부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께 연락했다.

선생님은 “법이니 공부니 깨달음이니 모두 다 사라져야 한다”며 “이제는 자유자재로 자전거를 혼자 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확실하고 분명해질 것”이라고 격려해 주셨다.

도반들과 김태완 선생님의 응원에 힘입어 지금 이 순간도 공부인의 길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길을, 가는 사람이 없는 길을 가고 있다.

[1664호 / 2023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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