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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렸을 때의 한문공부와 큰 사고

기자명 이상규

바위와 선생· 친구 도움으로 구사일생

‘명심보감’ ‘논어’ 등 한자공부 덕
불경공부· 경전 국역 어려움 없어
일제강점기때 일정량 관솔 채취
소나무에 올랐다가 큰변고 치러

요새는 영어가 세계를 석권(席捲)하고 있는 때라서 그렇겠지만 유아원에서부터 영어교육을 시키느라 그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어릴 때인 8~90년 전만해도 우리 나이로 다섯 살이 되면 동네 서당을 가거나 독선생(獨先生)을 두어 자기집 사랑방에서 두세사람이 모여 한문 공부를 하는 것이 예사였다. 

필자 역시 다섯 살 되던 해부터 소학교에 입학한 8세에 이르기까지 한문공부를 했는데, ‘명심보감’ ‘천자문’ ‘사자소학’을 비롯해 ‘격몽요결’ ‘논어’ ‘맹자’ 등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돌이켜 보면 당시의 한문공부는 먼저 각 한자의 음을 새기고 뜻을 배워 익힌 다음 전권(全卷)을 외우는 것이 전부였는데 어려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니 요새 유치원에서 영어공부를 시키는 것을 생각하면 한문공부도 못할 것이 없다고 본다.

한문공부 과정에서 가장 신나는 것은 이른바, ‘책 걸이’라는 행사다. 서당 등에서 한문공부를 하다가 책 한 권을 제일 먼저 떼었음을 훈장(訓長) 선생님이 인정하면 그 아이의 집에서는 팥을 얹은 찰떡을 해 그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온 동네에 그 떡을 돌렸다. 이를 가리켜 ‘책 걸이’라 불렀다. 간식(間食)감이 별로 없던 당시에는 떡만 해도 퍽 좋은 먹거리였을 뿐만 아니라 ‘책 걸이’를 하는 집으로서는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나는 꽤 자주 책 걸이를 하는 편이었으나, 어머님은 그것을 퍽 즐겨하셨다.

필자가 법학(특히 행정법)과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물론 불경공부를 함에 있어서도 벽자(僻字)나 이체자(異體字)를 제외하고는 별로 한자로 인한 어려움을 겪은 일이 없었던 것은 물론, 일부 한역경전을 국역(國譯)하려는 만용(蠻勇)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어렸을 때의 한문공부 덕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의 선고께서는 금융조합에 재직하셨던 관계로 금융기관 일반의 경우처럼 전근이 잦으셨다. 그런 탓에 나는 6년의 초등학교과정을 다섯 번이나 전학하면서 마칠 수 있었고, 절친한 어릴적 친구 또한 많지 않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일제의 강점(强占) 아래 있을 때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고, 원유가 나지 않는 일본으로서는 연료난(燃料難)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어 심지어 송탄유(松炭油)를 짜서 활용하기까지 했다. 그런 탓에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방학 때면 일정량의 관솔을 따오게 할 정도였다. 

내가 정읍동초등학교 3학년 1학기 때의 일이다. 그 학교 뒤에는 제법 가파른 산이 있었는데 그날은 점심을 먹고 난 오후 시간에 담임선생님의 인솔로 그 반 학생들이 모두 뒷산에 올라 관솔을 따게 됐다. 소나무에 손이 닿을 만한 낮은 가지의 관솔은 이미 다 따버려 제법 높은 가지에나 더러 남아있을 정도였다.

한참을 조심스레 이 나무 저 나무를 살폈다. 그 가운데 제법 큰 나무를 발견했고 꽤 높은 가지에 큰 관솔이 붙어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관솔을 따야하기 때문에 나는 동료 학생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 나무에 올랐다.

 앞서 보아둔 관솔을 따려고 그 가지를 붙들고 힘을 주는 순간, 갑자기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가지가 부러지면서 나는 그 밑으로 떨어지기가 무섭게 산 아래로 구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산의 경사가 워낙 심해 한참을 굴러 내려갔다. 그동안에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산 밑에는 연못이 존재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 었다. 조금만 더 굴러 내려갔다면 그 밑의 연못에 빠져 죽을 것이 거의 분명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얼마가 지났는지 모른다. 정신이 조금 들어 어렴풋이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원의 수술대에 누워있었다. 정신을 잃었기에 어떻게 된 상황인지 짐작조차 못했다.

동료 친구들에게 들은 바로 연못 쪽으로 한참을 굴러 연못에 이르기 직전에 그곳에 있는 큰 바위에 걸려 멈추게 되었고, 내가 나무에서 떨어져 산 아래로 구르는 것을 보고 놀란 선생님과 학생들이 뒤쫓아 뛰어와 바위에 걸려있는 나를 부축해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의 구사일생(九死一生)이었던 셈이다.

이상규 변호사, 전 고려대 교수

[1665호 / 2023년 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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