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는 장구한 한국 역사를 통틀어 유일하게 주권을 빼앗긴 암흑기였다. 한국불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의 집요한 탄압으로 존망의 갈림길에 섰을 무렵 영축산의 구하천보 스님(1872~1965)과 오대산의 한암중원 스님(1876~1951)은 같은 문중의 사촌 사형제로서 한국불교의 전통을 잇고 지평을 넓히는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구하 스님은 학교 설립, 포교당 건립에 두드러진 행적을 남겼다. 명신학교(현 하북초)와 불교명신학교를 시작으로 입정상업학교(현 부산해동고), 통도중학교(현 보광중) 등을 설립했으며, 통도사 마산포교당의 대자유치원을 비롯해 많은 유치원을 건립했다. 또 통도사 마산포교당, 진주포교당, 양산포교당, 창원포교당 등 31곳의 포교소를 개원하는 등 한국불교 포교 역사에 있어 한 획을 그었다. 이외에도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으며 1949년부터 1951년까지 중앙불교총무원장을 맡으며 한국불교의 안정과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오대산의 학’으로 불리는 한암 스님은 한국선의 중흥조로 평가받는 경허 스님의 마지막 인가 제자로서 선풍을 드날린 청정한 수행자의 표상이었다. 계율과 솔선수범하는 날카로운 선수행의 지도로 26년간 상원사 선원에 주석하며 크게 선풍을 진작했다. 스님은 시대인식도 뛰어났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총 4차례나 종정(교정)으로 추대되는 등 한국불교를 이끈 등불이었으며, 1941년 일제강점기 최초의 종단인 조선불교조계종 창종에 큰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하는 데 크게 기여한 선각자였다.
책은 한국불교가 위기의 파고를 넘을 수 있도록 초석을 확립한 두 고승에 대한 연구서다. 구하 스님 관련 논문으로 △구하와 한암의 관계 검토(이원석) △구하 독립운동의 자료, 개요와 성격(김광식) △구하의 문집과 통도사지 간행의 불교사적 의의(김순석) △6·25당시 통도사의 야전병원과 호국불교 역할(이성수)이 실렸다. 이어 한암 스님 관련 논문으로는 △한암의 통도사 인연과 석담유성(자현 스님) △한암중원의 조계종사 인식과 조계종의 회복(고영섭) △한암과 경봉의 서간문 법거량(윤창화) △한암·탄허·희찬의 어록 및 증언록 간행의 불교사적 의미(이성운) △경봉과 탄허의 인연과 서간문(정도 스님)이 실렸다.
월정사 교무 자현 스님이 머리말에서 밝혔듯 ‘어둠이 깊을수록 밝음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지는 법이고, 구하와 한암은 시대의 성자이자 부처님의 가피가 서린 진정한 선지식’이라 할 수 있다. 10명의 불교학자들이 두 선지식에 대한 삶과 사상을 면밀히 조명함으로써 본래 면목을 밝히고 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65호 / 2023년 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