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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천상의 책

목숨 걸고 국경 넘은 젊은 현장의 비밀스런 목적

기적적인 모험담이 회자되며 생전에 민간 전설 주인공 돼
출국 감행 이유인 유가사지론은 도솔천에서의 미륵 설법
평생 천상의 것에 이끌렸기에 마지막도 신화적이었을 것

인도로 향하고 있는 현장법사 모습.
인도로 향하고 있는 현장법사 모습.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 전(645년경) 중국의 한 스님이 서역에서의 길고 험난했던 구법 여행을 마치고 수많은 책들을 수레에 싣고 장안으로 돌아왔다. 그가 온갖 위험과 죽을 고비를 겪은 후 돌아온 그 땅에는 한때 자신의 재위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책을 불태워 버렸던 신비한 황제가 살았었고, 당시는 그 스님의 출국을 불허했던 임금이 지배력을 더 공고히 하고 있었다. 그런 사실들이 그의 귀환을 영웅 신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게 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모험담에 오락과 풍자적 요소 등을 첨가하여 누구나 아는 민간 전설을 만들어냈다. 즉 마술적 힘을 가진 원숭이, 미련하고 욕심 많은 돼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 하천의 요괴와 함께 위험한 지역들로 구법 여행을 떠난 삼장법사 현장 이야기. 사람들은 저마다 누군가에게 전해 듣고 자기가 이해한 것으로 전설을 만들어낸다. 나도 내가 알게 된 저 위대한 구법승의 숨겨진 비화로써 그 전설의 마지막 부분을 보태고 싶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나의 상상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옛 기록에 따르면, 629년 현장이라는 한 젊은 승려가 몰래 당(唐) 제국의 국경을 넘어 서역으로 향한다. 그 과정은 너무나 험난했다. ‘그는 인도로 가기 위해 궁정에 출국 허가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한다. 몰래 국경을 넘기로 계획하고, 서역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어떤 소용돌이치는 강 근처로 가서 기회를 엿본다. 사막의 다섯 봉우리에 설치된 봉화대의 감시망을 피해가며 서쪽 국경의 마지막 관문인 옥문관(玉門關)을 간신히 통과한다. 그는 깡마른 얼룩말의 본능에 자기 운명을 맡긴 채 단둘이 풀 한포기 없고 모래자갈만 뒹구는 막하연 사막을 며칠에 걸쳐 횡단한다. 도중에 길을 잃거나 갈증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가기도 하였지만 구사일생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하여 이오(伊吾)의 국경에 도착했을 때 마침내 중국 땅을 완전히 벗어나서 인도로 향했다.’ 그의 기적적인 사막 횡단에서는 영웅 신화의 주인공들이 겪는 죽음의 공포와 꿈속의 환영들이 자주 나타난다. 그의 모험담이 세상에 회자되고 각색되어, 그는 생전에 이미 민간 전설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현장이 어째서 그토록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했는지 궁금했다. ‘구법’이라는 말만으로는 충분히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후대에 자신의 신비한 전설을 남겼던 것처럼 애초부터 스스로 어떤 신화적인 것에 이끌려 인도로 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에 관한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있다. 그것은 어떤 비밀스런 책에 대한 것이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 책은 본래 천상에 보관되어 있던 것이다. 인도의 한 신통한 스님이 밤마다 도솔천 정토에서 미륵으로부터 설법을 듣고 나서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여 기록하였다. 그 기억의 산물은 각기 다른 제명의 책으로 만들어져, 유식(唯識)의 기초 교리서로서 지상에 유포되었다. 그 중 하나인 ‘유가사지론’의 완전한 판본을 구하기 위해 현장은 위험한 출국을 감행하였다. 귀국 후에 약간의 곡절을 거치고 나서 648년에 마침내 전권의 번역을 끝내고 중국 땅에 유포시켰다.

신화적 상징물이 대개 그런 것처럼, 저 천상의 책은 중국 땅에서 영광과 퇴락의 시절을 모두 겪었다. 한때 그것은 수많은 희유한 천재들을 현장 문하로 끌어들여, 그들로 하여금 오직 자신들만 견딜 수 있는 지루한 어휘들을 철학적 원칙에 따라 조합해놓은 긴 주석서들을 쏟아내게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문자의 위험성을 깨달은 선(禪)의 무리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모든 책과 형상을 파괴하던 시절을 거친 후에는 그것도 점차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 세월이 흘러 두 무리의 육체는 모두 지상을 떠났지만, 저 지루한 어휘들과 그것을 혐오하는 광기는 오늘날까지 영생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둘은 서로를 비밀리에 도와주는 그 책의 본질적 속성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금만 시간을 내어 그 책을 훑어본다면, 정토의 미륵은 세상 모든 것의 정확한 이름들을 상세하게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시 그것을 지워버리는 공(空)의 다양한 이름들도 함께 알려주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미륵은 그 책을 사라지게 할 목적으로 그것을 설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현장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저 천상의 책은 그에게 특별한 축복을 내려준 듯하다. 그는 어느 날 도랑을 건너다 미끄러져 정강이에 가벼운 상처를 입고는 그 길로 병석에 드러누웠다. 온갖 죽을 고비를 잘 넘겨왔던 그의 육체는 작은 불행에 굴복당한 채 지상에서의 60여년 간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경이로운 인물에 대한 불경한 풍자라고나 할까. 세상 사람들은 그를 마치 짐승의 얼굴을 한 골칫거리들과 함께 위험천만한 곳을 찾아다니는 어리숙한 스님처럼 묘사하면서도 종종 그의 얼굴에서 모든 일을 예견한 듯한 표정을 읽기도 한다. 나의 생각도 그와 비슷하다. 항상 미륵의 권속임을 자처했던 현장은 저 책을 설한 미륵의 비밀스런 목적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위대한 학자였음에도 제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주석서를 쓰지 않았다. 다만, 이번 생의 힘겨운 역경 소임을 다하고 임종하는 그날까지 항상 ‘미륵’의 이름을 염하였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664년 2월의 어느 날 밤에 그 곁을 지키던 한 제자가 “미륵의 궁전에 태어나기로 결정하셨습니까,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겁니까”라고 묻자 그는 “나는 꼭 거기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대답한 후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제 내가 그 영웅 전설의 마지막 한 장면을 추가해보겠다. 저 천상의 책이 전해준 어떤 교리에 따르면, 마지막 하나의 이름마저 놓아버릴 때 언어로서가 아닌 그 자체로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드러난다고 한다. 자기의 목숨이 다해가는 그날 밤, 그의 시야는 점점 조여오고 꿈의 구조는 갈수록 단순해지며, 평생 염하던 ‘미륵’이라는 이름마저 혀끝에서 덧없이 사라져버린 마지막 순간에 현장은 무엇을 보았을까. 그에게 늘 가까이 있었던 어떤 것, 가령 자기를 내려다보는 한 제자의 주름진 얼굴, 혹은 방 한구석 어둠 속에서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빛바랜 책이었을까. 그런데 나는 왠지 이런 확신이 든다. 

‘그는 한평생 천상의 것에 이끌렸던 사람이니 그의 마지막 꿈도 신화적인 것이리라. 그는 미륵의 도솔천 궁전에 태어나서 그곳에 속한 찬란한 빛깔과 모양을 보고, 또 언제 어디선가 들었던 듯한 반가운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래 전에 목숨 걸고 국경을 넘었던 젊은 현장의 비밀스런 목적이고, 또 저 천상의 책이 생의 마지막에 그에게 내려준 축복일 것이다.

백진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dharmapala@hanmail.net

[1667호 / 2023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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