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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불법의 고구려 전래

기자명 이현숙

외국서 온 스님들이 낯선 땅서 포교하는 비법은

가까운 곳에 적 있을 때 먼 나라와 우호 관계 맺는 게 외교 책략 
고구려-중국 교류 활발하던 4세기…전쟁으로 민간에 역병 유행
중국서 온 스님들 질병 치료와 신이한 능력 과시하며 교세 확장

숙소 앞 성 마리아 성당.
숙소 앞 성 마리아 성당.
독일 본 올드시티의 삼보도량.
독일 본 올드시티의 삼보도량.

새해 들어 옛 서독의 수도였던 본(Bon)의 올드 시티에서 지내고 있다. 성 마리아 성당 근처 100년이 넘은 아파트 4층을 숙소로 빌렸는데, 거실 창문 바로 앞 성당에서는 아침 8시부터 시작해서 매 시간마다 종을 울린다. 특히 낮12시와 일요일 미사 시간엔 5분 이상 종을 치는데, 뮌스터 대성당 종소리와 어우러져 빨리 성당으로 오라고 재촉하는 느낌을 준다. 기독교 신자가 점점 줄어드는 유럽에서 이곳 본은 50% 가까운 사람이 성당을 다닌다고 하니, 열심히 종을 치는 보람이 있을 듯하다. 

불교가 국교 역할을 하던 통일신라와 고려는 황룡사·분황사처럼 사찰 대부분 민가 속에 있었다. 성마리아 성당 종소리로 시간을 알게 되는 것처럼 천년 전 한반도에선 동네 중심지에 자리 잡은 사찰 종소리에 맞춰 일상 생활을 영위했을 것이다. 조선 왕조 억불정책으로 500여년 동안 탄압을 받아 도심 사찰은 대부분 향교나 서원 등 유교기관으로 변하거나 새로운 권력자들에게 탈취 당했다. 

천년이상 지속됐던 한국 역사 속 불교전통은 산중 사찰 위주로 변해 유럽 기독교 문화처럼 일상에서 이어지지 못했다. 고려 불교가 막강한 종교 권력을 휘두를 때 자행했던 수많은 과오는 중세 유럽 기독교가 저지른 만행과 비교할 때 더 심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럽은 21세기에도 기독교적 전통을 간직하고 있어 나의 숙소 앞 성 마리아 성당은 시간마다 종을 칠 수 있지만 고려까지 사람들에게 범종을 울리면서 시각을 알리던 한반도 내 수많은 시중(市中) 사찰은 사라져 버렸다.         

숙소 근처에 삼보도량(三寶道場)이라고 한자 간판을 크게 내 건 곳이 있어 살펴보니 요가·명상·선(禪)·불교라고 쇼윈도우에 새겨둬 요가 및 참선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보였다. 삼보 도량의 일본식 발음인 산보 도조(SANBO DOJO)를 조그맣게 병기해놓아 일본식 불교를 바탕으로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6세기 백제에서 전파됐던 일본 불교가 오랜 기독교 문화를 가지고 있는 머나먼 독일까지 와 건강을 매개로 상업적으로 변모한 것이다. 

최근 한국 불교계 역시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 포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서, 한국불교식 선원을 몇 군데 운영하고 있다. 독일은 일찍이 쇼펜하우어가 불교 영향을 많이 받은 이래로 1903년 독일 최초의 불교 단체가 라이프치히에 생겼는데, 독일 불교 연합(Deutsche Buddhistische Union)을 설명한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현재 약 23만4000명이 불교 신자로 등록됐다고 한다. 수천년 세월을 두고 서쪽 인도에서 동아시아로 전파됐던 불교가 이제 역으로 동쪽 아시아에서 서쪽 유럽으로 전파되고 있다. 

건강한 삶은 시대·이념·인종·관습을 넘어서는 인간 공통 관심사다. 낯선 종교를 포교할 때 질병·건강을 매개로 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인 것을 불교와 기독교의 전파과정에서 볼 수 있다. 인도와 중국에서 온 불교 승려들이 한반도에 불법을 전파하려고 애썼을 때도 심신의 건강을 매개로 대중들에게 다가서는 경우가 많았다. 

‘삼국사기’ 권18 소수림왕 2년 조에 따르면 372년 중국 북쪽의 전진 부견이 사신단과 함께 고구려에 승려 순도를 파견하여 불상·불경을 전했다. 374년에는 동진에서 아도를 파견해 중국 남북 왕조 모두 고구려에 불법을 전했다. 이에 소수림왕은 순도에게 초문사를, 아도에게는 이불란사를 지어 주었다고 한다. 고구려가 남북 두 왕조에서 온 승려를 위해 각각 사찰을 건립할 수 밖에 없었던 연유가 있다. 당시 중국은 5호16국이 연립했던 북부와 낙양에서 건업(현재 남경)으로 피난 온 한족의 동진이 지배하던 남부로 나뉘어 일종의 체제 경쟁을 하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적이 있으면 먼 나라와는 친교를 맺어 배후를 든든히 해두는 것이 고대부터 내려온 외교 책략인지라 두 나라 모두 고구려와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했던 것이다. 고구려는 공식 외교루트로 승려들을 받아들였으며, 이를 위해 국가에서 직접 사찰을 건립해준 것이다.

인도에서 불법을 전파하고자 수많은 외국인 승려가 중국에 왔는데 ‘고승전’엔 이들이 질병 치료와 신이한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교세 확장하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북방에서 온 호족 왕조는 한족 전통사상인 유학보다 평등․자비의 불교를 통치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즉 양자 간 이해가 일치해 북조가 불법에 더 적극적이었다. 동진 장군 환온(312~373)은 잃어버린 낙양을 되찾기 위해 354~359년 세 차례나 북벌을 단행해 전연과 전쟁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염병도 오기 마련인지라 이때 역병이 발생해 죽은이가 10명 중 4~5명이었다고 한다. 전진 왕 부견(337~385) 역시 북조를 통일하고자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다. 370년 전연을 공격해 멸망시켰으며 373년 동진 양주(산서성 남부)와 익주(사천성)를 점령했고 376년 전량과 선비족 대(代) 등을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했다. 중국이 남북으로 서로 체제 경쟁 및 전쟁을 하며 고구려와 친교를 위해 사신단과 불법을 전한 것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377년 음력 10월 눈이 오지 않고 번개가 치더니 민간에 역병이 돌았다고 한다. 고구려 사람들은 하늘이 노해 번개나 천둥이 친 다음 역병이 유행했다고 생각했는지 항상 천둥 번개가 친 다음 역병이 유행했다는 식으로 기록을 남겼다. 눈조차 오지 않는 건조한 겨울 날씨가 지속됐는데 마른 하늘에 번개가 친 다음 역병이 돌았다는 것이다. 전진과 동진에서 대규모 사절단이 온 지 3~4년 만의 일이었다. 

불교사찰 건립에 경험이 없던 고구려가 양 사찰을 한꺼번에 완공했는데 중국에서 온 기술자들 역할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6세기 백제가 일본에 불법을 전파하던 과정을 보아도 알 수 있다. 538년 백제 성왕이 싯달타 태자상·관불기·‘불설기서권’ 등을 보내 왜(倭)에 불법을 전파했으며, 577년 위덕왕은 율사·선사·비구니·주금사뿐 아니라 조불공·조와공까지 보내 제대로 된 사찰을 건립하도록 했다. 즉 전진의 왕 부견과 동진은 고구려에 불법을 전파할 때 승려만 파견한 것이 아니라 사찰을 건립할 기술자도 파견했을 것이다. 서로 전쟁과 체제 경쟁을 벌이던 전진과 동진은 고구려에 각자 사찰을 건립해 자신들의 외교적 입지를 보다 든든히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는 고구려와 전진 및 동진과의 지속적 대외교류와 인적교류를 의미한다.   

고구려가 중국과 교류가 활발하던 4세기 당시 중국엔 역병이 만연했다. 낙양을 수도로 하던 중원을 이민족에게 내어주고 317년 남쪽 양자강 유역으로 이동하였던 동진의 경우 429년 멸망 전까지 112년 사이 11회나 역병이 발생한 것인데, 동진은 남쪽으로 천도한 이래 역병에 시달리다 사라져간 왕조였던 것이다. 전진의 경우도 전쟁을 끊임없이 지속하였기에 역병이 유행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377년 고구려 역병의 배경이었다. 불법의 전파와 역병이 함께 고구려에 온 것이다.      

이현숙 한국생태환경사연구소장 rio234@naver.com

[1667호 / 2023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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