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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독송 수행 장국화(42)-상

기자명 법보

편 갈라 남에게 상처주기 싫어 
자신 존재 이유 끊임없이 고민
혜민 스님의 자비심 본받고자
경전 독송·명상하며 본성 탐구

“너는 누구니. 너는 우리 편이 아니잖아.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네가 누구인지 어디 가서 말하면 다칠거야. 여기에 끼지 말고 저쪽으로 가. ”

살아오는 동안 삶을 사로잡은 건 세상이 떠들고 있는 화려함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었다. 세상이 나에게 던진 비난·오해·미움·분노·몰이해와 무관심·냉소적인 반응들은 내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평생 풀어야 할 화두를 안겼다. 존재 자체를 존중하며 보호와 도움을 준 감사한 분들도 많았지만, 괴로울 때마다 화두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국적, 종교, 이념 등 그들이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단절, 멸시, 미움과 분노의 대상이 될 때 외로움과 불안·두려움·미움과 분노가 올라왔다. 내가 좀더 편히 살려면 그들과 한 편을 먹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편을 갈라 싸우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느 한 편에 선다는 것은 나와 다른 편을 향한 분열과 싸움, 단절과 증오가 정당화될 수 있고 그것이 정당화될 때 험악한 일도 정의가 될 수 있음을 보게 되었다. 어느 편에도 온전히 서기 어려웠다. 내가 받은 상처를 또다른 누군가에게 물려주는 행동을 막고 싶었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이 끊임없이 던졌던 이 질문은 언제부턴가 내가 살기위해 반드시 풀어내야할 족쇄가 됐다. 

특히 가장 큰 괴로움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상적인 ‘나'를 이루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분노였다. 자신과 세상을 미워하다보니 몸과 마음도 병들어 가며 살아갈 의욕이 점점 사라졌다. 다 내려놓고 싶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던 건 사랑을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내야만 했다. 괴로운 질문을 또다시 마주하기로 했다.

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무엇인가.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서로의 생각과 이념이 다름에도 싸우기보다 화목하게 사는 길은 없을까.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도 답이 보이지 않아 망연자실하고 있던 그때, 친구가 SNS에 올린 책 속의 글귀들에서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저자는 혜민 스님이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는데, 중국에 있던 친구가 먼저 읽고 SNS에 올린 것이다. 그때부터 혜민 스님의 저서를 찾아 읽고 강연을 찾아 들었다. 유튜브 법문, BTN 울림 라디오 ‘마음의 선율 혜민입니다’도 꾸준히 듣게 됐다. 

아무리 괴롭고 막막해도 종교에 대한 고정관념과 불신이 컸기에 사찰이나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혜민 스님의 말씀들은 종교적 언어가 아닌 일반대중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받아들이기 편했다. 타종교를 존중하며 겸손하게 경청하고 친숙한 언어로 대중에게 다가오는 스님의 모습은 편안하고 유쾌하며 존경스러웠다. 오랫동안 괴로웠던 마음이 차츰차츰 평온해지고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스님의 온화하며 넓고 자비로운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게 불교에 입문해 스님께서 안내하는 ‘법화경’을 따라 읽으며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공부했다. ‘법화경’은 태어나 처음 읽는 경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였기에 스님의 법문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특히 돌로 만든 상에 왜 엎드려 절하는지 이해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법화경’ 독송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님께서 살아가며 겪는 번뇌와 괴로움들을 풀어갈 수 있는 지혜와 마음가짐, 실천 덕목들을 이해하기 쉽게 해설해 주셨기 때문이다. 미움과 분노로 편안할 날이 없었던 마음이 점점 평온해졌고 내가 원했던 평화롭고 화목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였다. 

스님께서 안내하는 코끼리앱 명상도 꾸준히 하게 됐다. 명상으로 괴로움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궁금했다. 여러 명상·심리 수업을 들어보며 다루기 쉬운 감정부터 어려운 감정까지 난이도를 높여가며 셀프 케어를 해나갔다. 스님의 법화경 법문에 의지해 집에서 독송하거나 출퇴근 길에 법문을 듣고 매일 10분씩 300일 가까이 명상했다. 그 결과 ‘알아차림’이라는 마음이 내가 의지할만한 안식처이자 안전지대임을, 모든 생명들을 살릴 수 있는 보물임을 알게 됐다. 각자 따로 존재하는 대상들은 없었다.

[1667호 / 2023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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