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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중국선의 일심(一心) 흐름과 법맥-마조선의 사상적 배경②

기자명 정운 스님

전심·법맥은 대승 승가의 구심점

부처님이 가섭에게 전한 
‘삼천전심’이 법맥의 시초
선사로부터 이어진 ‘마음’
표현 다를 뿐 근본은 ‘일심’

선에서는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하는 법맥이 전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시발점으로 우리나라 진제 스님에 이르기까지 법에서 법으로 전승되고 있다. 법맥의 초두는 삼처전심이다. 삼처전심이란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세 곳에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을 전했다[以心傳心]는 뜻이다. 실은 이런 ‘삼처전심’이나 ‘법맥’ 사상은 중국선에서 정립된 것이다[➙송대에 발달]. 20여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초기 불교학이 발달하고, 위빠사나 수행자들이 많아지면서 법맥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이런 사고는 절대 금물이라고 본다. 전심(傳心)과 법맥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대승불교 승가의 구심점이요, 자존심이다. 

그렇다면 이 법맥에서 무슨 법을 서로 전했다는 것인가? 스승에서 제자로의 전함이란 바로 일심(一心)이다. 곧 선은 일심을 강조하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에 들었을 때도 마음의 개오(開悟)이다. 이후 가섭∼아난…28대가 초조 달마에 이르기까지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이 전승되고 있다[달마는 서천 28조이면서 동토 초조(初祖)]. 

달마가 2조 혜가에게 4권 ‘능가경’을 주었는데, ‘능가경’ 종지는 ‘부처님의 말과 마음을 종지로 삼는다[佛語心爲宗].’ 어느 날 달마에게 한 40세의 승려가 찾아왔다[혜가는 원래 출가자였음]. 혜가(487∼593)는 달마에게 물었다. 

“스님, 저의 마음이 너무 편안치 못합니다. 스승님께서 편안케 해 주십시오.”
“그대의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그러면 너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리라.”
 “마음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해 마쳤느니라.”

이를 ‘안심법문(安心法門)’이라고 한다. 혜가는 달마 문하에서 깨닫고, 달마의 법을 받아 ‘2조’라고 하였다. 그러면 안심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마음 편하다는 뜻이 아니라 해탈의 최상 경지를 말한다. 곧 번뇌를 끌어안고 있는 즉하(卽下)의 자리, 본래 깨달아져 있는 그 본각(本覺) 자리를 말한다. ‘유마경’으로 해석하면,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고 하는데, 곧 깨달음의 근원도 번뇌가 일어난 자리요, 열반도 생사의 자리에 있음을 말한다. 

2조 혜가 앞에 한 병자가 찾아왔다. 바로 3조인 승찬(?∼606)인데, 그는 한센병 환자였다. 

“저는 오래전부터 풍병을 앓고 있습니다. 무슨 죄가 많은지 스님께서 참제해 주십시오.”
“죄를 가지고 오너라. 그러면 없애 주리라.”
“죄라는 것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너의 죄는 벌써 없어졌다. 앞으로 불법승 삼보에 의지하라.”

혜가는 승찬에게 의발을 전하고, 두타행으로 자유롭게 지냈다. 세월이 한참 흘러 3조 승찬 앞에 4조 도신(580∼651)이 찾아왔다. 도신은 14세였는데, 스승에게 물었다.

“스님의 자비로서 해탈법문을 하나 주십시오.”
“누가 그대를 해탈하지 못하도록 묶어 두는가?”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묶은 사람도 없는데, 무엇을 벗어나려고 한단 말이냐?”  

묶은 번뇌도 없으니, 번뇌를 제거하고 얻어야 할 해탈도 없다. 곧 본각 자리에 입각해 있는 돈오 상태인데 굳이 없애야 할 번뇌가 있을 리가 없다. 

이와 같이 살펴본 대로 달마는 안심으로, 승찬은 신심으로, 동산법문에서는 수심(守心)으로, 혜능에게서는 자성(自性)으로, 그리고 마조(馬祖, 709∼788)에 와서는 평상심(平常心)과 즉심(卽心)으로 나타났다. 황벽[마조의 손자]에게서는 무심(無心)으로, 위산[마조의 손자]에게는 여여불(如如佛)로, 임제[마조의 증손자]에게서는 무위진인(無位眞人)으로 각각 나타났다. 

우리나라 고려 때, 보조지눌에게서는 진심(眞心)으로 표현되고 있다. 금덩어리로 반지·목걸이·팔찌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 듯 부처님으로부터 시작해 선사들마다 각각 ‘마음’에 대한 표현이 다를 뿐, 모두 근본인 일심을 말하고 있다.

정운 스님 동국대 강사 saribull@hanmail.net

[1668호 / 2023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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