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상사 회주 도법 스님

조금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사유하면 행복의 길이 보입니다

무명‧미혹의 사고방식이 공동체 외면하고 개인 앞세우게 해
사유 깊어지면 무명 벗어나 참되게 알고 삶의 힘 갖추게 돼
일상 속 관찰‧사유가 나와 공동체 함께 빛나게 하는 지름길

도법 스님은 “나도 빛나고 너도 빛나는 길이 바로 깨달음의 길이며, 이러한 길을 갔을 때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법 스님은 “나도 빛나고 너도 빛나는 길이 바로 깨달음의 길이며, 이러한 길을 갔을 때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싯다르타라는 한 사람이 부처가 됨으로써 비로소 불교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경험도 그렇고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과정들을 보면 항상 복잡하고 어려워서 허덕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조금 더 단순하고 명료하게,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조금만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화두처럼 붙잡고 있습니다. ‘21세기 발보리심경’도 그런 문제의식으로 만들어진 내용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좋도록 해 보려 애쓴 결과물입니다. 

오늘은 ‘21세기 발보리심경’의 6페이지에 있는 “개인만 앞세우고 공동체를 뒤로 하는 미혹 문명 내려놓고 공동체도 빛나고 개인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 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라는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개인만 앞세우고 공동체를 뒤로 하는 미혹 문명’, 이것은 개인의 이익만 앞세우고 공동체를 뒤로하여 사심만 채우려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두루두루 함께 할 부분도 있는데, 그 두루두루 함께 하는 것은 제쳐놓고 내 이익만 챙기려고 합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을 무명의 사고방식, 미혹의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사회 곳곳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국회에서는 아주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불교적으로 보면 무명이며, 무명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미혹의 사고방식으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무명과 미혹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이겠습니까. 불교에서는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말합니다. 깨달음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우리말로 더 쉽게 바꾸면 ‘참되게 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개인만 앞세우고 공동체를 제쳐 놓는 미혹과 무명의 사고방식에 대한 처방은 무엇일까요. 공동체도 빛나고 개인도 빛나는 길, 나도 빛나고 너도 빛나는 길이 바로 깨달음의 길이며, 이러한 길을 갔을 때 우리 삶은 행복하게 됩니다. 

미혹, 무명을 말하다보면 대부분 우리가 죄를 많이 지었다는 논리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전생에서부터 너무나 많은 죄를 지어 현생에 사는 것이 고달프다고 합니다. 전생 죄업과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 중 3조 승찬 스님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이분은 문둥병 환자입니다. 예전에는 이 병을 하늘이 내린 벌, 천형(天刑)이라고 그랬습니다. 이 분이 혜가 스님을 찾아가 죄를 소멸하여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러자 혜가 스님이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 죄업의 덩어리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승찬 스님은 아무리 찾아봐도 그 죄업의 덩어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혜가 스님에게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고 하자, 혜가 스님이 ‘본래 없는 것이기에 못 찾을 뿐’이라고 정리를 해 주십니다. 그 말을 듣고 승찬 스님은 바로 깨닫습니다. 그렇게 해서 혜가 스님의 법을 전해 받고 중국 선종의 3조가 됩니다.

우리가 불교 수행을 말할 때 선방에서 참선하는 것, 법당에서 염불하는 것, 절하는 것, 기도하는 것 등을 떠올리게 되는데, 수행의 기본은 팔정도입니다. 이 팔정도를 더 단순하게 범주화시킨 것을 계‧정‧혜 삼학이라고 합니다. 이런 내용들은 대승불교로 오면서 육바라밀로 표현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말하는 수행은 육바라밀 중 하나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누구에겐가 들은 대로 혹은 책에서 본대로 ‘나는 미혹에 빠진 중생’이라고 생각해서 무작정 참선하고 염불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혜가 스님이 죄를 찾아오라 했을 때 승찬 스님이 그 죄를 찾기 위해 하나하나 찾아보며 따져봤듯이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잘못 알고 있고 잘못 생각하고 있고 잘못 믿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반야심경’에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라고 합니다. 경전 말씀, 스님 말씀, 누군가의 이야기라도 그냥 듣고 믿지 말고 꼼꼼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이것도 부처님께서 당부하신 일입니다. 스스로 따져봐서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될 때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불교 수행을 하고 활동을 하고 있는데, 기왕에 할 것이라면 그런 부분을 조금 더 차분하고 세밀하게 생각해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노력이 좋은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불교 활동을 하고 일상을 살아가는데 참고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지난 밤 실상사 목탑지 어름을 걷는데 달이 청청하고 밝았습니다. 고요하고 바람도 잔잔한 것이 해인삼매의 장면 같았습니다. 밝은 달과 고요함, 그 어떤 움직임도 없고 소란스러움도 혼탁함도 없이 고요하고 잔잔하여 사물 하나하나가 빛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하나가 빛나면서 서로가 너무나 잘 어우러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마을은 마을대로 아름답고, 나무는 나무대로, 산은 산대로, 마당은 마당대로, 법당은 법당대로, 탑은 탑대로 빛나면서도 잘 어우러져 어느 하나 소외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전에서 말하는 해인삼매가 떠올랐던 것입니다. 해인삼매는 바닷물에 모든 사물이 골고루 깊이 투영되는 듯한 마음의 고요함을 말합니다. 물도 빛나고 달도 빛나고 그림자도 빛나는 그 모습이 마치 그런 해인삼매의 모습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저도 쓸데없는 번뇌 망상들이 잔잔해졌습니다. 고요하고 또 맑고 깨끗한 그런 상태처럼 저 자신도 시시비비와 근심 걱정 없이 평온해진 것입니다. 저 역시 처음 겪은 경험이었는데,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깨닫는다, 삼매의 경지에 들어간다, 해탈한다, 열반의 경지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장면이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깨달음, 열반, 삼매, 해탈이 우리가 보통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무엇이라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누구나 조금 주의 깊게 관찰하고 사유하면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 그 장면의 한복판에 있던 도법과, 그 장면에 서지 않은 다른 때의 도법이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상황을 대면했던 것뿐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을 ‘반야심경’에서 ‘조견’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조견’을 팔정도에서는 정견‧정사유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고 말입니다. 

부처님이 성도할 때 모습과 ‘반야심경’의 수행론으로 제시하고 있는 ‘조견’이라는 것이 사실 같은 내용입니다. 부처님은 선정 수행을 하다가 버리고, 고행 수행을 하다가 버리고 결국 자기 방식으로 합니다. 그렇게 자기 방식으로 하는 것이 ‘반야심경’의 ‘조견 오온개공’입니다. 다만 ‘반야심경’에서는 ‘오온’이라고 하는 자기 자신을 잘 관찰하고 사유해보니 ‘공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그 오온으로 이루어진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사유해보니 연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니까 ‘반야심경’의 깨달음 수행론과 부처님이 성도할 때의 깨달음 수행론은 같은 내용입니다. 우리는 불교에 대한 깨달음을 많이 강조하는데,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도 보통 사람들이 조금 더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사유하면 우리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불교를 대해서 현실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오늘은 불교적 깨달음이 무엇이고, 이것을 얻어 일상에서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은 걱정거리가 참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후위기’ ‘사회양극화’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정치인들의 정쟁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런 것들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상황인데, 이런 때일수록 불안과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 힘을 얻으려면 오늘 말씀드린 대로 깨달음의 사유방식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깨달음의 사유방식이 나의 일상적인 사고방식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탐구하고 모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잘 관찰하고 사유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분들이 생활 속에서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일례로 누군가가 어떤 사람을 놓고 사기꾼이라고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런 경우 그 말만 듣고 그렇구나 하지 말고, 사실을 꼼꼼하게 짚어보라는 것입니다. 실제 사기꾼이나 안 좋은 사람이 아닌데, 누군가의 말만 들어 믿고 어떤 사람을 사기꾼 취급하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이 억울한 것은 당연하고, 나 역시 한심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나의 소홀함이 누군가를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지점들을 생각하면서 일상이 공부와 수행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올 한해는 함께 마음을 내고 다짐했던 내용들이 삶 속에서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정리=신용훈 기자 boori13@beopbo.com

이 법문은 실상사 회주 도법 스님이 1월8일 전북포교사단 신년하례법회에서 설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1668호 / 2023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