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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법 모르는 사람은 생사의 밤길이 길고도 멉니다”

  • 무진등
  • 입력 2023.02.17 19:28
  • 수정 2023.03.02 11:41
  • 호수 1669
  • 댓글 0

정은용 동산반야회·동산불교대학 이사장

주변 도움 덕에 졸업한 채소팔이 소년, 덕 갚고자 봉사활동 전념
아내 권유로 불교 접하고 본인 마음속 중생부터 건져야함 배워
40년 재가불자 양성 동산반야회, 법인 설립으로 재도약 추진

정은용 동산반야회·동산불교대학 이사장은 “중생을 다 건지려면 우선 가르침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바르게 알지 못하면 역효과를 낸다. 불교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은용 동산반야회·동산불교대학 이사장은 “중생을 다 건지려면 우선 가르침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바르게 알지 못하면 역효과를 낸다. 불교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은은한 향내 가득한 서울 조계사 인근. 부처님을 친견하려는 발걸음으로 닳고 닳은 골목길 뒤로 진한 초록색 간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동산반야회 동산불교대학. 1982년 무진장 스님을 법주로 출범해 염불·참선 수행프로그램과 기본 교리 강의 등을 펼쳐오며 40여년간 포교사 1000여명을 배출한 교계 대표 불교교육전당이다. 코로나19라는 한파를 맞아 잠시 움츠렸던 동산반야회가 봄기운에 기지개를 펼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날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또 꾸준히 절을 찾는 불자는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 부모님이 불자여서 불교가 친근하다고 말하거나, 가까운 인연으로 절에 다닌다고 하지만, 불교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배우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정은용(75) 제5대 동산반야회·동산불교대학 이사장은 불교가 처한 현실에 고민이 깊다. 불자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까지 겹쳐 불교 교육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 그렇기에 정 이사장은 “불교가 중흥하기 위해서는 부처님 가르침을 함께 공부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홍서원에서 첫 번째가 ‘중생을 다 건지는 일’인데, 그럴려면 우선 가르침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바르게 알지 못하면 역효과를 냅니다. 불교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절실합니다. 불교를 정확히 아는 순간 삶이 뒤바뀝니다.”

“올바르게 돕는 법을 알아야 나와 남이 궁극적으로 행복해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에게 굳센 신념이 새겨진 건 거친 풍랑을 정면으로 받아낸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고양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성장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등록금을 내기 힘든 집안 사정을 알고 힘을 보태고자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새벽 일찍 동대문시장을 찾아 밭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가득 늘어놓고 장사를 시작했다.

공부하고 뛰어놀아야 할 소년이 아침부터 시장바닥에서 흥정하고 있으니 어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한 명 두 명 단골이 늘어나더니 사연이 알려지자 빠르게 완판됐다. 학교 오전수업을 빼먹지 말라는 어른들의 배려였다. 그러나 학교에 지각하기 일쑤였고, 결국 담임 선생님도 내막을 알게 됐다. 우등생이었던 그를 기특하게 여긴 선생님이 출석을 배려해준 덕분에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형편이 나아지면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다짐도 그 무렵 가슴에 새겨졌다.

대학에 진학해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한양대 경영학과,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고려대 언론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용산전자상가에서 일하며 상점가 조합 감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감정평가사·세무사 자격도 취득하며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들었다. 직장에서 아내를 만났고, 아들 둘도 낳았다.

정은용 이사장의 불교대학 강의.
정은용 이사장의 불교대학 강의.

“행복한 가정과 고정수입이 생겼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다짐을 실천할 때였지요. 저처럼 어려운 생활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복지·봉사 네트워크가 없어 봉사활동 단체를 찾기 막막했어요. 직접 복지관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생필품과 식자재를 들고 지역 복지관과 소외된 가정들을 찾아갔다. 비닐로 지은 천막에 화장실이 따로 없던 집도 있었다. 마주한 불우이웃들은 경계심이 극에 달해있었다. 며칠을 직접 청소와 빨래를 해주고, 함께 식사하며 말동무가 되고 나서야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이들의 곤궁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비롯해 가족관계, 질병, 신체적 장애 등 각기 처한 상황도 달랐다.

홀로 이웃을 돕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시간도 부족했고 재정적 어려움도 컸다. 그럼에도 직장에서 맺은 인연들에게 여러모로 부족한 사정을 알리고 지역 로타리클럽을 찾아가 투자를 약속받는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7년을 봉사하다 도반들을 모아 봉사단체 ‘다함께 사는 세상 나눔의 모임’을 결성했다.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지역 보육원·청소년 쌀 배달이었다. 구청들을 찾아가 어려운 환경에 있는 청소년 명단을 받았다. 도심부터 지도에도 없는 달동네까지, 일일이 직접 찾아가 집안 형편을 파악하고 쌀을 전달했다. 조손가정 청소년들을 후원하고 회사에 취직시켜주기도 했다.

그의 불교 인연은 우연히 찾아왔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의견대립이 잦았다. 이웃의 청소년들과 소통은 문제없었지만 정작 자신의 자식과는 소통이 쉽지 않았다. 조언을 전혀 듣지 않는 태도가 화를 돋웠고, 갈등이 커질 때마다 고통의 그림자가 짙어졌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몸과 마음에 스트레스가 쌓인 것이다. 안타깝게 여긴 아내가 그를 은평구 불광사로 인도했다.

“불광사에서 한 노스님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제게 ‘세상에 널려있는 잡초도 다 나름대로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세상만사 집착 말라’는 제법실상(諸法實相)과 무상(無相) 가르침을 일러주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지요. 자식에 대한 집착이 저를 가두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됐습니다.”

그 인연으로 마음이 혼란해질 때마다 사찰을 찾았다. 스님들과 대화를 나누면 몸과 마음이 편안했다. 또 마음챙김 명상을 공부하며 스스로를 성찰했다. 그럴수록 불교에 깊이 빠져들었다. 불교공부를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발심한 것도 이 무렵이다.

“불교공부를 하려면 동산불교대학에 들어가라”는 불자들의 추천에 망설이지 않고 입학했다. 기본교리교육을 비롯해 매일 염불정진에 참여하고 건봉사, 불국사, 은해사, 통도사, 표충사, 화엄사, 마곡사 등 성지순례까지 빠짐없이 함께하며 정진을 거듭했다. 당시 이사장이던 김재일 법사의 추천으로 서울 정릉의 한 암자에 들어가 100일간 두문불출하고 정진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매일 아침저녁 참선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2007년 졸업한 뒤 수행에 목말라하는 불자들과 수행센터 ‘정법빠리사’를 개설하는 등 어디든 선지식이 있는 곳이면 도반들과 의기투합해 찾아갔다. 정 이사장은 “무상한 세월 속에서 형형한 눈빛으로 맞이해주던 선사들을 세월이 흘러 이제는 볼 수 없다”며 “그때 만난 스님들은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고독하고 홀로 견뎌야 하는 치열한 과정이라는 것을 몸소 가르쳐 주셨다”고 말했다.

동산반야회 회원들은 1998년 만일염불회를 입재하고 매달 불국사 등 사찰을 찾아 염불법회를 열고 있다.
동산반야회 회원들은 1998년 만일염불회를 입재하고 매달 불국사 등 사찰을 찾아 염불법회를 열고 있다.

동산반야회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은 2020년 12월 이사장에 취임할 수 있도록 한 배경이 됐다. 이사장에 취임하던 날 그는 동산반야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는 원력을 세웠다. 그러나 동산불교대학은 코로나19로 강좌를 전면 중단하는 위기에 처해있었다. 한낱 전염병에 불보살의 40년 원력을 잃어버릴 수 없었다. 회원들에게 호소해 동산반야회 중흥을 위한 ‘동산보살108회원’을 모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회원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동산반야회 법인화’ 추진으로 이어졌고 올해 2월초 서울시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동산반야회는 3월부터 사단법인 동산반야회·동산불교대학으로 재도약한다.

동산반야회는 올해 생활 속 실천적 불교운동 전개, 불자 기본교육 강화, 기본 실천 수행관 명확화, 불교 역사 문화 강의 등에 주력한다. 특히 정 이사장은 “언제 어디서나 매일 명상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주변 곳곳이 명상처다. 언제든 쉬어갈 수 있는 산과 공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동산반야회는 매월 2째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인왕산, 안산, 창경궁, 평창공원 등 인근 숲길에 모여 숲 해설가와 함께 명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1998년 입재해 매년 하절기에 불국사, 통도사 등에서 이어온 2박3일 만일염불수행모임을 3년 만에 재개한다.

“중생을 건지기 위해선 스스로의 마음속에 있는 중생부터 건져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남을 어떻게 돕겠습니까. 부처님은 ‘바른 법을 모르는 사람은 생사의 밤길이 길고 멀다’고 했습니다. 본인의 마음을 닦고, 기본 교리를 배워 스스로를 완성시켜야 합니다. 이제 동산불교대학이 돕겠습니다.”

세상의 한복판에서 보살의 길을 걷고 있는 정 이사장. 그는 부처님 가르침을 온 세상에 전하겠다는 원력을 실천하기 위해 그 옛날 유마거사처럼 묵묵히 나아가고 있다.

고민규 기자 mingg@beopbo.com

[1669호 / 2023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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