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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는 제자리로 찾아와야

  • 법보시론
  • 입력 2023.02.20 13:09
  • 수정 2023.02.20 16:53
  • 호수 1669
  • 댓글 0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에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 유물 또는 고대 그리이스 유적 잔해가 전시되어 있다. 모두가 식민지 시대 야만적인 노략질로 가져온 침략의 흔적이다. 문화재에는 만든 사람들의 정신과 문화가 담겨있다. 그 문화재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야만적 방법으로 절취․수탈해 이를 호화스런 박물관에 전시해 놓은들, 약탈당한 민족의 후손들과 제3자가 이를 어떻게 느낄까. 빼앗은 문화재를 마치 처음부터 문명국가였던 것처럼 버젓이 전시하는 것은 야만성과 비문화성을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다행히 최근 들어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서 약탈 문화재를 반환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일본 관음사 소유라는 대전지방법원 판단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우리의 문화 주체성을 망각한 법기술자의 만용으로 보인다. 일본 관음사가 양수경위를 밝히지 못했음에도, ’관음보살상을 양수하여 소유권을 취득하였다‘거나 ’취득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판단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일본 관음사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법리상 커다란 문제가 있다.

항소심은 서주 부석사가 677년 창건된 사실, 고려 말 서주지역이 현재의 서산지역으로 변경된 사실, 1330년 서주 부석사에서 위 금동보살상이 조성된 사실을 인정하고도,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가 서산 부석사와 동일한 사찰이라고 볼 증거가 부족하고, 조선시대 왜구의 침략으로 서주 부석사가 소멸하였을 가능성에 비추어 ‘서산 부석사는 고려 서주 부석사가 조성한 금동보살좌상의 소유권자로 볼 수 없다’고 단정한 것도 문제거니와 위 보살상이 일본으로 이전된 경위에 관하여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자기 1526년 일본 관음사에 봉안된 사실만을 근거로 일본 관음사의 소유로 인정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관한 재판부의 무리한 판단이다.

우리나라 ‘부석사’는 영주와 서산 두 군데밖에 없다. 모두 통일신라 의상대사(義相), 625∼702)가 창건한 사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동여비고’(1682), ‘충청도지도’(1871), ‘조선총독부 관보’의 서산 지역에 ‘부석사’가 기록된 1932년 사료에 비추어 보면, 서주 부석사는 의상대사의 화엄사상을 이은 서산 부석사가 맞다. 고려 수도가 개경이었고 왕씨 정권이었다가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도읍지를 서울로 바꾸어도 우리나라 거대한 흐름에서 고려와 조선을 동일하게 여기는 이유와 같다. 서산 부석사도 마찬가지다. ‘부석사’는 영주와 서산 모두 의상대사가 창건한 역사적 동일성이 인정된다. 의상대하의 법을 수행하는 도량으로서 같은 지역에 존재하는 서주 부석사와 서산 부석사를 다른 사찰일 수 없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민법을 강제로 차용하였다가 해방 후에 독자적으로 우리 민법이 제정되어 1960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렇기에 1960년에 제정된 민법으로 1960년 이전의 역사적 사실을 판단해선 안된다. 

서산 부석사가 청구한 소송은 1330년 서주 부석사에서 조성된 보살상이 1526년 일본 쓰시마시 관음사에 봉안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두고, 그 소유권자가 누구인가를 따지는 서산 부석사와 일본 관음사 사이의  분쟁이 아니라, 서산 부석사가 원고가 되어 대한민국을 상대로 위 금동보살좌상의 인도를 구하는 소송이다. 따라서, 법원은 국가가 서산 부석사에게 위 보살좌상을 인도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만 판단할 수 있을 뿐인데, 위 보살좌상의 소유권자가 일본 관음사인지 여부까지 판단한 것은 원고 서산 부석사가 청구한 범위를 넘어 민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처분권주의에도 반한다. 

근원적인 문제를 살피더라도, 1330년 서주 부석사에서 조성된 보살상이 1526년 일본으로 이전되어 쓰시마시 관음사에 봉안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두고, 역사적, 문화적 관점에서 이를 조성한 한국의 소유로 보는 것이 정당한가, 이전경위를 밝히지 못하는 일본의 소유로 인정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쟁점을 따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이 한국에서 반출해 간 경위와 과정이 적법하다고 판단되면, 일본의 소유권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고, 그 이전경위가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을 경우에는 이를 조성한 한국의 소유로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한국의 소유로 인정된 후에 국가가 서산 부석사에게 위 불상을 인도할 의무가 있는지 판단하면 법원이 제소받은 청구에 대하여 하여야 할 판단을 다하는 것인데, 대전지방법원이 서산 부석사와 대한민국 사이의 쟁점도 아닌 일본 관음사의 소유권을 인정한 것은 민사소송절차의 기본구조에서 너무 벗어났다.

우리 법원이 역사적 영속성과 문화적 자존감을 지켜내려는 대한민국 후손들의 통한의 눈물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될 것이다.

[1669호 / 2023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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