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 홍법사 주지 심산 스님

불광산사는 스님과 신도가 서로 존경하는 공동체의 모델

성운대사가 구축한 운영시스템은 한국불교 나아갈 미래
불광산사식 사고‧제도 수용하면 우리의 현존 문제 해결
환희롭게 사는 법 보인 성운대사 삶 통해 자신 돌아보길

심산 스님은 “성운대사의 신심, 원력, 자비심이 함께 움직이는 곳이 불광산사”라며 홍법사는 불광산사에서 배운 것을 적용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산 스님은 “성운대사의 신심, 원력, 자비심이 함께 움직이는 곳이 불광산사”라며 홍법사는 불광산사에서 배운 것을 적용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늘 홍법사에서는 열반에 드신 대만 불광산사 개산종장 성운대사의 가르침을 새기는 추모법회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불광산사는 가보신 분과 가보지 않은 분이 이해하시는 것에 큰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것은 불광산사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불광산사에 가서 예불을 올리고, 또 절의 규모를 보고, 돌아가는 시스템을 마주하게 되면 이것이 우리 한국불교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모습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바로 아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홍법사 창건주 하도명화 보살님께서는 1970년대 초 대만 불광산사를 다녀오시면서, ‘이것이야말로 불교의 미래다. 나도 불사를 하게 된다면 이런 도량을 세우겠다’는 원력을 세우셨다고 합니다. 저는 2002년 5월 하순 통도사부산포교원 소임을 내려놓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 해 6월6일 창건주 보살님께서 매년 봉행해 오신 호국영령을 위한 추모의식 ‘허공마지’ 법회를 마친 후 지금 조계종 최고 어른이신 성파 큰스님을 모시고 대만 불광산을 순례했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성운대사께서 불광산사를 만드시고 나서 한국과의 첫 교류가 통도사였다고 합니다. 시기는 1980년대 초였습니다. 지금 종정 예하께서 당시 통도사 주지를 맡고 계실 때였습니다. 그때 대만 불광산사와 통도사는 형제의 사(寺) 인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저는 얼떨결에 어른 스님을 모시고 간 인연으로 불광산사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큰스님과 창건주 보살님께서 한국으로 돌아가신 이후로도 저는 혼자 10일 이상 불광산사에 남아서 도량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불광산사 뿐만 아니라 대만에 있는 불광산사의 중요한 사찰 전반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대만에서 머문 시간이 저에게는 큰 변화의 물결로 다가왔습니다. 당시 저는 법랍 20년을 맞이하던 시기였습니다. 불광산사를 개산하신 성운대사의 생각과 가르침 그리고 도량을 운영하는 시스템은 분명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대만 불광산사에서 생각이 완전히 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광산사는 어떤 특징과 가르침을 펼치고 있는가. 불광산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승속의 구분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정확히는 스님이 신도를 공경합니다. 물론 신도 역시 어느 나라의 불교 신도보다도 스님을 공경합니다. 서로서로 공경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는 승속의 구분이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어떤 역할이 주어질 때 그 역할은 스님의 역할이고, 이 역할은 재가자의 역할이라는 규정이 없습니다. 스님은 항상 위, 신도는 항상 밑이라는 개념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어떤 행사가 진행될 때도 스님들이 모두 구석구석 요소요소에서 어떤 역할을 갖고 동참을 합니다. 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만 불광산사는 전 세계에 지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300여 곳에 지부가 있다고 합니다. 대만에서 중요한 회의가 열리거나 행사를 하면, 세계 각 지부에서는 신도들의 참석 여부를 먼저 확인합니다. 신도들이 간다면 스님도 당연히 갑니다. 신도 없이 스님만 참석하는 경우는 의미가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다시 말해 스님은 신도를 위해서 존재하는 공동체가 불광산사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스님이 간다고 하면 신도님들이 따라가 주는 분위기입니다. 이것이 대만 불광산사에서 경험한 우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불광산사의 사고방식과 제도를 받아들여서 한국불교가 변화한다면 지금 겪는 수많은 걱정이 사라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대만에 가서 보면 환희로워도 한국에 돌아와서 보면 당장 변화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내가 소임을 맡게 되는 사찰에서는 적어도 불광산사의 사고방식과 제도를 많이 반영하겠다.” 이 생각을 반영하고 실천해 온 도량이 홍법사입니다. 그래서 홍법사가 주관하는 모든 행사가 그 중심은 스님이 아니라 신도님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스님은 신도님을 위해서 어떻게 해 줄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불광산사에서 배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광산사는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불교텔레비전이 위성으로 전 세계 30~40개국에 송출됩니다. 신문도 있으며 대학도 5곳이 있습니다. 실적 위주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불광산사 사부대중은 성운대사라고 하는 큰 어른을 중심으로 혼연일체 단결을 해서 한마음으로 이끌어온 세월이 오늘의 불광산사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운대사께서는 일상에서도 굉장히 자비로우셨습니다. 어느 누가 와도 자비롭게 대하셨습니다. 그런데 상좌에게만큼은 자비가 달랐습니다. 무자비할 만큼 냉혹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힘이 불광산사를 버티는 하나의 원력이었다고 짐작해 봅니다. 무자비할 만큼 자비하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성운대사께서는 원칙에 충실하셨습니다. 기분이나 상황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가고자 하는 방향에 맞다는 생각이 들면 어떤 경우에도 이루어내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경직된 틀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불광산사의 말사 중에는 주어지는 인연대로 호텔을 인수해서 리모델링해 사찰로 사용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전통은 전통대로 진행하면서도 현대의 방식대로 나아가는 자유자재함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우리는 사찰이라고 하면 목조 기둥과 기와지붕의 전통 사찰 양식에 대한 고집을 지니고 있습니다. 불광산사는 시대와 상황에 맞는 것으로 절을 이끌어갑니다. 너무나도 다양한 절의 형태를 보면서 자유자재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자유로운 가운데에도 엄격하고, 그 엄격한 가운데에도 융통성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불광산사입니다. 그 중심에는 성운대사의 신심, 원력 그리고 자비심이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성운대사께서 주로 말씀하셨던 것이 바로 ‘인간불교’입니다. 인간불교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불교를 말합니다. 사람이 부처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세상,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더불어 같이 살아가고 행복한 이것이 인간불교입니다.

우리는 보통 살아계신 분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천도를 한다고 합니다. 성운대사께서는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천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을 천도하는 것이 불교다, 돌아가신 분을 천도하는 것은 불교가 아니’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성운대사께서는 아주 평안한 모습으로 정월 대보름 저녁 5시30분쯤 시자 스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적하셨다고 합니다. 사바세계 인연을 다하시며 “장례를 장례로 치르지 말아라. 축제로, 문화로 치러라.” 이런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불광산사에서는 ‘극락왕생’이 아니라 ‘속환사바(速還娑婆)’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다시 이 사바세계에 오셔서 많은 사람에게 가르침과 진리를 펴주시고, 많은 사람이 극락 같은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슬픔의 장례가 아니라 “다시 돌아오소서”라는 발원의 장례라고 합니다.

인연이라는 것이 참 오묘하다고 생각합니다. 홍법사는 국제불광회 한국부산협회로 활동하며 해마다 대학생 교류를 실천해 왔습니다. 지금도 대만 불광대 재학생 22명이 한국에 와서 홍법사에 머물며 한국 문화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20년 전의 약속을 지금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통도사와 불광산사가 형제의 연을 맺었고 그 연이 이어진 덕분에 저도 대만 불광산사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고 이제 미래 세대를 위한 청년들이 그 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인연의 끈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진실하게 이어가면 반드시 결실이 있다고 믿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몸은 인연에 따라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인연의 조합인 몸은 인연을 따라서 사라지지만 진리는 우리와 우리의 마음을 영원히 행복으로 인도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올해 출가한 지 40년이 됩니다. 그 40년 세월 중 앞선 20년의 세월이 출가해서 나름의 정체성을 마련하고 준비하는 시간이었다면, 그 이후의 20년은 그것이 현실에서 나타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20년 동안 가장 소중하게 다가왔던 마음의 스승이 바로 성운대사였습니다. 이 소중한 인연으로 대사의 영결식 자리에 여법하게 동참할 수 있는 것은 지중한 인연의 결과라고 믿습니다. 

성운대사께서는 평생의 삶을 통해서 우리 출가자들이 그리고 더 크게는 불교도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모델로 보여 주신 이 시대의 선지식이셨고 보살의 화현이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추모라고 해서 슬픔을 얘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환희로움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 있는 일인가를 한 번 더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떤 것이 의미 있는 삶인지 우리 스스로 한번 돌아보길 바라며 이것으로 추모사를 마치겠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내용은 2월8일 부산 홍법사에서 봉행된 ‘대만 불광산사 성운 큰스님 추모법회’에서 주지 심산 스님 설한 추모사를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1669호 / 2023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