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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선 수행 전옥(62) - 상

기자명 법보

원인 알 수 없는 내적 우울에
종교 공부했으나 해결 안돼
한순간 오직 ‘이것’ 체험하고
기필코 답 얻고자 명상 정진

전옥(62)
전옥(62)

어릴 적 나는 무척 내성적인 학생이었다. 어머니가 홀로 3남매를 키우며 생계를 꾸렸기에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고 불안정했다. 이 때문인지 바깥세상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무엇이든 혼자서 해결하는 습관이 들었다.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리고자 학창시절엔 열심히 공부했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겉으로는 온순한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내면은 언제나 우울함과 허전함, 알 수 없는 그리움과 답답함으로 먹먹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종교에 관심을 갖고 정신 서적을 제법 탐독했지만 답답함을 쓸어낼 수 있는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이따금 찾아낸 시원한 말이나 글도 근본적으론 치료되지 않았다. 그러다 어떤 단체에서 펴낸 책을 보고, 우리나라에도 깨달음을 추구하는 모임이 있다는 걸 알았다. 드디어 제대로 공부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냉큼 찾아 나섰다. 

좌선과 같이 몸으로 하는 수행은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 모여 강의를 듣는 방식이었다. 모임 사무실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연락에 실질적으로 더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겼다. 근무하던 직장과 그간 익숙했던 27년의 시간을 망설임 없이 정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와는 다르게 점점 늘어나는 업무와 반복되는 일상,  강박적으로 열심히 해내는 스스로의 습관에 치여 지쳐갔다. 

그렇게 30대 중반, 몹시 큰 실수를 했던 어느 날. 주위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사무실에 혼자 남아 울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이상한 체험을 했다. 이 몸을 비롯한 모든 게 다 사라져서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고 오직 ‘이것’만이 또렷했다. 지금 와서야 분명하게 ‘이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당시에는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이후로도 며칠 동안은 하는 일도, 벌어지는 일도 전혀 무게감·존재감 없이 가볍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말로 설명하기도 어렵고 억지로 이해시키고 싶지도 않았기에 혼자만의 경험으로 가지고 있었다. 여전히 되풀이되는 일상과 또다시 대책없이 가동되는 강박적이고 의식적인 삶의 습관은 이 체험의 느낌을 금세 잠식해버렸다. 

그때 제대로 이끌어줄 수 있는 스승을 만났다면, 바른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면 오랜 시간 또다시 큰 절망 속에 헤매지 않고 공부가 수월하게 진전되지 않았을까 한다. 아쉬움은 없지만 이 삶이 그렇듯  공부 또한 누구에게나 처음일 수밖에 없기에 앞서 이 길을 경험했고 길 위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을 이끌어 바른길로 인도해줄 수 있는 올바른 선지식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단체에서는 그나마 본질에 대한 가르침은 완전히 사라지고 세간적인 가르침만이 남았다. 몸은 그곳에 머물러 있었지만 머리와 가슴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결국 계속 있다가는 답답한 가슴에 죽을 것 같다는 절박함으로 단체에서의 25년을 정리했다.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단절하고 살아온 테두리 밖 새로운 세상에는 아는 사람 하나 없었다. 아주 낯선 별 위에 혼자 떨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은 살아있었고 다시는 어떠한 소속 없이 혼자 공부해 기필코 끝을 보리라는 결심했다. 어찌어찌 시골에 일자리를 구해 정착했다. 옛 도반의 소개로 알게 된 요가 명상을 배우고, 혼자 틈틈이 하며 2년을 보냈다. 요가 명상의 핵심은 여러 가지 방법의 ‘집중’이다. 이미지를 만들어 집중하는 것은 어려워 그냥 한 점에 집중했다. 한동안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저절로 집중은 사라지고 그저 자리에 그냥 편히 있곤 했다. 지금에야 왜 그렇게 됐는지 이해하지만 당시엔 명상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해 의자에 앉았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졌다. 눈앞에는 여전히 주위 모든 것이 그대로 보였지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얼마 후 다시 돌아왔을 때는 모든 게 원래 그대로였다. 몇 개월 후 일하는 중에 또다시 모든 게 정지된 느낌.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이러한 체험들이 있고 나서 마음이 느슨하고 편해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이미 명상은 하지 않고 있었고, 각종 서적과 인터넷으로 찾아봤지만 마땅한 답은 찾을 수 없었다.

[1669호 / 2023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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