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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현이 풀어낸 ‘무문관’ 더 선명해진 ‘선의 지름길’

  • 출판
  • 입력 2023.02.27 09:52
  • 수정 2023.02.27 10:00
  • 호수 1670
  • 댓글 0

선시로 보는 무문관 
석지현 역주 / 민족사 / 272쪽 / 2만5000원

무문혜개 ‘무문관’에 원문·주·번역·해설…간명한 문체 속 단단한 내공
"낯선 산 오르려면 길잡이 필요하듯 선수행도 사전 정보 있어야 성공”

“사전 예비지식도 없이 무작정 산을 올라갈 수는 없다. 낯선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그 산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어야 한다. 선 수행의 사전 정보는 ‘무문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흔히 ‘공안’을 선(禪)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지름길이 그러하듯 그 길은 반듯하게 포장이 돼 있지도 않고 이정표가 번뜩 눈에 띄지도 않는다. 지나간 사람이 많지 않은 길, 아는 사람만 아는 길, 드물게 남아 있는 누군가의 희미한 발자국을 따라 가야 하는 길이다. 그렇기에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공안은 길인 듯, 길 아닌 듯 보이고 암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발자국을 알아볼 수만 있다면, 그 암호를 해독할 기준점만 있다면 그 후는 일사천리다. 역자는 이 ‘무문관’이 그 암호 해독의 열쇠이자 선의 봉우리를 정복하기 위한 사전 정보라고 정의한다. ‘무무관’이 ‘선 수행의 길잡이’로 오랜 세월 선 수행자들에게 필독서로 여겨졌으니 이런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무문관’은 무문혜개 선사의 저술이다. 무문 스님은 남송 시대인 1182년 중국 항주에서 태어났다. 천룡굉 화상에게 출가해 조주 스님의 무(無)자 화두를 수년간 참구하다 어느 날 문득 북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이때가 1218년 36세였다. 이후 여러 곳에서 수행자들을 지도했는데 ‘무문관’이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1228년이었다. 금나라에 의해 송나라가 멸망하고 금나라로 잡혀갔던 황제의 동생이 간신히 탈출해 남경을 중심으로 남송을 개국한 지 100여년이 지난 때였다. 

공안은 선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라 불린다. 단, 암호와 같은 공안을 풀어 내야 가능한 일이다. ‘무문관’이 선수행의 길잡이로 여겨진 이유다.
공안은 선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라 불린다. 단, 암호와 같은 공안을 풀어 내야 가능한 일이다. ‘무문관’이 선수행의 길잡이로 여겨진 이유다.

나라가 멸하고 흥하는 대혼란의 시대, 중국의 사상과 종교도 그에 못지 않은 지각 변동을 겪어야 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성리학을 집대성해 이른바 주자학을 완성한 주자(1130~1200), 그리고 그와 대립하며 ‘육왕학’이라 불린 심학(心學)을 세운 육상산(1139~1193)이 활약했다. 이들은 각자의 사상체계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선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동시에 선불교에 대해 날 선 비판을 던지기도 했다. 선불교는 현실 도피적이며 비실용적이라는 지적이었다. 이러한 때 무문 스님은 ‘무문관’을 집필했다. 일본학자 가토 코츠도는 이를 언급하며 “‘무문관’에서 무문의 문장이 건조하고 김장감이 감도는 것은 바로 이 두 사람의 선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 치의 허술함도 용납되지 않을 시기, 무문 스님은 조주로부터 운문, 오조법연, 대혜종고로 이어져 온 선가의 공안 중에 48가지를 엄선해 이를 수록하고 해석했다. 임제의 공안은 직접 수록하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임제의 언구가 인용되고 있어 그 영향 또한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무문 스님이 첫 번째로 앞세운 공안은 조주선사의 ‘무(無)’자 화두였다. 저자는 그 이유를 “조주의 무자 공안 참고로 깨달음을 체험했기 때문”이라며 “나머지 47칙을 이 무자 공안의 각기 다른 전개 과정”이라는 학자들의 견해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 곳이 뚫리면 천 곳, 만 곳이 일시에 뜷리게 된다’는 ‘벽암록’의 말처럼 어느 공안을 탐구해도 결국 마찬가지, 모든 공안은 하나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약한 남송의 쇠락을 바라봐야 했던 무문 스님의 심정은 화두처럼 단단하거나 날카롭지만은 못한 듯 하다. 황제의 탄신일에 맞춰 ‘무문관’을 발간하며 서두에 붙인 표문에는 태어난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산승의 비애가 서려 있다.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며 나라와 황제를 축원했지만 무문 스님의 입적 후 불과 4년 뒤 남송은 결국 멸망하고 만다. 이후 원나라가 들어서며 티베트불교가 득세하는 와중에 중국에서는 ‘무문관’이 사라지고 판본마저 유실된다. 스님의 근심은 기우가 아니었다. 다행히 무문 스님 회상에서 공부했던 일본 승려 심지각심이 일본으로 가져갔던 ‘무문관’이 널리 유통되며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사실 ‘공안(公案)’은 관공서의 공문서를 일컫는다. 즉 불조의 언행이나 문답은 관공서의 공문서처럼 절대적인 권위가 있다는 뜻에서 차용된 표현이다. 선가에서는 이를 수행의 깊고 옅음을 측정하는 계기판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역자는 이 책에서 ‘무문관’의 원문과 함께 주(註), 번역, 해설 순서로 배열했다. 한문으로 수록된 원문이 어렵다면 번역과 해설만 보아도 그 뜻을 파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간단명료한 번역, 평이한 해설, 짧은 주는 역자의 단단한 내공과 필력의 산물이다. 

하지만 덧붙인다. “성급하게 마음 먹지 말고 주를 보면서 한 줄 한줄 원문 해독을 해 나간다면 어느덧 숲의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역자의 격려에 힘이 나지만 그래도 용기가 부족하다면 직접 강의를 듣는 방법도 있다. 민족사는 석지현 스님의 ‘선시로 보는 무문관' 출판을 기념해 3월부터 매월 두 차례 역자의 무문관 강의를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한다. 강의는 3~11월 매월 둘째 화요일에 오후 7시부터 두 시간씩 진행된다. 8월엔 휴강한다. 총 16강이며 강의료는 교재비 포함 27만원이다. 문의·접수 02)732-2403~4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670호 / 2023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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