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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기자명 명오 스님

아주 먼 옛날, 인도에서는 “어떤 것이 행복인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저마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 달콤한 소리를 듣는 것, 좋은 냄새를 맡는 것,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는 것에 행복이 있다, 혹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쟁론은 격렬해져 천상까지 알려졌고, 무려 12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급기야 도리천의 제석천왕이 부처님께 천신들을 보내 무엇이 최상의 행복인지를 물었다.

부처님은 “어리석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며,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공경하는 것이 더없는 행복이다”라고 했다. 행복과 불행은 사람에게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행복과 불행을 오간다. 사람 때문에 죽기도, 살기도 한다. 부처님이 강조한 38가지 최상의 행복에서 첫 조건이 어리석은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다. 부처님도 전생에 어리석은 사람과 교류하거나 의지하지 않기를, 그의 말을 듣게 되거나 말하지도 않기를, 함께 지내지 않기를 소원했다고 한다. 

어리석음은 고통의 근원으로 무지를 말한다. 자신과 타인, 물질과 감각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오해하며 착각하고, 편견과 사견에 사로잡혀 고집스럽다. 필요와 욕망을 분간 못하고, 욕심과 화를 조장하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오감이나 특정 대상을 애착해서 지속할 수 없는 기쁨과 만족감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에게 고통을 주거나 스스로 타락하게 된다. 어리석으면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된다. 그래서 이기주의가 되고 남을 업신여겨 아만에 빠지거나 안하무인이 된다. 특히 자기 자신을 잘못 앎으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부작용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확대된다.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한국의 행복순위는 개발도상국들과 같이 하위에서 머물러, 세계 강대국 6위라는 말이 무색하다. 자살률 1위에다 우울감·우울증 유병률도 1위인데, 우울증 치료를 가장 받기 어려운 나라도 대한민국이다. 아동·청소년의 행복지수마저 꼴찌인데, 그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93만 건의 정신과 약물이 소아·청소년에게 처방됐고, 항정신병 약물이 가장 많았다. 한국 경제의 압축성장으로 인한 폐해가 아이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사회 모든 구성원이 비교하고, 경쟁하고, 빠른 성과를 내야 하는 압박 속에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우울감이 생긴다.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 건강한 인간관계보다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며, 무상한 오욕과 오감에 집착한다면 행복과는 영영 멀어진다.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수적이다. 지혜는 어리석음의 정반대를 뜻한다. 사물이든 감각이든 현상이든,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지혜이다. 어리석음이 어둠이라면, 지혜는 빛이다. 빛은 어둠이 주는 공포를 순식간에 없애 버리듯이, 지혜 앞에서는 진실과 거짓, 선과 악, 무지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무엇이든 모르면 두렵고 불안하지만, 분명하게 알면 당당하고 여유가 있게 되는 것이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의 작용들을 알아차리는 것이 지혜이다. 필요 이상의 것은 욕심인 줄 알고, 욕망에서 비롯된 즐거움은 괴로움의 원인인 줄 알면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우리의 마음이란 지혜를 채우지 않으면 어리석음이 무성해지고 만다. 중생이라는 굴레에 있는 한, 누구도 어리석음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내 몸, 내 감정, 내 생각을 정확히 아는 데서 지혜가 생긴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자신의 탐진치를 진단할 수 있다. 어리석고 지혜로운 사람을 분간할 수도 있는 것이다. 허공이 바람을 대하듯이 대지가 만물을 대하듯이, 특정한 데 집착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부처님이 강조한 행복의 조건으로 최상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부터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명오 스님 동국대 강사 sati348@daum.net

[1670호 / 2023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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