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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한 걸음 한 걸음이 불연…부처님 가피 세상 회향할 것”

  • 무진등
  • 입력 2023.03.03 21:35
  • 수정 2023.03.06 11:17
  • 호수 1671
  • 댓글 5

이상훈 제20대 한국교수불자연합회장

독실한 불자 집안서 태어나 1984년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진학
정훈장교로 군생활하며 틈틈이 경전 공부…주말법회서 강연도
대전대 발령나 교수불자모임 창립…지난해 교불련 회장에 당선

“상훈아, 삼개사 주지스님이 너한텐 동국대 경찰행정학과가 딱이라고 하더라.”

하루는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그에게 다가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강릉고 2학년이던 이상훈 한국교수불자연합회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시(詩)를 즐겨 쓰고 문학을 좋아하던 그였다. 강릉 오죽헌에서 열리던 ‘대현 이율곡 선생 제전’ 백일장에서 장원(壯元)을 할 정도로 실력도 출중했다. 친구들과 모여 매달 발간하던 시집에 막 재미를 붙일 무렵이었으니  ‘경찰’이란 두 글자가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이 회장은 강릉고에서 단정하기로 소문난 ‘범생이’였다. 그가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지원하겠다”고 하자 선생님들은 두 손을 내저으며 반대했다. 성적이 아깝다는 이유에서다. ‘국문학도’만 꿈꿨던 이 회장도 스스로 경찰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국대가 제시한 4년 등록금 면제, 학비 보조 지원(현 금액으로 120만원), 기숙사 제공이라는 파격적 조건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누나와 형도 대학생인 상황. ‘울며 겨자 먹기’로 1지망에 경찰행정학과를 쓰고 2지망에 국문학과를 적었다. 그리곤 삼개사 법당으로 달려가 부처님께 기도했다. ‘부처님, 제발 1지망은 떨어뜨려 주세요. 2지망 꼭 붙여주세요. 아셨죠?’ 하지만 야속하게도 이듬해 봄 이 회장은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84학번 신입생이 됐다. 깊고 긴 불연(佛緣)의 시작이었다.

경찰 관련 학문는 흥미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물론 당시 시대 분위기도 한몫했다. 1984년은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의 횡포가 고조에 달했을 때였다. 대학생들 가방엔 늘 돌이 있었고 최루탄 연기에 “콜록콜록” 기침하며 기숙사를 드나들기 일쑤였다. 물론 수업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책 분량 2분의 1이 아닌 10분의 1도 겨우 읽고 종강하던 시기였다. 종립대학에 왔지만 ‘부처님 가르침’에 관심을 둘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스스로 불자(佛子)라 인식하게 된 건 군대에서였다. 경기도 양평 육군 제20사단 61여단 정훈과장으로 전역한 그는 군생활 내내 매주 법당을 찾았다. ‘동국대 출신’이란 이유로 근무 기간 3년 중 1년 가까이는 군법사 빈자리를 겸직 수행했다. 다른 장교들과 부사관 부부들도 여단 법당을 찾는 상황에서 법문을 대충할 수는 없으니 틈틈이 수첩에 경전 구절을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자연스레 습득된 부처님 가르침이 이 회장에게 단단하고 곧은 불심을 만들었다. 이후 그는 어딜가나 당당하게 자신을 불자라고 소개했다. 

“그동안은 인적사항 종교란에 습관처럼 불교를 썼었는데요. 군생활 이후부터 불교라는 단어에 진심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가진 힘도 알게된 순간이었죠.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종교구나. 부처님 가르침이구나. 이 진리가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구나 그렇게요. 그래서 전 지금도 전법의 최적지는 병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군 불자에 관한 우리들 관심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매주 일요일 절을 찾던 습관은 전역한 뒤로도 이어졌다. 그가 대전대에서 교수불자회를 조직한 건 어쩌면 자연스런 흐름이었을지 모른다. 이 회장은 2006년 대전대에 임용된 직후 ‘천주교신자 교수모임’ ‘개신교신자 교수모임’이 있지만 불교신자 교수모임이 없다는 점이 의아했다. 마침 선배 교수가 동국대 출신인 그에게 교수불자 모임을 창립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대전대가 생긴 지 30년이 넘었는데 교수불자 모임이 없어 아쉽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기꺼이 나서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건한 마음을 갖고자 아침에 목욕탕에 가 나름의 목욕재계(?)를 하고 연구실로 돌아왔죠, 하하.”

이 회장은 비장한 마음으로 모니터 앞에 앉았다. 그리곤 타고난 감수성으로 창립 발원문을 쓰기 시작했다. 머리를 싸매고 한참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니 A4로 두 장 분량이 나왔다. 글 말미에 ‘교수불자 모임을 만들고자 한다’는 진심 어린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교원 전체 메일로 발송했다. 그러자 곳곳에 숨어있던 14명 교수가 반갑다며 답을 보내왔다. 대전대교수불자회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개강법회, 종강법회, 명산대찰 순례부터 절터 문화재 답사에 맛집 탐방까지. ‘고품격’ 신행 활동이 이어졌다. 그때 이 회장은 생각했다. ‘아! 내가 교수불자회 만들려고 인연이 닿았구나.’

2017~2018년 뉴욕시립대학에서 연구년을 마친 뒤엔 대전대 학생불자모임(유심회) 지도교수를 맡았다. 유심회 지도법사인 대전 보현정사 경조 스님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스님이 동아리 법당 청소부터 공양, 장학금 지원을 하며 ‘솔선수범’하신 덕분에 불교동아리 회원수가 날로 늘었다. 

“대전대 불자모임이 1980년대 불교학생회 융성기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유심회 법우를 27명으로 늘어나게 한 건 오롯이 경조 스님 공덕이죠.”

바쁜 와중에도 그의 마음엔 늘 부처님 가르침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랬기에 고난과 역경이 와도 곧잘 웃어 넘기는 편이다. 사건·사람·사물도 분별심 없이 보고자 노력한다. 그 덕에 전공 분야에서도 제법 큰 성과도 이뤘다. ‘한국경찰학회장’을 두 번이나 역임(2020·2021)하면서 자치경찰제를 도입(2020)·시행(2021)하는 데 일조했으며 최근엔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치분권특별위원회와 국무총리소속 경찰제도발전위원회 자치경찰분과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도 서울경찰청 인권위원, 경찰청 성과평가위원, 경찰청 규제심사위원, 경찰청 시민감찰위원, 충남경찰청 손실보상심의위원장, 대전광역시 자치경찰위원 등을 맡았다.

2020년 10월 제75주년 경찰의 날엔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행정안전부장관 표창, 경찰청장 감사장, 한국경찰학회 학술 공로패, 한국공안행정학회 학술상, 대전대 교육상, 한국경호경비학회 학술상 등을 받았다. 최근 관심연구 분야는 단연  ‘자치경찰제 연구‘다. 2020년부터 3년간 그가 연구책임자로 수행한 정부기관의 연구용역만도 7개에 달한다.

“스무살 무렵엔 경찰학이 참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이 미워지기도 했었죠. 결과적으론 주지스님과 부모님 말씀이 옳지 않았나 싶네요. 이렇게 한국교수불자연합회장이 되는 인연 공덕을 지었잖아요.”

최근엔 경전 공부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동국대 불교한문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경전 강의를 신청할 만큼 열성적이다. 강의를 맡은 김천 지장암 선암 스님에게 ‘원각경’ ‘선가귀감’ ‘치문경훈’ 수업에서 특히 와닿은 경전은 ‘원각경’(圓覺經)이었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보안보살, 금강장보살, 미륵보살, 청정혜보살, 위덕자재보살, 변음보살, 정제업장보살, 보각보살, 원각보살, 현선수보살 이렇게 열 두분 보살님 말씀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무명으로 인한 모든 집착과 분별을 넘어서는 이환즉각(離幻卽覺)의 지혜를 말해주셔요. 마음을 흔들어 대는 일들이 살다 보면 제법 있잖아요.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스트레스도, 즐겁게 하는 일들도 ‘환상’이라고 생각하면 금세 중심을 잡을 수 있어요. 바로 돌아오면 ‘고수’인데 저는 아직 ‘하수’라 하루 이틀 걸린답니다. 그래도 결국 돌아오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요?”

그런 그가 지난해 말 제20대 한국교수불자연합회장으로 당선됐다. 임기는 올해 3월1일부터 2년간이다. 1988년 발족한 교불련은 ‘불교지성의 산실’로 꼽힌다. 

“모든 일에 우연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온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불연에서 비롯됐죠. 강릉 한 불자 집안에 태어나 동국대를 다니고 군 법회를 이끌고 대전대 교수불자회를 만든 것엔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요. 여전히 부족하지만 2년 간 교불련을 잘 이끌어, 창립 정신으로 되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 고향 강릉 신복사지 석탑(보물)과 금강경 32품이 어우러진 족자를 마주한다. 짧게라도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서다. “바쁘더라도 1시간은 꼭 경전을 읽으려 한다”며 볼웃음 짓는 그에게서 마지막 남은 중생까지 구제하고자 용맹정진했던 원각보살 모습이 겹쳐 보인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71호 / 2023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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