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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제도(茶時制度)가 필요한 시점

  • 기고
  • 입력 2023.03.09 11:49
  • 수정 2023.03.09 13:03
  • 호수 1672
  • 댓글 11

기고-다시제도(茶時制度)

다시제도는 고려·조선 관리들이 업무 전 차 마시는 시간
중대사 처리 전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하라는 의도 담겨
국가수사본부장에 학교폭력 가해자 아버지 정순신 임명
여론 반대에 취소…‘공정과 상식’내세운 정권의 부조리

고려와 조선의 조정(朝廷)에는 관리들이 차를 마시는 시간인 ‘다시제도(茶時制度)’가 있었다. 국가기관이 공식적으로 지정한 티타임 제도인데 중대사를 처리하기 전에 차를 마시는 시간을 의례화, 정례화한 것이다. 왕도 죄인에게 중형을 내리는 ‘중형주대의(重刑奏對儀)’에 임할 때 먼저 다방(茶房)에서 올리는 차를 마시고 신하들도 함께 마시게 했다. 이러한 제도는 공무에 임하기 전 다례(茶禮) 시간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게 하여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하라는 의도의 티타임 제도이었다.

특히 사헌부(司憲府) 관리들의 업무 시작 전에 ‘음다(飮茶)’는 스스로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공무원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하기 위한 업무의 일환이었다. 사헌부는 풍속을 바로잡고, 관리들의 공로와 죄과(罪過)를 고찰하여 표창하고 탄핵하는 일 등을 관장하였다. 왕의 행실과 정책은 물론 관리의 임명에 의견을 내었다. 중앙뿐만 아니라 지방을 돌며 백성들의 여론도 수집하고 억울한 사연을 해결하는 역할도 맡았다. 감찰 기관인 사헌부를 둔 가장 큰 이유는 왕과 관리들이 지나치게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한 마디로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막중한 일을 하는 사간원(司諫院)은 학문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인품이 강직한 사람을 뽑았다. 임금도 공정을 중요시하여 쓴소리하는 사간원을 존중하였다.

차의 테아닌 성분은 심신을 안정시키고 집중력을 증가시켜 통찰력을 돕는다. 과거 조정의 다시제도는 차의 약리적, 정서적 효능을 일상으로 가져와 실용화한 조상들의 지혜이자 풍류였다. 사헌부의 인사권에 해당하는 인사혁신처 인사권을 현 정권은 법무부로 이관하였다. 문제는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는 현 정권이 국가수사본부장에 학교폭력 가해자의 아버지인 검사 출신 정순신 변호사를 임명했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취소한 것은 부조리하기 짝이 없다.

학교폭력의 피해자는 고등학교 때 당한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고 하는데, 가해자는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 철학과를 버젓이 다니고 있다니 국민으로서 허탈하고 자괴감이 든다. 피해자가 학교에 신고하자 학교 측은 가해자에게 강제 전학 등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검사이었던 가해자 아버지 정순신은 아들의 폭력을 무마하기 위해 재심청구, 행정소송, 징계효력, 집행정지 등 수단과 방법 등을 가리지 않았다. 아들의 대학 진학 편의를 위해 그 소송을 대법원까지 이어지게 하여 1년간 시간을 더 끌었다.

피해자는 가해자와 마주치며 더욱 고통에 시달렸고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하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가해자는 본인의 아버지가 검사이며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 후 가해자는 제대로 된 사과도 없었고 그 학교폭력 기록도 삭제되었다고 하니 검사 아버지의 대단한 특권을 누린 것이다. 강원도에 있는 명문 기숙학교인 이 고등학교의 담임교사는 화해를 위해 나름 노력을 하였다. 가해자가 반성하려는 태도를 보였다가도 집에만 갔다 오면 행동이 바뀌었다고 한다. 가해자 자식이 잘못을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게 했어야 하는데도 검사 아버지가 앞장서서 보이지 않는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당시 정순신은 서울 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이었고, 윤 대통령은 중앙지검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중앙지검 3차장이었다. 윤 대통령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고 한다. 당시 KBS 보도까지 된 이 사실을 인사권을 휘두르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몰랐다고 발뺌하는 것은 매우 개탄스러운 상황이다. 학교폭력 가해자 아버지를, 더욱이 자기 아들만을 위해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활용한 사람을 국가수사본부장에 발탁한 것은 명백한 국가의 2차 가해다. 학교폭력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장 불공정한 것이다. 만약 인사권자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차 한 잔의 사유만 했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 정권은 요직 곳곳에 검사 출신을 등용하였다. 이는 국민의 ‘공정과 상식’의 정치를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인사혁신처가 담당하는 일을 법무부로 이관한 것도 인사 검증을 더욱 공정한 시스템에서 혁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법은 국민이 억울하지 않게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고 검찰은 그 법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공무원이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지만, 정권 유지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는 사람에는 수없이 많은 수사를 하고 사소한 것에도 고소, 고발로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인 것은, 어떤 사건은 기소는 물론이고 수사도 손 놓고 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검찰 공화국이란 말이 난무하겠는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수사 사건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이라면서 조국 전 장관이 중단한 언론과의 티타임 브리핑을 부활시켰다. 하지만 다시제도의 티타임과는 부합하지 않는 실정이다. 되짚어 말하면 다시제도는 공무의 일환이었다. 업무에 임하기 전에 차를 마시는 짧은 시간을 통해서라도 자신을 성찰하여 청렴하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고자 행한 공무원의 의례이었다. 그래서 관리들이 차를 마시는 것은 자신의 품격을 지키는 예의이기도 했다. 일제 침탈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가기관 어디에서도 이러한 미풍양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제도에 비추어 보면 오늘날 법무부의 티타임은 대조적으로 천박하게 부조화하다.

허탈한 세상사의 번민을 떨치려고 차를 우리며 조상님들의 지혜와 풍류가 담긴 ‘다시제도’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것이 내 안의 ‘탐진치(貪瞋痴)’의 발동인 것인지 직업의 소산인지. 그러나 다시제도가 다시 필요해진 시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김민선 차문화연구소장
sunny000421@naver.com

 

[1672호 / 2023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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